예술의 우주/리뷰

98' 언더그라운드 만화 페스티벌

지하련 1998. 8. 1. 23:29

        :『98 대한민국   언더그라운드 만화  페스티벌』.  금호  미술관.
     98.7.1 - 8.9

       

       

       

       

       

        분명 만화는 예술이 아니다. 만화를 예술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설령 그 노력이 성공해  자신의 작품이
     뛰어난 예술작품으로 인정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만화  때문이 아니
     다. 그렇다면 무엇때문인가? 이 이유를 알기 위해선  우리는 흥미진진
     하고 재미있으며, 동시에 괴기스런 한 전시를 보아야만 한다. 『98 대
     한민국 언더그라운드 만화 페스티벌』말이다. 또한 우리는  현대 미술
     Contemporary Art과 키치Kitch의 상관관계도 이해해야만 한다.

        타타르키비츠는 이제 아방가르드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냐면 이젠 온통 아방가르드밖에 없음으로.(1) 그런 의미에서 클레멘
     트 그린버그의 『아방가르드와 키치』(2)는 매우  탁월하다. 그린버그
     는 이 글에서 어떻게  아방가르드와 키치가 나누어지는가를  명쾌하게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M.칼리니스쿠의 '키치'에 대한  글에선 아방가
     르드와 키치는 다시 얽히고 만다.(3) 그는 '아방가르드는 미적으로 전
     복적이며 반어적인 목적 때문에 키치에 관심이 있으며', '키치가 아방
     가르드적인 절차를 활용하는 이유는 그것이 순응적인 목적을  갖고 있
     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키치'는 무엇인가?  키치란, 그린
     버그의 말을 인용하자면, '그것은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예술과 원색화
     보가 있는 문학지, 잡지의 표지, 삽화, 광고, 호화판 잡지나 선정적인
     싸구려 잡지,  만화, 유행가,   탭댄스, 헐리우드의 영화   등을 말한
     다'.(4) 그래서 이 단어는 좋은 의미로 사용되기 보다는  나쁜 의미로
     자주 사용되며 역사적으로도 이 단어의 어원이 어딘인가가 애매한, 사
     용되기 시작한지 오래 되지 않는 단어이다. 이 단어의  탄생과 부흥에
     는 서구 부르조아 사회와 기계문명의 발달이 큰 역할을 했다. 그래서,
     이 단어는 현대대중문화를 지칭하는 한 단어이며,  대중문화를 찬양하
     는, 일부 호들갑스러운  포스트모던비평가들로부터 옹호를 받기도  했
     다. 그러나, '키치'라는 단어는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와 연결되어 있
     기 때문에, 대다수의 비평가들에게는 탐탁치 못한 단어들 중의 하나이
     다. 하지만, 『98 대한민국  언더그라운드 만화 페스티벌』을  뒤덮고
     있는 키치(적인 요소)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이 평가의  문제가 키
     치를 무시하고 싶지만, 무시하지 못하게 하는 거의  유일한 이유이다.
     또한 이것의 평가에 따라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나누어지는
     경계석의 기능도 함께 지니고 있다.        

        이 평가의 문제가 곤혹스러운 첫 번째 이유가 이 '언더그라운드 만
     화'는 상업성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곤혹스럽게 하는
     것이 이들이 의도적으로 상업성을 배제한 것인가 아니면  상업성이 그
    들을 인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인가라는 점일 게다. 아마 후자  쪽이 가
    까우리라 짐작되지만, 분명 이들 만화의 현재태는 상업성과 거리가 있
     으며, 동시에 '반'상업성마저 띄고 있다는 점이다.

        평가의 문제가 곤혹스러운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만화라
     고 보기엔 어려운, 그리니까 만화의 규범을 깨뜨렸다는  점이다. 이것
     은 어쩔 수 없이 '아방가르드'와 '만화'를 연결시킨다. 이  연결은 앞
     에서 언급했던 지루한 싸움의 터널 속으로 이 평가를 끌고 들어가버리
     는데, 그것은 이 전시가 열리는 곳이 '미술관'이라는 순수예술적 공간
     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된다.

        하지만, 이 평가의 잣대가  키치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순수예술의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글은 불평등하며, 또한 평가를
     내린다고 해서 그것이 언더그라운드 만화와는 별 관련이  없을 것이라
     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의 문제와는 전적으로 다른 문제이다.

        그러나, 내가 이 전시를 언급하는  것은 98년 한국 대중문화의  한
     곳에는 언더그라운드문화가 존재하며(*  딕 헵디지가 말한  '하위문화
     sub-culture'가 아닌), 또한 이 문화에서 계속 주류문화에  일정 부분
     이기는 하지만 자극과 양분을 공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쉽게 지나칠 수
     없음을 지적하고 싶었다. 그것은 또한 이 문화가 꼭  자본주의에 저항
     하는 운동movement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좋은  자극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난 이 전시를 우호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그건  분명 정체되어가는
     한국 문화 예술에 자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우호적인
     평가는 전적으로 현재의 상황에 의한 것이지, 이 전시가 탁월하다든가
     만화야말로 미래의 새로운 예술의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님을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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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 타타르키비츠, 『미학의 기본 개념사』, 손효주 옮김. 미진
     사. p.60
        (2) 클레멘트  그린버그, 『아방가르드와  키치』(*『현대미술비평
     30선』. 중앙일보사. 1987)
        (3) M.  칼리니스쿠,  『모더니티의 다섯   얼굴』, 시각과  언어.
     p.312
        (4) 클레멘트 그린버그, 위의 책, p.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