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예술사

바로크와 로코코

지하련 1999. 8. 28. 00:09

바로크(Baroque)와 로코코(Rococo)를 분리된 예술사조로 보기는 힘들다. 왜냐면 로코코는 자신감 넘치던 바로크의 숨겨진 이면을 예술가 스스로가 깨닫게 된 것에 불과하니깐. 그리고 예술사에서도 흔히 로코코를 바로크 예술의 후기 경향으로 분류한다.



바로크 예술가로는 바흐, 베르니니, 카라바지오, 렘브란트, 푸생, 루벤스, 베르미르 등등이 속한다. 음악에서는 통저음과 변주의 형식이 등장하고 미술에서는 인간적인 면모의 강조와 빛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난다. 형식에 있어서의 고전주의적 화풍은 확고한 질서 속에 대상들을 위치시키길 원하지만 바로크는 끊임없이 변하고 운동하는 이 세상의 우연 속에다 대상들을 위치시킨다. 그래서 인간이 태어나 병들어 죽는 풍경을 자신만만하게 묘사하기도 하고, 종교적 황홀경에 빠진 수녀의 표정이 꼭 오르가즘에 빠진 여인네의 표정과 별반 다르지 않고, 칼로 목을 베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요즘 말로 하자면 ‘하드보일드’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같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이 세상의 진리를 포착하겠다는 예술가적 본능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점에 이른 바로크를 ‘바로크적 고전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하다보면 어떻게 되는가를 로코코의 예술가들은 보여주고 있다. 즉 뜨거운 사랑이 지나가고 난 다음 남는 것이 섹스에 대한 공허한 갈망이듯이 로코코 예술가들은 그것을 진실하게 보여준다. 


Fragonard의 <그네>라는 작품을 보면 바로크가 어떻게 로코코로 향해갔는가를 알 수 있다. 운동과 빛에 대한 배려가 이 작품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관능성이 지나쳐 지극히 퇴폐적이다. 그리고 그네를 타고 있는 여인의 치마 속을 상상해 본다면 로코코의 퇴폐성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관음증환자 처럼 그네 바로 아래 한 남자가 올려다 보고 있다. 바로크의 빛과 운동은 그네를 타는 한 여인의 치마 속을 향해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로코코는 와또와 모짜르트에게 와서 끝도 없는 유미주의로 빠져버리고 만다. 와또가 화려한 색채로 그의 그림을 꾸미는 이유는 여인의 치마 속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바로크적이고 매우 건강했던 사랑이 희미해지자 사랑을 지탱시키기 위한 도구로서의 관능이 등장하고 그 관능이 생의 거짓된 안락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꾸며놓은 작품 속에 자신의 꿈을 새겨넣는다. 즉 로코코는 바로크의 숨겨진 이면인 셈이다.



현대는 매너리즘의 시대이면서 군데군데 로코코적 장식을 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강수지나 나스타샤 킨스키같은 여자들이 인기를 독차지 했던 시대가 로코코 시대였다. 바로크에서는 건강한 여자들이 인기가 많았지만 그 건강성도 로코코에 와서 그 실체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현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넌 사랑을 믿니? 훗, 난 섹스를 믿어. 한 번 하자’라고 공공연하게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섹스를 하나의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자는 말 속에는(* 지극히 예술사적으로 파악하는 것이지만) 자신의 퇴폐를 숨기기 위한 거짓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차라리 그냥 ‘프리섹스’를 주장하는 편이 훨씬 진실된 모습이다.


* 요즘 읽고 있는 책들 중 하나가 프랭클린 보머의 『유럽 근현대 지성사』(현대사상사)인데, 위의 글과 관련된 언급을 하려고 한다.


푸생은 1642년에 친구에게 “나는 기질상 혼잡함을 피하고 잘 정돈된 사물을 찾고 사랑할 수 밖에 없다. ...”고 썼다. 또한 프랑스의 모든 화가 중에서 가장 ‘고전주의적’이고 가장 지적인 이 화가는 특히 생애 중반에 그린 풍경화에서 - 케네스 클라크의 말에 따르면 - 자연에게다 “질서와 영속성이라는 풍채”를 부여하고자 시도하였다. <포키온의 장례식>(1648)과 같은 그림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 자연은 기하학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평선적 요소와 수직선적 요소가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고 있다. 푸생은 이런 균형을 얻기 위하여, 주로 고대양식에 따른 건축물과 신전 등을 도입하였는데, 이는 의심할 바 없이 이상(理想)과 영원함에 대한 감정을 부각시키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63쪽)


-- 보머의 시각은 프랑스의 고전주의를 푸생과 브왈로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이 말은 그 당시 유럽 대륙의 예술적 경향들 속에서 상대적으로 프랑스는 ‘고전적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는 말이다. 17세기는 바로크의 시대였지만, 프랑스 문학에서는 라신느, 꼬르네이유, 몰리에르로 대표되는 고전주의 문학이 휩쓸고 지나간다. 이 불일치에 그렇게 당황할 필요는 없다. 보머가 지적하고 있듯이 17세기의 사람들은 “새로운 항구적인 사물체계”를 원하고 있었으며 그 속에서 이 시기의 고전주의자들은 말 그대로 ‘고전’을 통해서 질서를 파악하려고 했을 뿐이다. 그리고 “파악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믿음을 변화무쌍한 세계 속에서 하나의 질서를 포착할 수 있다는 예술적 자신감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자신감이야말로 ‘근대인’을 특징짓는 성격들 중의 하나이다.


* 제르맹 바쟁의 『바로크와 로코코』(시공사)은 꼭 자료집같다는 느낌 때문에 재미있게 읽히지 않는다. 그리고 이 책만 읽고서는 바로크가 무엇이며 로코코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서문에 뵐플린을 빌어 고전적 미술과 바로크적 미술을 설명한 문장은 깔끔하다. : 


“고전적인 미술은 자연에 등을 돌리지 않으므로 관찰의 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은 현상의 무질서함을 넘어서 세상의 질서 이면에 놓여있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고전적인 구성은 단순하고 명료하며 구성의 각 부분들은 제각기 독립적이다. 또한 정적이며 틀 안에서 폐쇄된 형태를 하고 있다. 반대로 바로크 미술가들은 다채로운 현상에 참여하고자 하며 끊임없이 생성 소멸하는 사물의 유동성에 관심을 가진다. 그들의 구성은 역동적이며 개방되어 있고 틀을 깨고 외부로 확장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구성을 이루는 형태들은 하나의 유기적인 행위 안에 서로 연관되어서 따로 따로 분리될 수 없다. 바로크 미술가들은 확장하고자 하는 기질로 인해 정적이며 육중한 형태보다도 ‘유동하는 형태’를 선호하였으며, 고전주의자들이 강인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고자 하였던 것과는 달리 그들은 파토스를 선호하여 고통과 감정, 삶과 죽음의 모습을 가장 격렬한 형태로 묘사하였다.”(6쪽에서 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