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카프카의 아포리즘

지하련 2000. 2. 8. 00:13

『카프카의 아포리즘』, 이윤택 엮음, 청하, 1989.


아포리즘을 가지고 뭔가 논리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방식이다. 왜냐면 아포리즘으로 문학적 완성도를 논할 수 없으며 단지 작가의 세계에 대한 짤막한 평만을 할 수 있는데, 이것마저도 다른 작품들을 거론함으로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작품이 주가 되고 이 아포리즘은 참조 사항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은 고작 책에 대한 값어치 없는 짧은 감상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때때로 길을 가다 자신과 똑같은 버릇이나 습관을 지닌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이들은 서로의 공통적인 버릇이나 습관을 발견하는 순간 어리석은 그물로 그들의 영혼을 둘둘 만다. 공통점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한 번 더 말해주며 이 분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그리고 카프카의 아포리즘을 읽는 우리는 그것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카프카의 고독과 우울이 그리 멀지 않은 장소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삶은 화려한 봄날의 빛깔을 잃어버리고 뛰어난 작가의 불행한 삶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죽는 것보다 살아가는 것이 더 쉽고 절망하기보다는 희망을 가지는 것이 더 쉽다. 이 얼마나 끔찍한 생의 저주인가. 그래서 우리는 죽은 사람들을, 절망한 사람들을, 그 속에서 벌벌 떨며 자신의 고독과 마주한 사람들을 옆에 두기를 바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