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예술

위험한 그림의 미술사, 조이한

지하련 2002. 10. 2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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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그림의 미술사>, 조이한 지음, 웅진닷컴



그나마 몇 권 되지도 않는 미술 관련 책들인데, 이런 책들만 계속 늘어나는 것이 보기에 썩 좋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틀린 내용으로 가득 차있다거나 형편없는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단지 저자가 ‘밥이 되지도 못하고 세상을 바꿀 실제적인 힘도 갖고 있지 못한 예술을 하는 수많은 ‘지금’의 예술가들과, 도대체 예술 작품을 왜 봐야 하는지 혹은 작품에서 무엇을 보면 좋을지 궁금해하는 소수의 예술 애호가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깜찍한 희망을 가’(p.7)져보았겠지만, 다 읽은 결과 아무 도움도 안 된다는 점이 슬플 뿐이다. 그리고 다 읽고 난 다음 도리어 이 책의 가격이 만삼천원이나 한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을 느꼈을 뿐이다.

혹자는 독자에 따라 틀린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화가의 삶 전체를 이해할 필요는 없다. 보다 호소력있는 이해를 원한다면 차라리 우리 삶을 이야기하면서 설명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 책은 미술사를 처음 공부하는 학생이 몇몇 화가들의 그림을 이해하려고 이 책 저 책 뒤져 스크랩하고 몇 문장 더 적은 책에 불과하다.

다비드리히의 풍경화를 이야기하면서 ‘숭고함’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것이 Kant의 단어이고 낭만주의 양식에서의 자연은 어김없이 이러한 ‘숭고함’을 드러낸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은 이 책의 한계이면서 저자의 한계이기도 하다.

도대체 위험하지 않는 예술 작품이 어디에 있겠는가. 진실을 이야기하고 삶의 비루함을 폭로하며 정정당당하게 세상의 거짓과 허위에 맞선다는 측면에서 모든 예술은 위험한 것들이다. 우리의 삶은 진실 앞에서 고개 돌리고 삶은 비루하지 않거나 비루하지만 그래도 살아볼 가치가 있다고 공공연히 자기 합리화(자기만족)을 해대고 이미 세상의 거짓과 허위에 물들어 그런 것들을 알아차리기 조차 힘든 와중에 예술가들은 그것을 폭로하며 공격하니, 기존의 체계를 완고하게 믿고 있는 자들에 의해서는 탄압을 받고 대중들에 의해서는 무시나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차라리 카라바지오, 다비드리히, 마네, 뭉크, 뒤샹이 무엇을 진실이라고 말했고 무엇을 공격했으며 그래서 우리에게 이들의 작품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에 대해서 적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카라바지오의 작품 속에서 데카르트와 뉴튼을 만나고 서양 근대가 어떤 모습을 펼쳐졌는가를 설명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