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불멸, 베르메르, 칸트

지하련 2002. 12. 22. 11:38
* 보라매공원 안에 있는 도서관에서 가지고 간 책들을 읽었다. 쿤데라의 <불멸>을 다 읽었고 창해 ABC북 시리즈의 한 권인 <베르메르>와 지성의 샘에서 나온 아담한 사이즈의 <칸트>를 읽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칸트>를 읽는 몇 십분 동안 너무 집중을 한 탓인지, 지금 머리가 무척 아프다.
여기 몇 가지를 메모해 둔다.


  1. 불멸

  밀란 쿤데라의 소설 이름이다. 바흐친이 말한 다성성, 또는 카니발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소설이다.
  소설 속에 글을 쓰고 있는 소설가가 등장하는 이유는 허구와 실재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매우 철학적인 통찰을 담고 있는데, 형이상학에서 문제되는 가상과 본질의 문제와 연관된다. 이는 다시 변증법적 순환과 연결된다.
 
  2. 베르메르

  베르메르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관능적이다. 이러한 관능성은 로코코와는 틀린데, 로코코적 관능성은 보다 직접적이라면 베르메르적 관능성은 보다 은유적이며 치명적이다.

  3. 칸트

  표상과 관련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미메시스(모방)과 동일한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칸트 철학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며 논리적이다.
  데카르트의 철학이 감각적인 부분, 육체적인 부분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중세철학과 많이 닮아있다. 이는 데카르트의 철학이 혁명적이긴 하나, 그 이전의 철학과의 흐름은 단절되지 않았음을 뜻하는 여러 징표들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칸트에서는 감각적인 부분, 육체적인 부분, 즉 보다 직접적인 부분에서 시작해 그것이 어떻게 인간 오성의 개념과 연결되는가를 보다 극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물자체의 세계는 인간 오성으로 알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신의 세계는 아예 배제해버렸다. 쿠자누스가 인간의 언어로 신의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며 그 시작을 알렸고 칸트가 그 매듭을 지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헤겔은 인간은 신이 될 수 있다고 천명해버린다. 이를 통해 헤겔은 근대적 정신의 한 극점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