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젊음이라는 이름의 병

지하련 2002. 1. 11. 21:42


기괴하면서 어쩐지 슬픈 기분에 나는 젖어 있었다. 인생은 나를 구름 속에 머물게 하는 일종의 대좌(臺座) 위에서 내 눈에 비치고 있었다. 대지에 닿고 싶다고 강력히 바라고 있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대지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젊었다 - 는 것은 결국 내가 자신의 착오를 사랑했으며, 그 주제에 남으로부터 그것을 지적당하는 것을 싫어하고 피했었다는 뜻이다.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그것을 바란다는 그 청춘기의 병(病), 그 병이 솔직히 말해서 나의 내부에서는 거의 미친 듯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을 피로하게 하고, 벌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으며, 그리고 달아나고 있었다, 모든 것으로부터.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일찌기 없었던 나는 자신이 저주받고 있다고 믿었으며, 어쩌면 시인이었던 것이다. 커다란 불행이 나를 계속 엄습했다 - 그것은 더우기 눈에 보이지 않아 그만큼 쓰라린 시련이었다. 나는 사랑과 침착성을 잃었다. 



  필립 솔레르스가 20살 때 쓴 소설 <도전>의 첫머리다. 만약 겨울해가 비쳤다면 남동쪽으로 비스듬하게 나있는 내 방 창으로 지나가는 빛 알갱이들의 그림자, 혹은 파편이 부딪쳤을 법한 시간에 이 소설을 꺼내 뒤적거렸다.

  서른이 되기 전에 시로 등단하고 소설도 쓰고 문학평론가가 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시를 쓰지 않은지 몇 해가 되었고 소설은 쓰다만 것만 다섯 편이 넘고 문학평론을 쓸 시간도 쓸 주제도 쓸 열정도 없다.

  나이를 먹는 동안, 내가 가진 문학과 예술에 대한 신념은 무척 많이 바뀌었다. 한때 영화가 문학을 위협한다고, 또는 인터넷이 그렇게 하고 있다도 떠들던 이들이 있었다. 그 때 '인류가 사라지지 않는 한 문학은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말한 이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즉 문학이 이때까지 어떤 일을 해왔으며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그래서 문학의 존재 의의를 찾아내는 사람 말이다. 난 그 때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없었다. 하도 시류에 파묻힌 사람들이 뭐라고 하니, 에코같은 사람이 몇 마디 한 것 이외에는.  

  앙드레 바쟁과 그 일당이 영화감독에게 '작가'라는 명칭을 붙인 것도, 꼭 르네상스 때 화가들이 자유학예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과 유사한 것이다. 그러나 누벨바그의 노력이 성공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선 앞으로 두고 보아야할 것이다. (성급한 결론일 지 모르나, 영화는 자본주의의 주류 대중 문화로 남을 것이고 누벨바그의 감독들이 염원하던 위대한 서사장르의 전통을 이어받는 영화는 미술쪽으로 넘어간 듯 보인다. 최근의 멀티미디어 아트 쪽으로 말이다.)

  하이퍼텍스트문학? 이건 유머다. 비참한 유머다.

  젊음이라는 병. 필립 솔레르스의 소설 첫머리를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다. 실은 어제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대단한 각오를 다지면서 말이다. 시를 알게 되었을 때, 그러니깐 어느 정도 시에 대한 감식안이 생겼을 때, 더이상 시를 쓸 수 없었다. 소설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평론의 경우 이러한 감식안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별개라고 볼 수 있다. 시와 소설의 경우 '감식안'때문에 망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건 해보지도 않고 겁을 먹기 때문이다. 독일의 문학평론가 라니츠키가 '자기중심적 성격'이 뛰어난 작가를 구별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말한 점을 나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대단한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지만, 그 자신감으로 인해 내가 고통에 빠지고 번민하며 아파할 것이고 끝없는 정신적 방황 속으로 떠날 것임을 난 이미 알고 있다.

  필립 솔레르스나 르 끌레지오같은 작가가 있는가 하면 매우 늦게 등장하는 작가들도 있는 법이다. 젊음이라는 이름의 병에 걸린 사람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조심스러웠고 그러면서 순식간에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어버렸고 너무 많은 적들을 알아버렸다.

  8시 반에 약속이 있는데, 벌써 8시다. 이 글을 쓰다보니,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 예전엔 곱게 프린터를 해서 문장을 고쳐서 온라인에 올렸는데,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실망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고칠 마음은 없다. 잡글 쓰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소설을 써야되니깐. 기대해도 좋다. 위대한 소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