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낯선 우아함

지하련 2007. 7. 8. 12:42


습기 찬 더위가 온 몸을 휘감아 도는 토요일 밤, 책상 등과 벽 사이에서 종의 탄생 시절부터 이어져왔을 생의 본능 같은 거미줄을 치던 거미와, 낡은 대우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소란스런 공중파 오락프로그램 소리로 뒤범벅이 된 거실에서 낮게 에프엠 라디오 소리가 흐르는 안방으로 가로질러 들어가던, 윤택이 나는 짙은 갈색 바퀴벌레를, 1년 째 온갖 벌레로부터 내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에프킬라로 잡았다. 그리고 새벽까지 악몽에 시달렸다.

혼란스런 고통의 새벽이 끝나고 평온한 일요일 오전을 보낸다. 밀린 빨래를 세탁기로 돌리고 물끄러미 창 밖 하늘을 쳐다보았다. 얼마 가지 않아 내 시선은 두텁게 쌓여있던 습기의 벽에 가로 막혔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만둘 생각이었으나, 그보다 빨리 회사가 정리 단계에 들어갔다. 갑자기 매출이 끊어져버렸고 매출이 일어날 가능성이 낮았던 상태라 자연스럽게 정리에 들어갔으며, 나는 실업자 상태로 접어들었다.

라 트라비아타를 듣고 있다. 세탁기는 제 맡은 바 임무를 끝냈음을 나에게 알려왔다. 마리아 칼라스는 오래된 제이비엘 스피커를 우아하게 울려주고 있다.

낯선 우아함으로 오늘을 지탱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