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떠남 혹은 없어짐 - 죽음의 철학적 의미, 유호종

지하련 2007. 7. 15. 15:34


떠남 혹은 없어짐 - 죽음의 철학적 의미
유호종(지음), 책세상, 2006년 초판 4쇄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생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대 사회에서 죽음이 가지는 철학적 의미, 법적, 의학적 정의에 대해서 논하며, 이것이 가지는 어려움에 대해서 설명한다.

우리 사회 사람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 화장터가 들어오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 그런데 문제는 전국의 화장장의 수는 47개이며, 이 중 인구의 절반 가까이 살고 있는 수도권에는 불과 4곳에 불과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화장터를 강하게 반대한다. 이로 인해 많은 사회적, 경제적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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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5/24/2007052400042.html (조선일보 관련 기사)

즉, 죽음의 흔적은 꼴도 보기 싫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톨스토이나 비트겐슈타인의 생각대로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삶을 잘못 살고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건강과 젊음, 생명 연장에 대한 우리 사회 사람들의 강한 집착은 하이데거가 지적했듯이 죽음에서 느끼는 허무감과 두려움에서 도망치려는 내적 동기의 표현’일까.

어느 날 테레사 수녀에게 한 여인이 찾아왔다. 소중한 사람을 죽음으로 잃은 그녀는 ‘그 사람이 하늘나라로 가버렸어요’라고 비통한 심정으로 호소했다. 이 때 테레사 수녀는 사람들이 흔히 하듯 같이 슬퍼하며 위로하는 대신 너무나 단순명쾌하게 말했다고 한다. “오, 하늘나라, 행복한 곳이지요.”

하지만 우리 사회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까. 어쩌면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죽음학’일 지도 모르겠다. 죽음과 자연스럽게 같이 하면서(화장터나 공원 묘지, 납골당을 지역 사회의 공원으로 만든다거나, 죽음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우리 사회는 조금의 여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하지만 죽음이 가지는 문제는 다른 곳에도 있다. 생명 윤리의 측면에서 발생한 죽음의 정의가 바로 그것이다. 1950년대 초반 인공호흡기가 발명되었다. 어떤 사람이 두뇌를 다쳐 두뇌가 불가역적으로 정지해서 호흡조절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인공호흡기를 달아줌으로써 호흡이 계속 유지되고 그리하여 심장도 계속 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뇌사상태이다.

뇌사상태 환자는 대개 며칠 이나 몇 주 안에 폐나 심장에 합병증이 생겨 심폐사한다(3일 이내 약 50%, 10일 이내 약 90%). 그리고 뇌사상태는 자발 호흡이 불가능하고 회복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자발 호흡이 가능하고 회복 가능성이 남아있는 식물 인간 상태와는 구별된다. 이렇게 인간들이 전통적으로 알고 있던 산 자와도 다르고 죽은 자와도 다른 뇌사 상태라는 것이 새로 발생함에 따라 이 상태를 죽은 것으로 볼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입장 차이가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수긍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적은 분량에 다양한 관점에서의 죽음에 대한 논의를 정리하고 있다. 죽음 이후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칸트의 비판적 관점-논리적으로는 맞으나, 심정적으로는 다소 어정쩡한-을 재 수용하였고, 죽음이 나쁜 것으로 인식되는 것에 대해서는 박탈이론(deprivation theory)를 통해 ‘자신으로부터 좋음(좋은 것들)을 박탈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도 이에 대해서도 유보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 책은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자주 유보적이며, 비판적인 관점을 잃지 않으면서 ‘죽음학’이라는 학문이 가능하다면, 그것의 입문적 성격을 취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난 뒤, 시원함보다는 독자에게 많은 의문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독자에게 현대의 죽음이 가지는 여러 논의를 깔끔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한 번은 읽어볼 만한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가 독자에게 ‘죽음학’에 대한 본격적인 책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해보게 된다.


떠남 혹은 없어짐 - 죽음의 철학적 의미
유호종 지음/책세상


죽음에 관한 재미있는 책들은 위 책 외에도 많다. 내가 읽은 것으로는 아래 두 권이 있다.

춤추는 죽음 1
진중권 지음/세종서적
춤추는 죽음 2
진중권 지음/세종서적

필립 아리에스의 '죽음 앞의 인간'이라는 책을 바탕으로 서양 미술의 여러 작품들을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은 진중권 특유의 박식함이 돋보이는 책이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필립 아리에스의 책도 읽으면 좋을 것이다.

죽음 앞의 인간
필립 아리에스 지음, 고선일 옮김/새물결
죽음의 역사
필리프 아리에스 지음, 이종민 옮김/동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