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오늘 아침

지하련 2003. 1. 27. 16:32
새벽 5시에 잠을 잤다. 그리고 힘들게 10시 40분에 일어났다. 그리고 지금 1시. 무려 두 시간 넘게 씽크대 수도꼭지와 싸웠다. 물이 새면 기분이 나쁘다. 덕분에 스패너 하나를 사게 되었다. 이전 집에선 주로 보일러와 싸우고 여기에선 주로 수도꼭지와 싸운다. 그럼 다음 집에선 전기? 호.호. 그러면 전기 감전으로 죽을 수도 있겠다. 설마 전기 인간이 되는 건 아니겠지.

눈이 내린다. 내린 눈은 곧장 녹는다. 하지만 아스팔트나 시멘트를 뚫고 땅 속으로 스며드는 눈은 몇 되지 않을 게다. 도시의 흙은 죽어버렸고 숨 쉬는 대지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 전에 끊어져 버렸다.

간밤에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를 뒤적거렸는데, 그는 소설이나 시 읽기를 좋아했을 뿐, 사유의 명석함이나 문장의 정확함을 추구하지는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의 책읽기는 재미있지만, 오래 남지 않고 그 자신에 대한 몇몇 언급만이 여운을 더할 뿐이다.

트레이시 에민은 오래 전에 읽은 미술 잡지에서 보았는데, 그녀에게 있어 예술은 자신의 실존적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로서 기능하는 듯하다. 매우 바로크적이다. 르네상스 고전주의를 지나 극적인 형태의 바로크가 나타나듯이, 그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모더니즘 고전주의를 지나 트레이시 에민에서 포스트모던적 바로크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막상 적고 보면 모더니즘 고전주의나 포스트모던적 바로크라는 용어가 무척 생소하게 읽힌다. 용어 하나하나에 대한 정의를 가져다 붙여야 제대로 설명할 수 있겠다. 시간날 때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