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밀레, 아라키

지하련 2003. 2. 17. 16:35
. 어제 밀레를 보았다. 하지만 광고와는 달리 세잔, 고흐, 피사로 등의 작품은 한 점씩 밖에 없었다. 밀레에게 영향을 주었거나 영향을 받은 미술가의 작품을 가지고 온 것이다. 그 중에서 무리요의 작품은 바로크의 이념이 어떤 것인가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번 밀레 전시에서 주목해야할 지점은 2층과 3층으로 나누어진 전시 공간의 차이이다. 즉 바르비종 이전과 이후 사이의 밀레가 얼마나, 확연하게 틀려지는가. 그리고 이렇게 틀려지는 동안 밀레가 삶이나 세계 속에서 발견한 것은 무엇인가. 부서지는 대기 속에서 밀레가 응시하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일요일이라 사람들은 너무 많고 밀레의 작품을 보고 아무런 것도 느끼지 못할 어린아이들까지 있었다는 점에서, 과연 미술 작품 감상은 어떻게 이루어져야하는가를 고민해보게 된다. 내 경험상 미술 작품 감상에 대해 내가 학교에서 배운 건 눈꼽만큼도 없기 때문에, 특히 초등학교 때의 미술 수업은 쓰레기였기 때문에, 미술관을 가득 채우고 있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한숨만 나왔다. 또한 조명의 위치도 제각각이었고 관람 진행도 허술했다.

밀레의 작품이 국내에서 왜 인기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편안해 보여서 그런가. 내가 보기엔 무척 불편하고 소화하기 힘든 주제들을 닮고 있는데 말이다.


2. 아라키의 사진들도 보았다. 내가 보기엔 아라키의 사진은 '반페미니즘'적이지 않은데. 그래서 같이 갔던, 그림을 그리는 여자선배에게도 물어보았고 미학을 전공하는 여자 대학원생에게도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반페미니즘'적인 작품들은 아니라고 대답하였다.(* 아니면 여기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미술관 안에는 남자관람객보다 여자관람객이 많았고 짐작이긴 하지만, 전시 기간 내내 그랬을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의 아라키에 대한 반발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라키만큼, 아라키 이하의 철없는 짓이라고 여겨진다)

아라키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알아야할 사항은 일본 문화의 특수성이다. 일본에서 여성을 밧줄로 묶는 행위는 삼천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여기에 대해 아라키가 가지고 있는 태도는 이 사실을 알고 있을 때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가지게 되는 불편한 감정을 그는 느끼지 못할 것이며 대부분의 일본인들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아라키는 전적으로 생에 대한 열망, 여체에 대한 사랑으로 뒤덤벅이 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열망이나 사랑은 순수하거나 과잉된 것이었서, 어느 작품에서는 미니멀하고 투명하지만 어느 작품에서는 고통스럽고 슬프며 끈쩍이거게 된다.

아라키 도록을 사오지 않았는데, 이번 주 안에 아라키 도록을 사러 강남에서 강북 일민 미술관으로 올라가야겠다. 퇴근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