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작은 아파트 하나 얻어 혼자

지하련 2003. 3. 19. 16:45



작은 아파트 하나 얻어 혼자

고양이 키우면서 살고 싶다. 

고양이 먹이 주면서 아침 떠오르는 해를 쳐다보며 삶을 비관하고 싶다.

순환적 역사관을 굳게 믿으며 내 생 다시 꽃 필 날 있을 거라고 믿으며 그렇게 혼자 살고 싶다.

봄에는 이름 모를 꽃향기가 스며들고

가을이면 낙엽 지는 소리가 들리는 그런 아파트였으면 좋겠다.

여름에는 바람은 불되, 아무도 찾지 않는 아파트이면 좋겠고

겨울에는 눈이 쌓이고 

밤의 하늘이 낮게 드리우고 

사랑하는 여자만 찾아오는 그런 아파트였으면 좋겠다.


그런 작은 아파트에서, 오래된 오디오 시스템에서 

흘러나오는 말러나 슈베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살고 싶다.

낮고 긴 서가에 빼곡히 꽂힌 책들 중 한 권을 꺼내 

오후의 햇살이 들어오는 거실에 앉아 책을 읽으며 살고 싶다.


그렇게 나, 그렇게 혼자 고양이 키우며 

세상을 증오하고 삶을 비관하며 사랑을 믿지 않으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