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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영화 스크린 쿼터제’로 영화인들이 데모할 때쯤이었다. 나도 한 때 영화광이었고 비디오 가게 점원이었으며 시나리오를 쓰던 때가 있었음을 떠올리면서 친구와 논쟁이 붙은 적이 있었다. 나와 논쟁이 붙었던 친구는 고등학교 시절 8mm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녔으며 대학 때는 단편 영화를 찍고 다녔다. 그러나 나는 직장인이었고 그는 번역가였다. 영화와는 무관한 사람이었다. 나는 영화인들이 아예 보기도 싫다는 입장이었고 그는 이해해 줘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아직도 나는 스크린 쿼터를 주장하는 영화인들이 보기 싫다. 한국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은데, 자본주의 시대에 가장 성공적인 상품 중의 하나인 ‘영화’를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보호하기 위한 ‘스크린 쿼터제’를 주장하면서 ‘문화’니, ‘예술’이니 해대는 모습이 역겨웠다. 차라리 솔직하게 ‘돈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했으면 싫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도 ‘돈 벌기’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종종 이기적으로 행동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들이 나와서 떠드는 건 ‘문화 보호’요, ‘예술’이었다. 도대체 그들은 한국 문화와 예술에 어떤 기여를 했다고 그럴까. 내가 보기에 한국 문화와 예술에 기여하는 이들은 아르바이트 해가며 제작비 모아 영화를 찍는 독립 영화 감독들과 그 배우들이다. 골방에 틀어박혀 시나리오를 쓰는 젊은 작가들이며, 일 년에 몇 백 만원도 되지 않는 돈을 받으며 한국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제작 스텝들이지, 나와서 데모하는 그들이 아니다.

그런 영화계가 요즘은 ‘디 워’ 때문에 시끄럽다. 내가 보기엔 전혀 시끄럽지 않아도 될 문제인데. 여러 웹사이트 게시판은 난장판이다. 한국 여론 형성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고 믿어지는, 아니, 도대체 냉철하게 사태를 바라보고 점잖게 이야기하는 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기 드문 포털 사이트의 리플들과 여러 매체 사이트들의 게시물 작성자들이 한국 여론의 핵심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고 여겨지는 요즘, 드디어 우리들의 네티즌 선생들이 드디어 물을 만난 것이다. 너도 나도 떠들 수 있는 어떤 이슈가 생겼고 이제 너도 나도 온라인 논객이 된 것이다.

영화는 ‘예술 작품’이기 이전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통 판매되는 ‘상품’이다. 심형래 감독과 배급사의 마케팅 부서(또는 대행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심형래 감독은 이미 ‘우뢰매’를 통해 한국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운 바 있다. 그들은 ‘디 워’가 시장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또한 영화 평론가들과 관련 매체 기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일제히 ‘혹평’을 하리라는 것을 짐작했을 것이다. 그들은 ‘노이즈’를 바탕으로 해 ‘심형래’라는 개인을 포장하고 ‘디 워’를 포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들은 온라인을 어떻게 활용해야 되는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쯤 되면 볼 생각도 없는 사람들도 봐야 될 형국이다. 이제는 안 보면, ‘왕따’당한다. 한국 사회에서 어린 것이나 나이든 것이나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왕따’다. 흥행이 안 될 수가 없다. 이제 공중파의 시사토론 프로그램에까지 등장했으니, 아이들 손이라도 잡고 가야 될 판이다. 이는 마케팅의 승리다.

그런데 왜 이런 판에 젊은 영화인들은 말려드는 것일까. 너도 나도 나서서 ‘디워’의 마케팅을 도와주는 걸까. 배가 아픈 걸까. 300억이나 가지고 찍었는데, 여기 저기 매체에 나와선 기존 시스템에서 냉대 당한 감독의 설움을 이야기해대기 때문일까. 아니면 도대체 작품성이라는 전혀 없는, 돈만 갖다 부은 영화를 들고 나와 ‘대단한 영화’라고 해대기 때문일까. 아니면 의도적으로 말려드는 것도 그들 자신을 홍보하기 위한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 아닐까.

우리는 선량한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잔인하고 천박한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잡아 먹히느냐, 잡아 먹느냐’의 현장 속에 있는 것이다. 나는 ‘디 워’를 볼 생각도 없고 만약 보게 보더라도 나도 약속이라도 한 듯이 ‘혹평’을 하게 될 것이다. 충무로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영화는 상품이지, 작품이 아니다. 영화 평론가들은 영화 작품이 아니라 영화 상품이 갖추어야 될 최소한의 요건에 대해서 이야기 했어야 했다. 영화 상품이 갖추어야 될 요소들 중에 중요한 것이 ‘스토리’이다. 하지만 엉성한 스토리라도 정신없이 부서지고 빠르게 전개된다면, 그래서 재미있다면 된다. 도대체 요즘 시대에 누가 진지한 감동을 바라는가. ‘트랜스포머’나 ‘다이하드’를 보면서 완벽한 스토리, 진지한 감동, 삶과 세상을 성찰하기를 바라는가. 혹시 심형래 감독과 그들이 주장하듯이 영화인들은 알게 모르게 어떤 편견에 휩싸여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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