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리뷰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展

지하련 2007. 9. 28. 10:56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展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2007. 6. 26 - 9. 30    덕수궁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대영박물관, 프라도 미술관 등과 함께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은 유럽 여행을 갈 경우 반드시 들려야만 하는 곳들 중 한 곳이다. 그러므로 유럽에 관심이 많다거나 안목 있는 미술 애호가라면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놓칠 수 없는 것임에 분명해 보인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귀도 레니, 루벤스, 렘브란트, 반 아이크, 벨라스케스 등 미술사 책에서만 볼 수 있었던 화가의 작품을 한국에서 실제로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이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보러 가라고 이야기해야만 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확실히 렘브란트의 ‘책을 읽고 있는 화가의 아들, 티투스 판 레인’은 위대한 작품이란 어떤 것인가를, 그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었다. 음울한 바로크 색채 아래로, 그 너머로 무한한 정신성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순간은 순간으로 머물지 않고 영원을 향해 전진했다. 하나의 감각은 원래 있던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감각으로 넘어가고 불명료함은 명료함을 넘어 새로운 형태의 명료함을 지향했다.

가령 아래 설명문을 읽어보자. 서양미술사를 수놓은 위대한 미술가들 중에서 아래와 같은 설명이 어울리는 미술가는 과연 몇 명이나 될 것인가. 물질성을 넘어 정신의 상태까지도 환기시키는 미술가가.

‘티투스는 적당한 길의 곱슬머리에 챙 없는 모자를 쓰고, 입을 약간 벌려 책을 낭독하는 순간에 있다. 은은한 빛줄기가 티투스의 이마에 직접 떨어지고, 펼쳐진 책에는 반사된 빛이 표현된다. 어둠 사이에서 화면 전체를 감도는 빛은 물질성을 넘어 정신의 상태까지도 환기시키는 위대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 전시 설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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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로크의 위대성들 중의 하나는 보여주어야 하는 세계와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세계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었던 최초의 양식이었다는 점이다. 벨라스케스의 ‘흰 옷의 어린 왕녀 마르가리타 테레사’에서 화가는 어린 왕녀의 뒤로 보이는 배경은 그냥 무시해버린다. 그가 어린 왕녀의 얼굴에 섬세한 감정의 표현들, 이 왕녀가 살아가야 될 어떤 운명을 엿보게 하지만, 그에 비해 그녀의 옷이나 뒤 커튼은 힘이 있으나 거칠고 매력적이나 르네상스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소 성의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이는 전시된 몇몇 작품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인물들의 운동에 집중하거나 그림의 중앙은 밝게 처리하려는 경향에서 우리는 바로크 미술의 정신적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데카르트나 라이프니츠에서 볼 수 있는 모더니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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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전시된 한 작품 한 작품이 서양 근대 미술의 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어떤 감동을 느꼈을까 하는 생각에는 (늘 그렇듯이) 비관적이다. 예술이 우리 곁에 남아 숨쉬고 있는 이유는 삶과 세상에 대한 새롭고 깊이 있는 통찰이거나 눈물겹도록 슬프고 아름다운 감동 때문이다. 그 점에서 이 전시는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가기에는 조금은 낯설고 어렵거나, 책에서 본 듯한 익숙함으로 인한 무료한 관람이 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그리고 결국 나는 이 전시를 추천하지 못했다. 매너리즘, 바로크, 로코코에 이르는 서양 근대 미술의 정수를 실제로 확인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책에서 본 듯한 익숙한 이미지들, 그러나 그냥 잘 그렸다는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는 그런 재미 정도로 밖에 남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미술 전시는 무료한 종류라는 편견을 가지게 될 지도 모르겠다. (정말 우리가 아무런 준비 없이 가더라도 너무 흥미진진하고 때때로 벅찰 정도의 희열을 주는 전시가 서울의 여러 갤러리들에서 전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에서 귀도 레니의 아름답기 그지없는 창백한 빛깔을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푸념을 해보지만, 그의 ‘참회하는 베드로’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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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오래된 미술 작품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감동의 폭이란 제한적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대형 전시를 보기 보다는 우리에게 덜 알려진 현대 미술가의 전시를 보는 것이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합니다. 인사동, 사간동, 청담동, 삼청동 등지에 위치한 갤러리나 화랑에 가서 보면 현대 미술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