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김서령

지하련 2007. 10. 17. 21:31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김서령(지음), 실천문학사


제법 탄탄하고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표현력을 가진 김서령의 첫 소설집 읽기의 시작은 매우 유쾌했다. 하지만 다 읽은 지금, 요즘 작가들은 왜 여기에서 멈추어 버리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불쾌해졌다. 도리어 뒤에 찬사에 가까운 평문을 쓴 방민호(문학평론가)나 소설가 이혜경, 문학평론가 서영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이 소설집에 실린 여러 단편 속 인물들은 한결같이 가난하거나 불행하거나, 그리고 주변의 누군가가 죽는다. 이 얼마나 손쉬운 작법인가. 이렇게 무책임할 수가 있을까. 아무리 소설가는 소설 속 인물들에 대해 신과 같은 권능을 부여받는다고는 하지만, 이 젊은 소설가의 세계 속에서 곧잘 사람들이 죽고, 그 옆의 주인공들은 슬퍼하다가 지쳐 도망가거나 잠시 잊기 위해 잠이 들거나 그건 나와는 무관한 일이야 식으로 끝나버린다. 꼭 작정이라도 한 듯이 인물들을 비극 속으로 몰아넣고는, 심지어 그 인물들에게 한 줌의 희망, 아니 헤어날 수 없는 절망 속에 빠질 기회마저도 박탈해버리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과연 우리들의 삶이란 게 정말 그런 것일까. 다시 한 번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삶이란 무엇일까.

그런데,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르겠다. 이제 우리에겐 헤어날 수 없는 절망 속에 빠질 기회마저도 없을 지도 모르겠다. 절망에 빠질 기미가 보일 때면, 케이블 TV를 보고, 컴퓨터 게임을 하면 되면 그 뿐이니까. 아니면 술이나 마약을 해도 된다. 그렇게 절망에 빠질 시간마저도 이제 뒤로 미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니면 절망에 익숙해져 버린 탓에, 너무 무감각해졌는지도 모르겠다.

한 때 위대한 비극의 시대가 있었다. 그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의 주인공은 그 소용돌이를 힘겹게 이겨내며, 후대의 우리에게 휴머니즘이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비극은 없다. 그런 비극적 상황은 너무 많은데, 그 옛날의 그런 주인공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런 주인공 역할을 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김서령의 젊은 주인공들은 비극적 상황 속에서 ‘나는 주인공이 아니야’라고 중얼거리는 미성년에 가까웠다. 하긴 우리 시대는 조로의 시대이면서, 동시에 미성년의 시대일지도.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 8점
김서령 지음/실천문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