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매의 노래, 바진

지하련 2007. 12. 16.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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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의 노래>>, 바진(지음), 홍석표, 길정행, 이경하(옮김), 황소자리

 

 

 

책을 읽으면서 현대 중국 사회에 있어서 문화혁명’(1966 ~ 1976)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고, 아직도 아물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노(老) 작가 바진은 끊임없이 개인의 삶과 문학의 존재 의미를 물으며,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과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문화혁명의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끊임없이 문화혁명 시기의 자기 자신과 그의 가족, 그의 동료들에 대해 회상하면서 후회했다. ‘바진 타계 일주년 추모 수상록 선집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책에서 독자는 시간 앞에서 끝없이 진실해야 된다는 작가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자신이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일을 없단 말인가? 문혁이라는 기름 솥에서 10년을 뒹굴었는데, 몸과 마음을 졸였던 재난에 대해서 쓰면 된단 말인가? 누군가 나에게 서독 청년이 나치가 폴란드에서 종족 말살용 살인공장을 지었던 일을 믿지 못하고 일이 일부 사람들의 환상 불과하다고 생각하더라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이런 일이 있을 있다니! 겨우 40년의 세월인데, 사람들은 나치당원이 인성을 저버리고 행한 극악무도한 죄행을 잊어버린 것이다. 나는 아우슈비치의 나치 전범 박물관에 적이 있다. 학살수용소의 유적은 아직도 그곳에 보존되어 있었다. 독가스실과 시체를 태우던 용광로가 몸서리쳐지게도 눈앞에 보였는데, 벌써 존재들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이 생겼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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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란 부정할 없는 사실로서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혁명은 이미 잊혀진 과거가 되고 있었다. 그래서 문화혁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을 상기시키면서 비이성적인 시기 동안 사라져간 동료들과 고통 받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바진을 도리어 공격하기에 이른 것이다. 지금은 극좌파적 오류라는 중국 공산당 공식 평가를 받은 문화혁명. 책에 실린 글들이 1980년대에 쓰여졌다는 점에서, 2000년대의 중국 작가들은 이것을 어떻게 회상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문화혁명 시기, 중국 신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중의 사람인 바진을 비난하고 공격했던 10대의 아이들은, 40, 50대가 지금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그들은 과연 아직도 문화혁명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래서 바진은 문혁박물관 세워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

 

독일이나 일본이나 중국이나 한국이나 … … 일부 사람들에게는 과거란 날조된 상상의 부산물이고, 일부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이고,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있으나 마나 어떤 종류의 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수잔 모스의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마지막 부분의 짤막한 이야기는 묘하게 바진의 책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과거는 끊임없이 우리 곁을 돌며, 우리의 현재에 영향을 주고 있다.

 

1982년에 (1926년에 벤야민의 교수 지원을 퇴짜놓은)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열린 국제학회에서는 <<파사젠베르크(아케이드 프로젝트)>> 벤야민 <<전집>> 5권으로 출판된 사건에 주목했다. 공식 발제가 끝난 다음날 아침에 학생들과의 자유 토론에서, 벤야민 학자들은 각자 대립하는 학파에 맞서 자기만의벤야민을 옹호했다. 이들 논쟁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많이 들었던 논쟁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아침에 통찰력 있는 발언을 것은 우리가 아니라 독일 학생이었다. 갑자기 그는 학회장에 독일계 유대인이 없다, 자기 세대 학생 중에 그들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의 부재가 느껴진다고, 그들이 없어서 슬프다고 말했다. 학회장은 갑자기 유령들로 가득 찼다. 우리는 오한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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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수잔 모스 지음, 문학동네),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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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의 노래 - 8점
바진 지음, 홍석표.길정행.이경하 옮김/황소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