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미적 현대와 그 이후,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

지하련 2011. 7. 9. 02:21


미적 현대와 그 이후 - 10점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 지음, 김경식 옮김/문학동네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 『미적 현대와 그 이후』, 김경식 옮김, 문학동네, 1999.

 


서가에서 책을 꺼냈다. 책 표지를 펼치자, 1999년에 내가 이 책을 읽었음을 드러내는 메모가 보였다. 한창 공부를 할 때였고, 벌써 십 여 년이 지난 일이다. 내가 읽었던 문학 이론, 혹은 미학 관련 책들 중에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이 책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거의 없었다. 놀랍도록 선명한 입장으로 미적 현대 이후의 탈근대를 설명해 나가는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에 대한 연구는 일부의 독문학 전공자에게만 해당되는 일인 듯 보인다. 그의 주저 중의 한 권은 ‘도전으로서의 문학사’는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된 듯, 문학과지성사에서는 절판을 시켰다. 이런 상황을 보면, 학문의 세계에도 트렌드와 패션이 있고, 학문의 진정성이나 깊이, 통찰과는 상관없이 트렌드와 패션에 민감하느냐, 민감하지 않느냐가 중요해진 세태를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는 ‘수용미학’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한국에서 이해하고 있는 바 ‘수용미학’ 이상의 깊이와 통찰을 지닌 학자이다. 이젠 절판된 ‘미적 현대와 그 이후’는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가 ‘연구했던 현대성의 개념사를 계몽주의에서 진척시키기 위해 쓴 논문들을 한 곳에 묶은 것’이다. 특히 미적이고 예술 수용적인 관점에서 미적 현대성(aesthetische Moderne)에 대해 살펴보고 되짚고 있다. 특히 ‘반(反) 자연으로서의 예술: 1789년 이후의 미적 전환에 관하여’든가 ‘이탈로 칼비노: 만약 어느 겨울밤에 한 여행자가 - 탈현대적 미학의 변호’는 흥미진진한 독서의 경험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1999년에 읽었고 그 이후 한 번 더 읽었던 이 책에 대한 독서 경험이 아직도 선명한 것은 그만큼 이 책이 가지는 호소력이 남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혹시 문학 이론이나 미학 전공자가 있다면, 이 책은 반드시 필독서이다.

아래 글은 2000년대 초반에 이 책에 대한 감상을 간단하게 적어놓은 것이다. 서가에서 책을 꺼냈으니, 당분간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 오래된 감상 -


누군가가 속물적으로 포스트모던을 이해하고 그것을 찬양하거나 그것을 배격한다면, 찬양하는 자에겐 ‘당신이 얼마나 근대적인 줄 아시오?’라고 물을 것이며 배격하는 자에겐 ‘당신이 얼마나 포스트모던적인 줄 아시오?’라고 물을 것이다. 미래가 우리에게 아무런 확신도 던져주지 못하고 우리의 이성이 고작 인간 이성의 한계 만을 드러낼 때,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일 때, 그 순간을 우리는 ‘포스트모던’의 시작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그러니 ‘포스트모던’은 ‘흄’부터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아주 불행하게도 한국의 그 어느 것도 포스트모던적이지 않다. 지금 여기에서 포스트모던을 떠들고 있는 나는 ‘시대착오’이며 포스트모던적이라고 평가되는 작품은 한결같이 얼치기 패러디이거나 미숙아, 혹은 무뇌아적 산물일 뿐이다. 아마 이것을 정치경제학적으로 보자면 지배계급의 농간에 의한 미적 탈근대의 수용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80년대를 무겁게 짓눌렀던 정치경제학적 거대담론을 몰아내기 위한 전술이었고 지식인들의 자포자기적 반응들이 한국적인 탈근대적 상황을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상업주의에 대한 찬양이었으며(역겨운 문화담론들을 보라!) 허풍만 심한 (상업)영화르네상스를 불러왔고 돈에 혈안이 될 것이 뻔한 문화산업들에게로 대중의 시선을 돌리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가 지금 포스트모던을 향해가고 있음을 부정하지 못한다.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가 ‘아직 근대를 끝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몇 명의 근대주의자들에게 조심스럽게 탈근대를 옹호하고 있는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가치있는 저작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책의 세부 내용은 다루지 않겠다. ‘루소에서 칼비노까지’라는 부제를 붙인 이 책의 세부를 다룬다면 이 글은 꽤 길어질 것이다.

참고로 누군가가 ‘주체가 죽었다’라고 단언했을 때, <‘주체가 죽었다’라고 말하는 자는 과연 누구인가?>라고 되묻는다면 그 물음은 포스트모던의 딜레마를 지적하는 매우 효과적인 것이 될 것이다. 그러니 포스트모더니즘을 말할 때, 그것이 ‘20세기판 허무주의’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그리고 ‘문학비평’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매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적어도 문학비평가라는 수식어를 가지려면 이 정도의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 책 표지에 실린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의 소개를 옮긴다.

수용 미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야우스는 1921년 독일에서 출생하여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프루스트 연구로 박사학위를, 중세 문학 연구로 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뮌스터 대학과 기센 대학을 거쳐 1966년부터 콘스탄츠 대학에 재직하면서 대학 개혁 프로그램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문예학 분야에서 이른바 '콘스탄츠 학파'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연구 집단인 '시학과 해석학'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수용미학의 선언문'으로 불리는 '문예학의 도전으로서의 문학사'는 16개국 언어로 번역될 정도로 커다란 국제적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때부터 그는 '수용미학'의 선구자로 불린다. 1987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도전으로서의 문학사'(1970), '중세 문학의 고대성과 현대성'(1977), '미적 경험과 문학적 해석학'(1977/1982) 등 일련의 저서를 출간했으며, 퇴임 후에도 왕성한 연구 활동을 통해 '미적 현대와 그 이후 - 루소에서 칼비노까지'(1989), '이해의 길들'(1994) 등 수준 높은 연구물들을 발간했다. 1997년 3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