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리뷰

Flight To Denmark , Duke Jordan Trio

지하련 2007. 12. 29.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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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ight To Denmark
 
Duke Jordan Trio
Steeple Chase, Denmark


눈으로 뒤 덮인 숲 속에 한 남자가 서있다. 두꺼운 외투에, 끝이 뾰족하게 솟은 모자, 둥근 안경, 두 손은 외투 주머니에 꽂은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지만,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쌓인 눈의 울퉁불퉁함 때문인지, 사진을 찍은 사람이 약간 비스듬하게 카메라를 쥐고 있는 탓인지, 이 남자의 서 있는 포즈가 약간 오른 쪽으로 기울어져, 불안함을 드러내는 듯하다.

흰 색으로만 채색된 그림 한 가운데 어정쩡하게, 잘못 자리잡은 듯한 그 남자의 이름은 듀크 조단(Duke Jordan). 1922년 태생의 그는 1940년대 후반 찰리 파커 쿼텟(Charlie Parker Quartet )에서 활동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그 곳에서 찰리 파커, 마일즈 데이비스, 토미 포터, 맥스 로치 등과 함께 연주를 했지만, 연주 실력을 인정 받은 것은 아니었다. 이후 많은 뮤지션들 - 콜맨 호킨스, 스탄 겟츠, 진 아몬즈, 스니 스팃 - 등과 연주를 하지만, 커다란 명성을 얻지 못한 채, 미국의 재즈는 불황기를 맞는다. 1970년대는 미국 재즈계는 암흑기와도 같다. 그러는 사이, 듀크 조단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까지 미국 뉴욕에서 5년 이상 택시 기사로 일하며 힘든 생활을 보낸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 후반까지 미국은 락 뮤직과 팝 뮤직에 의해 재즈는 대중적 기반을 잃어버렸다. 대신 유럽에서 새로운 재즈가 부흥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ECM 레이블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유럽으로 건너가 연주활동을 했다.)

그러던 그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는 계기는 1973년 덴마크의 재즈 애호가들이 모여 만든 비영리조직인 Jazz Exchange의 덴마크 초청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본격적인 연주를 다시 시작하였으며, 이 산뜻한 앨범 <<Flight to Denmark>>이 그렇게 탄생하게 된다.

이 흥미로운 앨범은 유럽적인 스타일이 풍부한 앨범이다. 재즈 특유의 리듬이 살아있으면서 심플한 악기 구성은 이후 펼쳐질 컨템플러리 재즈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특히 듀크 조단의 피아노는 북유럽의 청량감을 보여주는 듯하다. 부드러우면서 톡톡 튀는 재즈 앨범은 미국에서 출발한 재즈가 유럽 속에서 자리잡게 되는 긴 여행을 압축해놓고 있다. 듀크 조단의 대표적인 앨범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 앨범은 재즈 애호가뿐만 아니라 재즈를 즐겨 듣지 않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대중적인 앨범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음악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이 앨범을 구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수고를 거쳐야 한다는 점뿐.

<<Flight to Denmark>>, 특히 차가운 겨울에 참 어울리는 앨범이다.


[수입] Duke Jordan Trio - Flight To Denmark - 8점
Duke Jordan TRIO (듀크 조던) 연주/Steeple Cha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