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볶음국수

지하련 2008. 2. 22. 19:39
Sappororamennakamura3
(출처: http://onokinegrindz.typepad.com/ono_kine_grindz/ )


종종 혼자 밥을 먹어야할 때가 있다.
아니면 나처럼 매일 혼자 먹어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매일 혼자 시켜서 먹는 사람도 있다.
아주 드물게 베란다에 밭을 만들어놓고 혼자 상추에 밥 싸먹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가끔은 혼자 밥을 먹는다는 행위가 꽤 철학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혼자 있다는 것을 일상에서 가장 절실하게 느낄 때가 바로 혼자 밥을 먹을 때이다.
그것도
혼자 생활하기 시작한 지 7년 정도 지난 후,
겨울이 끝나가고 봄이 막 두터운 외투를 벗으려고 하는 느즈막한 일요일 오후,
창틈으로 뿌연 햇살이 밀려들어오지만, 누구에게도 연락할 곳이, 솔직히 연락할 자신이 없을 때,
그 때 혼자 오래된 김치와 누런 밥에, 계란 후라이 하나로 끼니를 해결할 때,
혼자 밥을 먹는다는 행위는 고독의 순간이 어떤 것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나게 해준다.

하지만 이런 느낌을 잠시라고 덜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밥을 먹는다는 행위에 집중하지 말고
요리를 만든다는 행위에 집중해야만 한다.

최근 들어,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남자를 만나기 쉬운 것도 바로 이런 이유 탓이다.
즉 너무 외로운 시대인 것이다.

혼자 있다는 느낌도 싫고, 요리에는 아무런 재능도 가지지 못한 이는
결국 밖으로 나가 집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든가, 굶는 것을 택한다.

요리를 하자. 요리만 외로운 시대를 잠시라도 잊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 때 볶음 국수 요리를 하자. 볶음 국수 요리는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요리초보자들에게 요리한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가지게 해준다.
꽤 많은 재료들을 다듬고 채를 썰어야 하기 때문에.
둘째, 요리하는 동안 많은 소리들과 만날 수 있다.
도마에 칼이 부딪히는 소리부터 후라이팬에서의 볶는 소리까지.
셋째, 식당 주방장처럼 후라이팬을 들고 잠시 포즈를 취할 수 있다.
넷째, 하나만 할 줄 알면 수십 가지 볶음 국수 요리를 할 수 있다.
해물 볶음 국수, 야채 볶음 국수, 새우 볶음 국수, 베이컨 볶음 국수, 버섯 볶음 국수, ... ...
소면으로 만들어도 되고, 칼국수면으로도 만들 수 있고, 심지어 스파게티 면으로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볶음 국수 요리를 하다보면,
혼자 밥을 먹는다는 생각보다는 요리를 한다는 생각에 확실히 빨려 들어간다.
이번 주말에 혼자 사는 이라면 반드시 도전해보길 바란다.

요리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먼저 집 근처 마트로 간다. 필요한 재료를 사자.

- 면(소면이나 칼국수면)
- 굴소스(마트에 가면 병에 담긴 굴소스를 쉽게 찾을 수 있다)
- 햄(종류는 무방하다. 베이컨을 사도 되고, 스팸도 괜찮다)
- 피망, 양파, 마늘, 버섯, 고추, ... 그 외 넣고 싶은 야채 일절.
- 올리브유

먼저 야채를 씻어 네모 반듯하게 잘라둔다. 마늘도 얇게 자른다.
햄도 네모 반듯하게 잘라둔다.
그리고 끓는 물에 면을 1~2 분간 삶아, 찬 물로 헹구어 가지런히 놓아둔다.

올리브유를 조금 바른 후라이팬에 햄과 마늘을 굽는다.
그 다음 야채를 넣는다.
그 위에 올리브유를 좀 뿌린다.
야채가 적당하게 익을 수 있을 정도까지 볶는다.
이 때 햄과 마늘이 너무 타지 않도록 한다.
간간히 올리브유를 뿌려도 상관없다.
그리고 그 위 굴소스를 뿌린다. 계속 볶는다.
마지막으로 삶은 면을 후라이팬 위에 넣는다.
조금 볶다가 먹으면 된다.

막상 적고 보니, 너무 어렵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조금', '적당하게', '계속' 이라는 단어가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리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반드시 요리 중간 중간에 맛을 볼 필요가 있다.
아마 맛을 보면서 '이렇게 맛있을 수가!'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될 지도 모른다.

위 사진처럼 요리를 하고 싶다면 갖가지 재료를 각각 따로 볶아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소스와 면과 함께 아주 센 불에 빨리 볶는다.

하지만 갖가지 재료를 따로 볶아 놓아둘 접시도, 아주 센 불도 없는 우리는
그냥 한데 모아 넣고 볶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래도 맛있을 것이다.

다 적고 보면, 처절한 눈물의 볶음 국수 같다는.. ㅡ_ㅡ;;;
요즘 내가 너무 우울한 탓인가,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