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Thinking/경제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시대가 바뀌고 있다

지하련 2008. 3. 18. 12:28
* 다산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퍼온 글입니다. 미국 경제를 중심으로 한 현재의 세계 경제 위기는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오늘 아래 내용의 메일레터가 왔네요. 이에 통채로 옮깁니다.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시대가 바뀌고 있다

인터넷 사회과학 연구 네트워크(social science research network)에서 논문 다운로드 회수 1위인 학자가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젠센(Michael C. Jensen)이다. 젠센 교수의 논문 다운로드 회수는 무려 31만 4천여 건으로 2위인 22만 6천여 건의 유진 파마(Eugene Fama)를 월등히 앞서고 있다.

80년대 금융자유화와 97년 외환위기로 신자유주의 확산


젠센은 금융자유화와 주주가치경영을 주장한 신자유주의의 핵심 이론가이다. 그는 1980년대 미국의 ‘금융자유화정책’을 두고 미국 역사의 오류였던 1930년대 뉴딜 포퓰리즘을 개혁하는 ‘안티뉴딜’이라고 평가했다. 우리는 뉴딜정책이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실시한 재정 확대와 노사관계 개혁 정책이라고 알고 있지만, 젠센은 뉴딜정책의 핵심이 금융자본에 대한 국가통제에 있으며, 1980년대 금융자유화는 뉴딜 포퓰리즘 오류를 시정하는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보았다. 젠센의 지적은 신자유주의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젠센의 말대로 뉴딜이 포퓰리즘인지는 모르겠지만, 금융자유화·금융세계화가 뉴딜개혁을 기반으로 하고 있던 포드주의 계급타협과 케인스주의 복지국가체제를 무너뜨린 힘의 근거라는 젠센의 역사인식은 정확한 것이다.

1980년대 ‘안티뉴딜’이 미국·영국 등에서 신자유주의를 확산시킨 전환점이었다면, ‘외환위기’는 한국에서 1997년 체제라는 신자유주의 소유자사회를 확립하는 역사의 변곡점이었다. 현대자본주의에서 소유자는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고 있는 금융자산계층이다. 금융시장과 자본시장은 소유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곳이며, 금융이 규제를 받던 시기에는 이들 금융자산계층의 발언권도 약했다. 그러므로 금융자유화 이후 돈이 곧 권력이 되는 소유자사회로 변한 것은 금융 규제완화 정책의 당연한 결과다.

이윤 창출이 교역이나 상품 생산을 통하기 보다는 점점 금융을 통해 이루어지는 현상을 경제의 금융화(financialization)라고 한다. 금융자산소득을 금융회사의 이윤과 비금융부문의 이자소득의 합으로 계산할 때 세계 각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금융자산소득 비중은 1960~1970년대에 비해 1980~1990년대에 대체로 증가했다. 특히 금융자유화와 신자유주의를 주도한 미국과 영국의 경우 금융자산소득 비중이 급속히 증가했다. 이것은 금융자유화 과정에서 금융자산계층이 이익을 크게 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국내총생산 대비 금융보험업의 부가가치 비중이 1995년 6.2%에서 2005년 7.5%로 증가했는데, 이는 2005년 일본 6.3%를 능가하고 금융선진국 영국 8.2%, 미국 7.8%에 근접한 수치이다. 더욱이 전(全)산업 영업잉여 중 금융보험업 영업잉여의 비중은 1995년 6.2%에서 2004년 15.3%로 2배 이상 급증했다. 금융산업의 영업잉여 비중이 급증한 것은 금융산업의 독과점화와 함께 더 높은 금융수익률을 요구하는 금융자산계층의 발언권과 사회경제적 영향력의 강화에 따른 것이다. 즉 외환위기 이후 금융자산계층과 자본투자자 집단의 사회경제적 힘의 강화가 금융산업의 이윤율 증가, 금융자산 소득의 증가 등 한국 경제의 금융화 현상을 촉진한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금융자유화와 신자유주의의 신화 무너져


케인스(John M. Keynes)는 금융시장이야말로 군중심리의 영향을 받는 불완전한 시장이기 때문에 경제 안정을 위해 국가 규제가 꼭 필요하다고 보았다. 케인스의 생각대로 투기적 거품과 금융 불안정을 양산했던 20세기 초 금융자본주의 시대는 대공황으로 종막을 고했다. 대공황으로 시민들의 삶이 나락에 떨어지자 미국에서는 뉴딜 개혁이 추진됐고 독일에서는 파시즘이 등장했다.

케인스는 금리소득계층(rentiers)이 지주계급과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케인스는 유동성과 고수익성을 추구하는 금융자산계층의 속성 때문에 생산적인 기업 투자가 축소되고 금융자산·부동산·금 등 투기적 투자가 범람하는 등 투자 방향이 오도될 가능성이 있으며, 인플레이션과 완전고용정책에 대한 금융자산계층의 적대감으로 인해 실물투자 저하가 초래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이유로 케인스는 금융자산 수익률 증대를 원하는 금융자산계층의 요구에 반대했고 금리소득계급의 안락사가 필요하다는 은유적 주장을 펴기도 했다.

최근 미국경제가 2차 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는 주장이 미국 경제계와 학계에서 나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서브프라임 사태를 보면서 미국경제의 연착륙 여부와 세계경제 파급 정도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연구하는 사회과학자들은 세계 역사의 흐름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20세기 후반 신자유주의의 도도한 흐름은 젠센이 말했듯이 자본시장과 금융자유화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런데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바로 이 믿음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인터넷과 교통기술의 발달, 정보화 시대 등 신경제를 치장했던 온갖 가설들로 우리를 유혹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사태는 군중심리의 영향을 받는 금융시장이 매우 불안정하며, 금융자유화와 신자유주의의 신화가 허구라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글쓴이 / 조영철
· 현 국회 산업예산분석팀장
·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 고려대학교 경제학박사
· 저서 : <금융세계화와 한국경제의 진로>, 후마니타스, 2007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