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生은 다른 곳에, 밀란 쿤데라

지하련 2008. 4. 27. 15:37
생은 다른 곳에 - 10점
밀란 쿤데라 지음, 안정효 옮김/까치글방



生은 다른 곳에
밀란 쿤데라(지음), 안정효(옮김), 까치



이 소설은 ‘봄을 사랑하는 남자’ 뿐 아니라 ‘봄의 사랑을 받는 남자’라는 의미도 되는 야로밀(Jaromil)이라는 이름을 가진 시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것은 소설의 표면에 드러나는 것일 뿐. 이 소설은 젊음과 그 젊음이 염원하고 갈구하는 혁명에 대한 알레고리이며 모호한 관찰이며, 작가와 허구적 목소리의 뒤섞임이다.


‘생은 다른 곳에’. 프랑스 학생들이 소르본느의 벽에다 이렇게 낙서를 했다. (… …) 그 까닭은 참된 삶이 다른 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길바닥에 깐 돌들을 뜯어내고, 자동차들을 뒤집어엎고, 바리케이드를 일으켜 세우며, 그들이 세상에 등장하는 방법은 시끄럽고 화려하고, 불꽃의 조명을 받고 최루탄의 폭발에서 영광을 찾는다. 빠리의 바리케이드는 상상만 할 뿐이고 샤를레스빌을 아예 떠날 수 없었던 랭보에게는 삶이 훨씬 더 어려웠다. 그러나 1968년에는 수천 명의 랭보가 그들 자신의 바리케이드를 소유하고 있다. 그 바리케이드 뒤에 서서 그들은 현재 세상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과 어떠한 타협도 거부한다. 인간의 해방은 철저해야 하고, 아니면 전혀 해방이 아니다.
- 193쪽


작가의 목소리는 1968년 파리의 불타는 젊음들 뒤에 서서 비아냥거리고 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그렇지만 모든 인간은 다른 삶들도 살아볼 수가 없기 때문에 후회한다. 그대 또한 그대가 실현해보지 못한 모든 잠재성들을, 그대의 모든 가능한 삶을 다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안타깝도다. 자비에르의 삶을 실현시킬 수가 없다니!) 우리들의 얘기는 그대와 마찬가지다. 이 얘기도 역시 그것이 이룩할 수 있을 만한 다른 모든 소설이 되기를 갈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다른 전망대를 세우려는 꿈을 끊임없이 꾸고 있다. (… …) 우리들은 어리석은 야로밀보다 별로 더 아는 것이 없으며, 야로밀은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정말로 조금 밖에 모른다. (… …) 인간은 그의 삶에서 뛰쳐나올 수야 없지만, 어쩌면 소설은 훨씬 자유로운지도 모른다. 혹시, 우리들이 남몰래 서둘러서 전망대를 허물고는 적어도 당분간이나마 그것을 다른 곳에다 옮겨 세웠다고 상상해보라. 어쩌면 우리들은 그것을 아주 아주 멀리, 야로밀이 죽은 한참 후로 가져갈 수도 있으리라! 어쩌면 (그의 어머니까지도 몇 년 전에 죽었기 때문에) 아직도 야로밀을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이곳으로, 현재로 그것을 옮겨올 수 도 있으리라.
- 296쪽 ~ 297쪽
(‘자비에르’는 소설 주인공인 야로밀이 쓰고 있던 이야기의 주인공 이름이다.)



‘생은 다른 곳에’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꿈이다. 1968년 파리에 대해 많은 지식인들이 이야기하지만(‘파리 혁명’이라고까지 하면서), 밀란 쿤데라의 눈에 비친 68년 파리는 마치 공산혁명이 진행되던 1940년대 후반의 체코 프라하와 비슷해 보였을 것이다. 그는 야로밀이라는 어리석지만 순수하고 어머니의 치맛바람 속에서 자라났지만, 어머니의 영향 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순백의 사랑과 그 사랑이 불러일으키는 욕정에 대해서 종종 무방비 상태가 되는 시인을 통해 혁명 시대가 어떻게 오고 어떻게 가는지를 이야기한다. 이 소설의 원제가 ‘서정시대’였지만, 실은 ‘서정시와는 아무런 관련없는 혁명 시대’가 그 속뜻은 아니었을까(밀란 쿤데라 또한 18세의 나이로 공산당에 가입하고 젊은 시절 시인으로 활동했다).

위대한 문학이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는 자괴감이 이 소설 밑바닥에 깔려있는 작가의 자의식이라면, 소설은 끊임없이 어리석은 젊음에 대해서 꾸짖고 비아냥거리며 인생을 제대로 살아갈 용기가 없기 때문에 무모해지는 꿈과 그 꿈에 의해 발동되는 행동들에 대해 조소한다. 그래서 소설을 다 읽고 나면, 한 때 운동권의 잘 나가는 투사가 정치 권력의 중심을 향해 돌진해 가는 국회의원이 되거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꿋꿋하게 수익 창출에 골몰하는 비즈니스맨이 된 모습을 씁쓰레하게 떠올리게 되거나 세상에, 세상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인생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알지 못했던 상태에서 혁명을 노래했던 우리들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이 소설은 매우 실험적이고 위트와 유머가 넘치지만, 이마저도 밀란 쿤데라의 자괴감이 만들어내는 소설의 기형화(畸形化)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쳐 슬펐다. 소설책을 덮고 나는 바진(巴金, 1904~2005)의 글을 떠올렸다. 20세기 중국의 모든 것을 경험한 그가 떠올리는 문화대혁명의 모습이 기억났다.
 

“내가 어찌 기억하지 못하겠습니까?” 나는 말했다. “그날 저녁 몇몇 중학생들이 담을 넘어 들어왔지요. 앞장선 한 사람은 열네댓 살에 불과한, 베이징에서 온 간부 자제였는데, 그는 동두(銅頭)채찍으로 샤오산(바진의 아내)의 눈을 때려 다치게 했습니다. 그들은 몇 시간 소동을 피웠고, 마지막엔 나와 샤오산, 두 여동생, 그리고 스물한 살 난 딸을 전부 화장실에 가두었어요. 그들은 마음대로 물건들을 가져가더군요. 화장실의 문을 잠그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떠난 후 30여 분이 지나서도 우리는 감히 문을 열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이튿날 새벽 샤오산은 기관에 보고하였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학생들은 여느 때처럼 우리 집에 들어서자마자 함부로 뒤엎고 제멋대로 물건을 가져갔습니다. 다만 옷장과 책꽂이에는 기관에서 봉한 딱지가 붙어 있어서 그것을 건드리는 사람은 없더군요. 대략 일년여 시간이 지나자 기관이 우리 전 가족을 아래층으로 옮기게 했고 윗층의 방을 모두 폐쇄시켜버렸습니다. 계속해서 대학생들이 들어와 다시 우리 집을 차지했습니다. 그들이 처음 들어왔을 때, 우리 ‘소’들은 모두 불려나와 심문을 받고 대청에 무릎을 꿇었으며, 어떤 사람은 맞아서 이가 빠졌습니다. 이 곳에는 당시 작가협회 분회(分會)가 있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작가들이 ‘소’로 취급되어 온갖 수난을 당했으니 정말 엄청난 풍자 아닙니까! 이것은 대략 1968년 1월 하순의 일인데, 그날 신문이 끝나자 조반파 우두머리가 우리를 풀밭에 불러놓고 훈화를 하더군요. 우리는 모욕을 당한 후 다시 욕설을 들었지만 감히 한 마디 대꾸도 하지 못했습니다.
- 바진, <<매의 노래>>(황소자리), 119쪽 ~ 120쪽
(설명: 문화대혁명 당시 사상이 불순하다고 평가된 사람들을 ‘소’로 취급하였고 외양간 생활을 오랫동안 하기도 했다. 바진 역시 그 외양간에서 살기도 했다. 그리고 문화대혁명 때 동원된 중고등학생, 대학생을 ‘홍위병’이라 하며, 직장에서 문화대혁명을 지지하여 들고 일어났던 직원이나 노동자를 ‘조반파’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홍위병’들이 이제 사오십대가 되어 중국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아직 ‘문화대혁명’에서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살아있을 때 바진은 문혁 박물관을 건립하여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희생된 많은 이들을 위로하고 기념하고 싶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