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내 인생 최대의 적

지하련 2008. 5. 2. 11:41


뜨거운 차가 부담스러워지는 계절이 온 것일까. 아니면 내 마음의 뜨거움이 어색해지고 낯설어지는 나이가 된 것일까. 아니면 엉망으로 살아온 시절들에 대해 육체가 그 특유의 반응을 쏟아내는 것일까.

천칭자리 태생은 늘 어떤 선택의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넣고 그 선택을 끊임없이 뒤로 미루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일까. 세 여신을 앞에 두고 망설이는 파리스처럼.

전 세계 사람들이 망쳐놓은 계절은 실성한 듯한 더위를 우리에게 선사하고 극지방의 얼음이 녹고 깊은 바다 물고기들이 길을 잃고 얇은 바람은 삽시간 두텁고 무거운 부피로 우리의 도시를 강타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모른다는 건 얼마나 좋고 행복한 일인가. 모르기 때문에 그저 두려움에만 떨고 신에게만 의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토록 갈구하던 신은 우리에게 외롭고 싸늘하게 죽어가는 키에르케고르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신은 죽었다고 이야기한 채 미쳐 죽어가는 니체의 모습에게서 교훈을 찾으라고 한다. 결국 선택은 우리의 몫.

이젠 술마저도 날 버리고 날 둘러싼 모든 이들이 적처럼 보이는 어느 시간,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혹은 내 자신이 내 인생 최대의 적이 아닐까. 하긴 그럴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