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misc.

지하련 2008. 6. 2. 19:34

쌓인 스트레스 탓일까, 아니면 과도한 음주 탓일까, 아니면 나에게 영원히 무심할 것같은 저 별빛, 혹은 날 스쳐지나가면서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봄처녀의 하얀 볼, 어쩌면 아무런 이유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오후 늦게 갑자기 찾아온 복통은 먼저 수면을 방해했고 사람들 앞에서 가끔 이마를 찌푸리게 만들었으며 끊임없이 방바닥과 화장실을 오가게 만들었다. 처음 간 약국에선 소화제와 진통제를 주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 다음 간 약국에서는 좀 강한 소화제와 위 경련을 위한 진통제(?)를 주었다. 병원에 가는 것이 정석이지만, 병원에 갈 시간 조차 없었다.

다행히 주말을 지나자 통증을 거의 사라졌다. 대신 아픈 동안 거의 먹지 못한 탓에 현기증이 조금 있을 뿐이다.

내가 아픈 동안, 이 나라도 아팠다. 아주 낮은 투표율로 당선된 대통령과 그의 내각은, 그리고 10년 야당 생활을 청산하고 여당이 된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문제는 그들이 내놓는 정책이나 의사결정이 폭넓은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일종의 독단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픈 동안, 새벽 라디오를 통해 시위 현장 소식을 들었고 다음 날 TV를 보면서 상황이 심각했음을 알게 되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국민들은 2008년을 살고 있는데,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1980년대 중반을 살고 있다는 확신을 들게 만들었다. 더구나 그들이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 스타일은 완전히 1970년대나 80년대식이다. 그런데 더 끔찍한 것은 이들과 함께 앞으로 5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국민들이 얼마나 자주 촛불을 들어, 그들에게 '우리는 지금 2008년을 살고 있어요'라고 가르쳐줘야 할 것인가.

비가 많이 내린다. 우산을 들고 나가지 않은 탓에, 비에 흠뻑 젖었다. 아직 몸이 좋지 않다. 이럴 때,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느낀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혼자 산 사람들을 떠올린다. 아니면 지금도 혼자 살고 있는 미셸 투르니에를... 언제쯤 내 삶은 우아해질 것인가. 이런 날씨에, 바이올린 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간 따뜻하게 위로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