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예술사

고전과 감동

지하련 2008. 7. 5. 11:36


사용자 삽입 이미지
Leonardo da Vinci
Mona Lisa
1503 - 1505, Oil on cottonwood, 76.8 x 53 cm, Musee du Louvre

사용자 삽입 이미지
Leonardo da Vinci
Mona Lisa (Detail)

사용자 삽입 이미지
Edvard Munch
Puberty
1895; Oil on canvas, 150 x 110 cm (59 5/8 x 43 1/4 in); Nasjonalgalleriet (National Gallery), Oslo


사용자 삽입 이미지

Sanzio Raffaello
The School of Athens
1509, Fresco, width at the base 770 cm, Stanza della Segnatura, Palazzi Pontifici, Vatican


A.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나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리고 실제 작품을 보고 놀라워한다. 하지만 이런 가정을 해보자. 미술사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하는 어느 현대인이 난생 처음 <모나리자>나 <아테네학당>을 보았다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리고 이 두 작품과 함께 뭉크의 <사춘기>를 보여준다면. 한 번 이런 상황을 상상해보자.

1. ‘현대인’은 누구인가? 남편과 아이를 회사로, 학교로 보내고 아파트에 홀로 남은 중년의 여성. 또는 밀린 일들을 처리하다가 상사의 눈치를 피해 잠시 건물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는 회사원. 혹은 매번 입사원서에서 떨어지는 20대. 우리에게 ‘현대인’이라는 어떤 모습인가? 우리에게 ‘현대’란 과연 어떤 시대인가? 그것은 좋은 시대인가, 나쁜 시대인가?

2. 현대인은 <모나리자>를 보고, <아테네학당>을 보면서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마찬가지의 이유로 <사춘기>를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리어 <사춘기>를 싫어할 지도.

3.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들이 있다.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이 있다. 대부분의 뛰어난 현(근)대 작품들은 보는 이를 부담스럽고 고통스럽게 한다. 하지만 위대한 고전 작품은 아니다. 그래서 고전 작품을 위대한 것이고 아프게 하는 현(근)대 작품은 그렇지 않은 것일까?

4. 그렇다면 어느 작품이 우리를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일까? 마음이 흔들리게 하고 가슴을 아프게 하는 감동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B.
‘고전Classic’이라는 단어는 로마 시민 5계급 중 가장 높은 계급을 의미하는 ‘Classis’에서 유래하였다. 이 단어의 형용사형인 ‘Classicus’는 높은 수준의 작가나 그의 작품을 뜻하였으며 이것이 굳혀져 ‘고전Classic’이 되었다. 그리고 13세기, 14세기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들이 잃어버렸던, 잊고 지냈던 그리스, 로마 문명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기 시작한다.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단어가 뜻하는 ‘재탄생’은 바로 그리스, 로마의 재탄생을 의미했다. ‘고전’이라는 단어가 요즘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때였다. 그래서 그리스적이거나 로마적인 양식을 그 당시의 이탈리아 사람들은 ‘고전적’이라고 표현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예술의 역사에서 ‘고전주의’라고 하였을 때, 그리스 고전 시대, 기원전 4세기 - 5세기의 작품들은 포함되나, 그리스, 로마의 다른 시대의 작품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였을 때의 ‘고전’이라는 단어가 미술사에서는 그 쓰임을 다르다. 높은 작품성을 가지고 있는 오래된 과거의 작품들을 모두 ‘고전’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예술사에서 ‘고전주의’는 구성이나 색채 측면에서의 양식이면서 동시에 정신적 양식(태도)를 의미한다. 그래서 ‘르네상스 고전주의’나 ‘신고전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며, 일부 모더니즘 양식의 작품을 두고 ‘고전적 현대’라고 하는 것이다.

고전주의의 양식적 특징은 낭만주의와의 대비 속에서 선명하게 이해될 수 있다.

C.
모든 고전 작품들은 감동적인가? <모나리자>나 <아테네학당>이 보는 이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가? 예술에 대한 지식을 쌓기 전에 예술 작품을 보고 감동받을 수 있는 태도를 먼저 가져야 한다. 가장 좋은 태도는 <모나리자>를 보고 손을 떨면서 감동 받았을 그 당시의 이탈리아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이탈리아 사람이 되지 않는 이상, 이 작품들이 현대인에게 현대의 다른 작품들이 주는 바의 그런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전혀 다른 시대의, 전혀 다른 영혼이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고전 작품에 대한 지식, 모나리자 부인이 누구이며, 아테네 학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안다고 해서 이 두 작품이 숨기고 있는 르네상스 고전주의의 정신적 태도를 알지 못할 것이며, 왜 이 두 작품이 위대한 고전 작품으로 남아있는지를 알지 못할 것이다. 도리어 뭉크의 <사춘기>를 보면서 마음 아파하고 왜, 어떻게 뭉크의 작품이 다 빈치나 라파엘로의 작품과 다른가를 알고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예술 작품에 있어서 ‘변하지 않는 교과서’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그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떤 작품이나 법칙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우리들의 마음이 될 것이다.

예술의 역사를 공부하기 전에 먼저 익혀야 할 것은 현대의 무수한 작품들을 보고 흔들거리는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하우저의 말대로 ‘감동을 주는 한, 그것이 바로 현대 작품’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