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새벽 3시 40분

지하련 2008. 9. 16. 04:20

'까닭없이 공포가 밀려드는 시간이다'라고 적고 싶었다. 하지만 까닭없진 않다. 아직 절망으로 내 영혼이 물들진 않았지만, 아슬아슬한 두려움과의 싸움은 승패를 오가며 계속되고 있다.

새벽까지 책을 읽었고 로마 예술에 대한 강의 노트를 워드로 옮겨놓았다. 옮겨놓으면서 쓸데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집트 조각의 무뚝뚝한 표정이 로마 조각에서 다시 나타나고 약 천 년 후쯤 중세 조각에서, 다시 이 표정이 20세기 초중반, 소련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등장했다는 점에서, 이집트보다도 로마에서 우리는 정치적 예술이 가지는 특징을 확실하게 간파할 수 있다. 하지만 로마 미술은 그 현대적 의의에 비해 대부분의 미술책에서는 너무 간략하게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로마 초기의 가부장적 체계가 로마 후기에서 어떻게 해체되는가의 과정 속에서 가족 시스템의 변화와 경제적 시스템의 변화와의 연관 관계를 흥미롭게 추론해 볼 수 있으며, 이러한 과정 속에서 예술은 어떻게 이를 반영하고 있는가를 분석해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현대 사회와 후기 로마의 유사점들을 나열해보는 것도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어쩌면 후기 로마 회화의 환영주의와 현대의 장르 영화를 비교해보는 것도 무척 재미있을텐데.

하지만 각자의 역할과 몫이 있다.

새벽에 독일에서 메일이 왔다. 10월 10일로 예정되었던 ㅈ선생님의 슈트트가르트에서의 전시가 일방적으로 내년 2월로 연기되었다고 한다. 매우 상심해 하실텐데,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 지 모르겠다.

창원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제롬 카르코피노의 '고대 로마의 일상생활'을 조금 읽었다. 정말 흥미롭고 유익한 책이었다.

새벽에 아래 층에서 소란이 있었다. 잠시 고민했고 잠시 긴장했다. 30년 전이라면 동네 사람들이 나올 만한 일인데, 30년 전 사람들이 30년 후를 예상이나 했을까. 이와 똑같이 현재의 우리는 30년 후를 예상할 수 있을까. 세상이 이렇게 변한다면, 나는 '몰락'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뿐이다.

10월 중순에는 파리에 갔다가, 파리에서 며칠 머무른 후에 터키 이스탄불로 갔다가 서울로 돌아오기로 되어 있다. 하긴 그 때 가봐야 알겠지만.

블로그에 사적인 글을 올리는 일이 드물어졌다.

현재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이 잘 처리되기를 신에게 기원해야겠다. 신을 믿지만, 교회나 절을 믿지는 않는다. 진정한 경건함은 자기로 시작되는 것이지, 종교에 기반은 둔 물적 시스템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런가.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하지만 버틸 수 없는 공포 앞에서는 우리는 신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그것이 우리 인류 문명의 최대 행복이자, 불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