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근황

지하련 2003. 12. 13. 10:51



요즘은 주로 클래식 음악만 듣는다. 베르디의 오페라는 너무 좋다. 요즘은
보라매 공원에 있는, 낡은 건물의 도서관에 간다. 요즘은 저금통에서 동전들을 잔뜩 꺼내어 소비한다. 도서관 출입비 삼백원. 자판기 커피값 이백오십원. 동전으로 인생을 가리고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씩 면도를 한다. 면도할 때마다 인생 모양으로 턱 수염이 난 것에 경악한다. 요즘은 책만 읽는다. 허먼 멀빌의 모비딕을 읽고 뽈 발레리의 산문을 읽는다. 요즘은 그림책을 많이 본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영어로 된 글을 읽는다. 요즘은 핸드폰을 잘 받지 않을 뿐더러 아예 꺼놓기까지 한다. 요즘은 하늘 볼 일도 땅 볼 일도 없이 뿌옇게 변해가는 거리만 본다. 거리 속에서 추악한 모습들을 한 영혼들을 피해다닌다. 요즘은 가슴이 텅 비었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은 텅 빈 가슴에 대한 비유를 자주 한다.

그건 속이 텅 빈 나무.
계절 따라 색을 바꾸지만 언제나 두드리면 '터엉''터엉' 슬픈 소리만 들리지.

그건 햇빛 뚫지 못하는 투명한 유리창.
그래서 누군가 찬란한 빛으로 된 창으로 뚫어주길 기다리는 것.
그건 들리지 않는 소리.
유쾌한 리듬으로 울리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 소리. 그래서 외로운 소리.
그건... ...

요즘은 주로 말줄임표로 산다. 그건 말을 잃어버린 탓.
요즘은 너무 많은 생각은 한다. 그건 무언가 잊기 위한 몸짓.
요즘은 어제 생각을 한다. 그건 내일이 두려운 탓.
요즘은 내 몸을 자주 어루만진다. 그건 너무 외로운 탓.

요즘은 ...
요즘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