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일요일 오후

지하련 2006. 2. 26. 17:43


겨울과 봄 사이의 어느 오후香이 서울 변두리 빌라 옥상에 조금, 서른 중반의 사내가 사는 4층 베란다에 조금, 흐릿한 대기들 위의 구름 위에 조금, 그 외, 이 곳, 저 곳, 띄엄띄엄  산개해 있었다. 사이먼 래틀과 빈 필이 연주한 베토벤 5번 교향곡을 듣고 난 다음 정경화가 협연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었다. 별로다. 집에 있는 다른 앨범. 레너드 번스타인과 베를린 필이 연주한 베토벤 5번이 훨씬 좋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나쁘지 않았으나, 정경화의 진짜 연주를 듣기에 곡 선정이 좋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이 썩 신통치 못한 듯 하다. 그리고 그 다음. 아르보 페르트의 ‘PASSIO.’ 기독교적 파토스(Pathos). 하지만 불교적 파토스나 이슬람교적 파토스는 왠지 어색하다. 유비쿼터스 사회를 향해가는 20세기, 21세기에 미사곡을 작곡하고 있는 아르보 페르트. 아르보 페르트의 음악은 언제나 날 휩쓸고 지나간다. 아르보 페르트 다음은 페르골레지의 ‘Marian Vespers’다. 역시 기독교적 테마는 극적이고 비장하다. 다른 종교의 양식은 그 힘이 떨어진다.(이것도 편견인가?)

얼마 전 포르투갈로 나가는 이의 환송회를 하면서 와인 몇 병을 사서 마셨다. 그리고 그 와인들의 맛은 너무 형편없었다. 역시 까페 같은 곳에서 마실 때는 무조건 십 만 원 이상 줘야 하는 것인가. 차라리 집에서 벗들과 함께 마시는 편이 나을 듯싶다. 어제 이마트에 가서 와인 두 병을 사 왔다. 주로 프랑스 메독산 와인을 마시는데, 오랜만에 다른 지역의 와인 한 병을 샀다. 다른 한 병은 독일 와인인데, 포도는 프랑스에서 재배하여 독일에서 만드는 와인이다. Blue Nun. 2004. cabernet sauvignon. 상쾌한 와인이다. 그냥 먹기에는 깊은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식사와 함께 하면 무척 좋을 듯싶다. 특히 집에서 삼겹살 먹으면서 이 와인 마시면 정말 좋을 듯싶다. 까페에서 와인 사먹지 말고 대형할인매장이나 와인전문매장에서 2-3만 원대 와인을 사서 먹는 것이 좋다. 여러 번 까페에서 와인을 마셨지만, 그 때마다 엉망이었다. 그리고 까페에서 맛있는 와인 먹으려면 출혈을 각오해야 한다.

오랜만에 시집을 샀다. 장석남의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별로다. 오늘 오후 송재학의 ‘푸른 빛과 싸우다’를 읽어야겠다. 오후의 햇살이 부서진다. 부서지는 햇살들 사이의 내 몸이 떠오른다. 차갑게 식어있는 내 몸 위의 드리워지는 뜨거운 시선. 하지만 그 시선마저 차갑게 식어갈 것임을 나는 안다.

슬픔이라든가 외로움이라든가 고독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단단한 껍질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것만으로도 존립이 가능한 상태로 오래 지속되었으면 한다. 포도주를 마시고 나니, 술 기운이 확 달아오른다. 일요일 오후. 혼자 포도주 반 병 이상을 마시고 취해 있는 모습이 꽤나 재미있다. 어느 새 아르보 페르트는 끝나고 페르골레지로 옮겨와 있다. 바로크적 비장함은 언제나 날 매혹시킨다.





그냥 주말 가족 식사 때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와인이다. 
(* 이마트에서 9,900원으로 구입할 수 있음)


홍대 까페에서 먹은 와인. 카르멘 리저브. 맛, 꽝이다.


몬테스 알파. 맛? 꽝이다. 


원두커피. 늦겨울 일요일 오후를 지탱하는 힘의 원천.
(* 프랑스에서 가지고 온 원두커피. 가격 모름)


어제 이마트에서 산 에스프레소 커피 메이커. 대단한 파워를 자랑한다. ; )
(* 이마트에서 만사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