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예술가

리네케 딕스트라 Rineke Dijkstra

지하련 2008. 11. 26. 21:55


리네케 딕스트라.
1959년 네덜란드 Sittard에서 출생한 사진 작가.

Evgenya, Induction-Centre Tel Hashomer, Israel, March 6, 2002
Evgenya, North Court Base Pikud Tzafon, Israel, December 9, 2002


삶은 늘 변화하고 우리도 변한다. 성격이 변하기도 하고 외모도 변하고 사는 것도 바뀌고 심지어는 과거와의 단절을 시도하는 이들마저 있다. 성형 수술을 하여 얼굴 뜯어 고치고 이민을 가, 모든 과거를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이들마저.  ... ... 하지만 변하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모더니티의 특징 중의 하나는 '변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존재(Being)의 세계에서 떨어져 나와 생성(Becoming)의 세계로 진입을 시도한다(*해리스의 '현대미술: 그 철학적 의미'의 처음도 이런 맥락에서 시작된다. ). 그리고 현대의 베르그송 이후의 많은 철학자들이, 모네, 세잔 이후의 많은 예술가들이 이 변하는 세계를 해석하려고 정의내리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것이 실패로 돌아간 것일까. 20세기 후반의 예술은 너무 혼란스럽고 방황의 연속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정처없는 것이고, 가련한 것인가. 마음의 문을 닫는다고 해서 외부세계가 우리에게 주는 상처와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그렇다고 그것을 이겨낼 그 어떤 수단도 가지지 못했음을 진지하고 사려깊은 현대 예술가들은 알고 있다.

일견 모더니즘적 전통 속에 있는 듯한 리네케 딕스트라의 작품은 우리 자신이 얼마나 혼란스러운 땅 위에 있는가를 여실 드러내 보여준다. 그리고 실제의 삶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무력한가를 증명한다. 그녀는 이를 정체성과 통일성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이를 시각화해낸다.

 "I am interested in the paradox between identity and uniformity, in the power and vulnerability of each individual and each group. It is this paradox that I try to visualise by concentrating on poses, attitudes, gestures and gazes."

삶의 굴절이란 우리가 의도한 바대로 움직이는 경우란 드물다. 그 굴절 속에서 한 개인의 정체성도 변한다. 그러니 아예 한 개인의 정체성이란 불변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변하는 어떤 것이라고 해야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Olivier Silva, June 2, 2002

Olivier, Les Guersea, France, November 1, 2000

Olivier, Quartier Vienot, Marseille, July 21, 2000

군복을 입으면 사람이 달라 보인다. 예비군 훈련장에만 가봐도 알 수 있다. 그 전날까지만 해도 말쑥한 정장 차림, 또는 캐주얼 차림으로 있었을 어떤 이들이 연병장에 퍼지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아무렇게나 버리는 모습을 보면, '옷은 날개다'라는 표현이 아니라, '옷은 개인의 일상을 규정하는 어떤 정체성의 표면'같은 느낌을 받는다. 

일견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보이는 딕스트라의 최근 작업들은 군복을 통해 개인의 정체성, 정체성 혼란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
(딕스트라는 분열된 현대인의 자화상, 그리고 평화 상태의 젊은이와 전쟁 수행 중인 군인 사이의 먼 거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만큼 정체성이 중요한 것일까. 리네케 딕스트라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나도 혼란스럽다. 변하는 나를 긍정하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그리고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 우리에겐 그 실패를 견딜 그 어떤 방패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깨닫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종종, 때때로, 나는 우리의 정체성은 고정되어 있고 우리의 삶은 변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변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어떤 이들의 시대착오가 부러울 때가 있다. 


* 오래 전에 노트했던 글인데, 조금 수정해서 올립니다.
* 사진들의 출처가 어디인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사진들의 저작권은 리네케 딕스트라에게 있으며, 문제가 될 경우 삭제토록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