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예술가

마크 퀸 Marc Quinn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지하련 2008. 11. 28. 14:52



캠브리지 로빈슨 칼리지에서 역사와 미술사를 공부한 마크 퀸Marc Quinn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각가이나, 그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한, 대단한 작품성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지는 않다(도리어 현대 예술이 어쩌다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그의 질문 제기를 한 번 귀담아 들어보는 것도 현대 미술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마크 퀸의 'Self'라는 작품이다.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색깔을 보고 무언가를 상상했다면, 그 상상했던 그 무엇이 맞다. 4.5 리터의, 약 5달 동안 모은 자신의 피를 얼려 만들었다(첫 작품 제작 기간임). 먼저 자신의 얼굴을 석고로 뜬 다음(casting), 자신의 피를 넣어 얼려서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크기는 어느 정도 될까?


Marc Quinn, Self
82" by 25" by 25"
blood/stainless steel, Perspex, refrigeration equipment, 1991
이미지 출처: http://www.maryboonegallery.com/artist_info/pages/quinn/detail1.html 


82인치에 25인치라, 대략 계산해보면 높이만 무려 2미터다. 더 놀라운 것은 세계적인 콜렉터이자, 현대 영국 미술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드는데 일조한 찰스 사치는 이 작품을 1991년도 만삼천 파운드에 구입했다는 것이다.
(요즘 수준으로 따지면 얼마 정도나 할까? 뭐, 별로 궁금하지도 않지만. 아참, 아라리오 김창일 회장도 한 점 가지고 있다고 한다. 현재까지 총 4점이 제작된 상태다. 얼마 전 한국에 방문했던 마크 퀸은 약 6주에 한 번씩 헌혈을 해 약 5년 정도를 모아야, 한 점 정도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도대체 이런 작품을 만드는 이유는 뭘까?

Marc Quinn, Kate Moss(Endless Column)
178x54x51cm, Painted bronze
2007

얼마 전 평창동 가나아트에서 전시된 케이트 모스(Kate Moss) 시리즈들 중 하나다(국내에서 처음 있었던 마크 퀸의 전시였는데, 조용히 지나갔다).  저 이상야릇한 포즈는 요가(Yoga) 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케이트 모스와 요가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요가의 본래적 의미, 명상이나 영적 단련을 떠올리기 보다는 (내가 이상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성적인 자극만 주는 작품이다.

마크 퀸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떠올렸고 그래서 이 작품들을 하게 되었다고 했지만, 이상적인 아름다움(ideal beauty)라고 하기에는 다소 ... ㅡ_ㅡ;;
(실제 마크 퀸은 케이트 모스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으며 그녀를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미지출처: http://theworldsbestever.com/2008/01/24/kate-moss-thursday-2 

Alison Lapper Pregnant
이미지 출처: http://mocoloco.com/art/archives/001480.php 

위 작품 '임신한 앨리슨 래퍼'는 마크 퀸의 대표작이며,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정상과 비정상, 아름다움과 추함, 그 어느 사이 쯤 위치해 있는 듯한 이 작품은 우리에게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과 정의에 대해 묻고 임신한 앨리슨 래퍼, 즉 엄마, 생명잉태에 대한 경외감까지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즉 육체란 무엇인가라고 묻으며, 인간 존재에 대해 탐구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Marc Quinn, Innoscience
10" by 27" by 13"
medical milk formula/synthetic, polymer wax
2004

실은 생명에 대한 경외감보다는, 생명의 신비보다는, 반대로 '이따위 생명으로 왜 살아가는 걸까', '혹은 살아가야만 할까'를 떠올리게 되는, 내 삐딱한 시선 때문일까? 이미 죽어 박제가 된 듯한 저 어린 아이의 모습에서 살아가면서도 이미 죽은 상태, 어쩌지 못하는 삶의 노예가 된 현대인의 자화상을 떠올리는 건 왜일까?


Meditation on Illusion, 81.5x43.5x64.5cm, Painted bronze, 2007
이미지출처: http://www.ganaart.com/exhibitions/2008-07-11_marc-quinn/#


위에서 볼 수 있었던 마크 퀸의 작품들은 실은 '삶과 죽음에 대한 알레고리'를 담고 있다. (이는 데미안 허스트도 마찬가지다.) 해골은 서양미술사에서 '바니타스vanitas'를 상징하는 소재로 널리 사용되었다. 인생의 허무함을 넘어서기 위해 제목은 '명상'? 그런데 '환각 속의 명상'?

Golden Meditation, Bronze, 2008 
(* 파리 Fiac 2008에서 찍은 사진임) 

이번엔 '황금빛 명상'? 자, 그렇다고 케이트 모스가 빠질 수야 없지.

이미지 출처: http://www.canadianart.ca/art/books/index1.html


피악에서 마크 퀸의 '황금빛 명상'을 보았을 때, 무척 흥미로웠다. 설마 'Self'의 그 마크 퀸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YBAs의 예술가들 대부분이 현대적인 관점에서 우리가 벗어날 수 있는 추상적이고 의미있는 질문을 매우 잘 던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냥 지나가는 말로, '우리 왜 사는 걸까?', 혹은 '왜 살고 왜 죽는거지?'라고 했을 때,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YBAs의 예술가들은, 인류의 문명이 시작할 때부터 던져온 어떤 질문,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그 누구도 속 시원히 답하지 못한, 오직 창조주 신만이 아는  질문을,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던진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크 퀸이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을 환기시킬 뿐이다. 자극적인 것들만 찾아해매는 전 세계의 기자들과 천박한 호기심으로 무장한 세속 사람들에게 '우리에게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 던지기를 하는 셈이다. 내가 보기엔 전혀 먹히지도 않는 질문 제기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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