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리뷰

제프 쿤스와 베르사이유

지하련 2008. 12. 24. 05:57


나에게 엄청난 돈이 있어(세계 탑 100위 정도의 갑부 수준으로) 미술 작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제프 쿤스의 작품을 살 생각은 없다. 하지만 다른 측면으로 접근한다면 구입할 의향도 있다. 미술에 대해서 조금 떠벌려야 하는 비즈니스가 있다면, 대단한 사람들을 초대해 뭔가 과시해야될 필요가 있다면, 한 점 정도는 구입해볼 생각을 가질 지도 모르겠다(그리고 결국 알만한 다른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겠지만). 


나는 제프 쿤스가 현대미술이 요구하는 바의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정반대다. 그는 주체하지 못하는 재능으로 현대미술을 망쳐놓고 있는 몇 되지 않는 예술가라고 표현하는 편이 더 타당할 지도 모른다. '움직이는 약국' 데미안 허스트가 '삶과 죽음'이라는 일관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제프 쿤스는 매우 표피적이고 말초적이며 현대적 가벼움이란 어떤 것인지 극명하게 드러낸다(데미안 허스트도 다른 의미에서 현대미술을 망쳐놓고 있는 예술가들 중의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지만). 

 
표피적이고 말초적이며 현대적 가벼움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현대 자본주의가 현대 문화나 예술에 대해서 요구하는 바도 동일하다. 현대 자본주의가 미국에서 고도화되었듯이, 현대적 의미의 스타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스타 예술가도 미국이 고향이다. 그러니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대로 살아가려면, 심각한 주제 의식 따위는 집어던지자. 어떻게 하면 현재, 지금은 좀 유쾌하고 즐겁게 보낼 것인가에만 집중하자. 한없이 가벼워지고 표피적이 되며 말초적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아주 짧게만 고민하자. 그리고 즐기자.
(위의 강아지, 꽤 관능적이지 않은가!) 


제프 쿤스는 즐기는 법을 알고 있는 듯 보인다. 그는 극단적으로 표면을 강조함으로써 시각적 즐거움과 동시에 유쾌하고 자극적인 관능성까지 포착해낸다.  심지어 저 블룬 강아지의 터질 듯한 볼륨감은 에로틱하다. 꼭 여인의 가슴처럼 만지고 싶지 않은가! 그리고 더구나 살아있는 미국 예술가 중에서 최고의 스타로 각광받고 있는 제프 쿤스의 작품이  아닌가.

이런 작품이 집 거실에 하나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제프 쿤스라는 것을 안다. 제프 쿤스, 그는 누구인가. 심심치 않게 대중 매체에 등장하며, 미국의 생존 작가들 중에서 가장 작품 가격이 비싼 이들 중의 한 명이며, 미국 현대 미술 최고의 스타 예술가이지 않은가. 상황이 이 정도 되면, 집에 방문한 사람들은 한 마디씩 꼭 한다. '이야, 제프 쿤스도 소장하고 있군요. 정말 너무 좋네요'

(실은 이런 상황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작가의 작품을 집 거실 벽에다 걸어두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솔직히 제프 쿤스의 작품이 나를 감동시키지는 않는다. 도리어 정반대다. 제프 쿤스는 끊임없이 '(미술이 주는) 감동이란 게 도대체 뭐야?'라고 묻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제프 쿤스 나름대로 현대 미술이 대중에게 줄 수 있는 그 무엇을 만들고 있다. 즉 현대 미술의 의미를 다시 묻고, 미술이 주는 감동이라는 것이 성적인 자극이나 관능성과 어떻게 다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비평적인 관점에서) 제프 쿤스가 제시하는 질문은 늘 흥미진진하며, 유쾌하고, 심지어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도대체 이런 작품을 미술 작품이라고 말한다면, 누가 믿을까? 그것도 수십억, 수백억 한다면.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일반 대중들은 몇 십만원 정도 하는 판화 작품이나 몇 백만원 하는 소박한 유화 작품이 주는 진지하고 사려깊은 감동에 대해선 별로 관심없다는 것이다. 도리어 제프 쿤스같은 이가 절대적 관심의 대상이다.  절대로 구입하지도 못할 작품, 도대체 이게 미술 작품이야 하는 의문을 들게 만드는 작품, '나도 하겠다'라고 말하게 만드는 작품, 그래서 절대로 작품이 제기하는 바의 현대적인 질문들을 이해하지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작품들에 대해서만 관심을 기울인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상황을 빨리 깨달은 몇몇의 예술가들은 이 상황을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끈다.

확실히 비즈니스 감각이 있는 예술가들이 있다. 제프 쿤스는 예술가이지만, 동시에 능수능란한 비즈니스맨이기도 한 셈이다.


하지만 난생 처음 간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제프 쿤스의 작품은 좀 당혹스러웠다. 솔직히 내가 프랑스에서 나고 자랐다면, 제프 쿤스의 작품을 베르사이유에 전시하는 것을 반대했을 것이다. 외국인인 내가 보기에도, 이건 좀 아닌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이런 식으로 베르사이유 궁전 방마다 작품 한 점씩 전시되고 있었다.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전시 컨셉이라니.


제프 쿤스의 작품을 두고 심각한 이야기를 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그의 작품에 대한 비평적 지지가 대단하고 그만큼 그의 작품은 흥미진진한 면을 가지고 있지만, 베르사이유 궁 밖의 푸른 하늘 만큼 감동적이진 않다.

실은 제프 쿤스의 작품을 두고 뭔가 근사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런 식으로 쌓아두고 있는 작품 사진들이 산더미같고 밀린 전시 리뷰도 엄청 많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결국 이런 식으로, 아무렇게 적고 말았지만.



지난 10월의 어느 일요일에 베르사이유를 갔는데, 파리 사람들도 근처에 갈만한 곳이 없어서 주말이면 베르사이유로 가는 모양이었다. 가는 길도 막히고 파리로 들어오는 길도 막혔다. 이런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올해의 거의 마지막 일요일일 지도 모르니까.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것이지만, 유럽의 겨울은 최악이다. 우울증에 걸릴 수 밖에 없는 날씨가 거의 다섯 달 동안 계속된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베르사이유에서 제프 쿤스를 만났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제프 쿤스의 작품을 보았다. 어둡고 낡은 가구들과 복제화들로 가득한  베르사이유 궁전 안의 방들보다 제프 쿤스가 더 재미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베르사이유 정원을 보면서 달라졌다. 제프 쿤스의 작품 이상의 흥미로움을 가진 정원이라고 할까. 그리고 베르사이유의 정원을 보면서, '역시 데카르트의 나라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똑같이 바로크 철학이고 바로크식 정원이기도 했다). 반듯반듯한 정원은 데카르트의 철학 세계를 보는 듯 했다. 확실히 합리론의 철학을 대변하는 정원이 프랑스식 정원이라면, 경험론의 철학을 대변하는 것이 영국식 정원이라고 해야 할 수 있다. '픽쳐레스트picturesque'라는 단어도 지극히 영국적인 단어다. 프랑스식 정원은 어딘가 기계(론)적인 모습을 지울 수 없다.
(여기에 대해서는 바로크 예술 http://intempus.tistory.com/186 을 참조하면 좋겠다. 이 글을 쓴 지도 벌써 4-5년이 된 것같지만. 근대 기계론에 대해서는 이 리뷰 http://intempus.tistory.com/5 가 약간의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글은 더 오래되었구만.)

로로코 양식의 베르사이유 궁전 안, 바로크 양식의 베르사이유 정원과 건물,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제프 쿤스. 로로코와 바로크는 종종 동일한 양식의 다른 측면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제프 쿤스는 약간 뜬금없다. 루이 왕가가 미국의 독립을 지지했다고 하고, 사르코지가 프랑스 대통령이 된 이후 프랑스와 미국 간의 관계 개선도 도모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제프 쿤스의 전시가 추진된 것일까?


종종 프랑스 사람들은 루이 왕가가 사라진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 한다. 프랑스 대혁명의 전통이 새로운 프랑스를 만들었으나, 찬란했던 태양왕의 시대에 대한 그리움도 동시에 있다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궁전에, 얼마 되지도 않는 역사의 나라에서, 작품가격으로 따지자면 최고라는, 하지만
보수적이고 고전적인 사람들의 눈에는 종종 작품의 수준이 의심스럽고  엄격한 도덕주의자의 눈에는 자극적이고 심지어 손가락질 당하기까지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다는 점에서 프랑스 사회 내에서도 논란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전시였다.

이건 과거와 현대의 만남도 아니고 프랑스와 미국의 만남도 아니었다. 좀 기형적이라는 측면에서 재미있긴 했지만, 관람객의 입장에서 베르사이유를 제대로 본 것도, 제프 쿤스를 제대로 본 것도 아닌 셈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뭔가 다른 사연이 있는 듯 보이는 전시였다. 말 많은 전시를 보았다는 점에서는 최고의 선택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 싶다.



* 제프 쿤스 전시에 대한 한글 기사로는 http://blog.naver.com/sanstitre/20057198839 가 적당합니다.
* 제프 쿤스의 홈페이지는 http://www.jeffkoons.com/ 입니다.
* 위 사진들은 직접 베르사이유에서 찍은 사진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