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자유롭지 못한 영혼을 위해

지하련 1998. 4. 7. 21:08

자유롭지 못한 영혼 하나
또 이렇게 <자유로운 영혼>으로
날아와 보잘 것 없는
절망의 흔적을 남긴다

"누가 우리를 위해 증언해 줄 것인가? 우리의 작품인가, 아니면 대체 무엇인가, 단지 ......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 그러나 사랑은 침묵이다. 우리는 모두 남모르게 죽어간다."
- 알베르 까뮈

몇 달만에 벗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모델이다. 그는 티브이에 나오기도 했으며, 곧잘 패션쇼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꿈은 자유였다. 그는 그 자유를 위해 자신의 젊음을 망가뜨리기로 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아래에서 망가짐이란, '자본으로 온 몸에 떡칠하기'다. 일 년 전쯤, 그와 함께 강남의 술집과 호텔 나이트를 전전했으며, 새벽이면 이태원으로 나갔다. 지금 그는 술과 여자로 젊음을 탕진하고 있다. 오늘 전화기 속에서 그는 대뜸 나에게 "술 사라!"고 말했다. 그러나, 밤 10시가 지난 상태라 은행 현금인출기가 되지 않는 까닭으로 해서 그의 작은 희망을 들어주지 못하고 말았다. 아마 그가 자유를 꿈꾸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쯤 망가지지 않고, 잘 나가는 "스타"가 되어있었을 것이다.

해마다 가을이 오면, 몇 명의 여자가 사랑에 빠진 눈빛으로 미소를 지으며 내 앞을 지나갔고, 몇 명의 남자는 베낭을 메고 인도로 떠났다. 가끔 자신의 광기를 주체하지 못한 채 무너지는 젊음과 만나기도 하고, 가끔 자신이 누구인가에 집착한 나머지 모든 것을 버리는 젊음과 만나기도 한다. 술에 취해 아스팔트 위를 기어갔던 적이 있었다. 그 순간 허공을 비추는 별빛이 얼마나 아름다웠던가를 난 기억하지 못한다. 술은 하늘의 별빛보다 더 위대한 것이다. 모든 기억, 모든 아픔들은 술 속에서 묽어지고, 술과 더불어 우리들에게서 멀어진다.

오늘 누군가 아이디 해지 신청을 했고, 오늘 누군가 우리집에 전화를 걸어 아직까지 딸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몇 년 만에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꺼내보았다. 책의 첫 여백에 적힌 글자들....

"내 사춘기 때 유일한 꿈은 사랑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난 아직까지 사랑을 하지 못했다. 거짓으로 세상을 살아서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일까. 활자의 틈 속에서 죽고 싶다. 영원히."
- 96.4.4. 涉.

혹시 꿈 속에서 꿈 속 허공을 나는 '검은새'를 만난 적이 있는가. 그 검은 새. 그는 우리들이다. 정처없이 아스팔트 위를 떠도는 90년대의 우리들. 그 위에서 상처 입어도 우리는 우리의 상처를 치료할 수 없다. 단지 그 상처가 곪아가는 과정을 두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며 생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밖에 없다.

어제 집을 나간 그녀와 오늘 해지 신청을 한 그녀에게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라는 소설책 첫머리에 놓인 詩人 안재찬의 산문을 들려주고 싶다. 턴테이블에 존 레논의 'LOVE'를 올려 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