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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면 발작증.
          My Own Private Idaho 첫 몇 쇼트에 나오는 단어.
          그리고 시인 박서원이 앓고 있는 병.
         
          영화를 보고 난 다음 꽤나 멋있게 보였던 병(* 수전 손탁이
       말한 병의 은유?). 하버드 대학 법대에 다니는  애인과 헤어지
       고, 119 구급 대원과 결혼한 여자. 그리고 그 결혼의 실패.
         
          문학 잡지에 실린 그녀의 시를 읽고, 손톱 만한  그녀의 사
       진을 보고 난 다음 풍부한 언어를 구사할 줄  안다라는 감상과
       함께 실제로 만나면 꽤나 매력적이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
       나, 열음사에서 나온 그녀의 첫번째 시집은 그다지  좋지 못했
       고, 그것이 끝이었다. 가끔 잡지에서 그녀의 시를  읽었고, 최
       근에 나온, 문학평론가들에 의해 주목받았던 시집들을 보긴 했
       지만 사서 읽진 않았다.
         
          오늘 신문 기사들 가운데 그녀의 기사가 실렸다. 어느 후배
       가 짙은 화장을 한 그녀가 자신의 시를 읽는 모습을 보고 반했
       다고 말하는 풍경을 떠올려 보며, 그녀의 실패한  사랑과 그녀
       의 육체와 그녀의 고통을 생각해 본다. 가을 오후 늘 주머니에
       약통 하나를 가지고 다니는 시인의 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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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
     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
     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
     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
     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
     는 참혹......,그러나 킥킥 당신
       
        - <혼자 가는 먼집>, 허수경.
       
       
       
       
        어젠 가을바람 속에 앉아 소주와 맥주를 번갈아마시며  술 한
     잔 마시고, 음악을 바꾸고, 시  한 편 소리 내어 읽고,  다시 술
     한 잔 마시고, 밖으로 나가 가을 오후의 대기와 바람과 구름, 저
     편 산꼭대기를 가슴에 안아보곤, 다시  음악을 바꾸고 시 한  편
     소리 내어 읽고, 다시 술 한 잔, 그렇게 저녁 8시쯤까지 마셨다.
       
        가끔 살아가다보면, 미친 짓도 필요한 법이다. 음표들이 일제
     히 내 몸을 뚫고 지나가는, 혹은 시어들이, 아니면 가을 바람이,
     그러면서 하루가 저물었다.
       
        혼자 술을 마신 이유는 오랫만에 맑은 가을날이 왔는데, 집에
     서 빈둥빈둥거리자니 꼭 손해보는 것같아서였다.
       
        오늘도 날씨가 예사롭지 않다. 젠장. 오늘도 미쳐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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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가 너무 좋아 집  안에서 빈둥거리기로 마음 먹었다.  몇
     달만에 Sidsel Endresen을 꺼내 듣는다.
       
        "So I write/about the world/and only rarely come close/to
     saying this/so we  can share  this/it's just black  marks/on
     white  paper/and  me/wanting   another blank   page/and  yet
     another/so I write/thinking I'm constructing a  bridge/but I
     get lost/on the  way across/and  I stumble/on  implications/
     associations/ synonyms/combinations/of the perfect  words/so
     I write/and I get lost/in black marks/on the white paper/and
     still/it is this/this......"
        (* So I Write라는 노래의 가사)
       
                         *                     *
       
        날씨가 너무 좋아 집에서  빈둥거리다니, 내 생에 이런  날이
     있으리라 누가 예상을 했겠는가! 이런 날에 아리따운  처자와 덕
     수궁 돌담길이나 걸어야 하거늘, 오늘 난 습기 먹은 음반들을 꺼
     내 조심스럽게 닦곤 음악을 듣고  있다니! 젠장, 왜 이리도  '사
     랑'을 노래한 음악은 많은 것인가!
       
                         *                    *
       
        용산 데이콤 앞에서 버스를 탄 허름하고 초췌한  차림의 중년
     사내는 버스가 한강대교 중간  지점까지 갈 때까지 동전을  찾지
     못하며 당황하고 있었다. 그 때 앞좌석에 앉아 있던,  정확히 말
     해 버스 운전석 바로 뒷 좌석, 그 중년의, 깔끔한 외출복에 연한
     화장을 한 여인이 핸드백에서  토권 하나를 꺼내 중년  사내에게
     건네준다. 그 때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사내는 그것을 받고
     황급히 시선을 거두곤 버스 뒤로 들어갔다. 버스는  한강대교 끄
     트머리에서 빨간 신호등에 걸렸고, 토권은 운전석 옆  네모난 공
     간 속으로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앞좌석에 앉은  그 중
     년의 여인은 연신 뒤를 쳐다보았고,  그 중년 사내는 그  시선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 정거장 가지 않곤  그
     사내는 무언가에 쫓기듯 버스에서 내렸다. 잠시 후  여인은 핸드
     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가끔 젊은 한때  맹렬하게 사랑했던 이를, 그러나  그 사랑을 
     이루지 못했던 이를 아주 우연스럽게 만나기도 한다. 비 오는 날
     이나 지금 같이 지내고 있는 이를 사랑하지 않음이 느끼는  순간
     마다 떠오르는 사람을 아주 우연히 스치기도 하는 법이다.
       
        이 세상엔 무수한 사랑들이 존재하며, 그것들에는  남자와 남
     자와의 사랑, 여자와 여자와의 사랑, 섹스로만 연결된  사랑, 고
     등학생과 중년 사내나, 중년의 여자 사이의 사랑도 있을 수 있으
     며, 한 사람은 때리고 한 사람은 맞으며, 그러면서  사랑을 확인
     하는 관계도 가능한 법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인지 사랑이 아닌지를 결론내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자신 밖에 없다. 그것을 사랑이 지나간 지 수십
     년이 지난 후에 깨닫게 되더라도.
       
                        *                      *
       
        난 '사랑'이라고 표현된 것들을 믿지 않는다. 왜냐면, '사랑'
     만큼 사람 뒷통수 잘 때리는 것도 드물기 때문에. 여하튼 오늘은
     너무 날씨가 좋다. 이런 날이 오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다. 앞으로  계속 빈둥거릴
     것같다. 오! 가엾은 내 젊은 날이여. 오! 투명한 초가을의 내 생
     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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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봄날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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