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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얼마 전에 곰브리치의 마지막 유작이 출판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책의 주제는 '원시주의'이다. 그러고 보면 백남준이 오래 전에 국내 전시 때, 21세기 미술은 원시주의라고 말했던 것도 곰브리치의 통찰에 힘입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금 있으면 번역되어 나올 꺼라는 생각에서 구입하지는 않았지만, 글쎄다, 원시주의라.

막상 사회생활을 하고 동물원의 일상과 사바나의 경쟁을 동시에 느끼고 있지만, 날 옥죄는 건 다름 아닌 '경제적 공포'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난 나에게 '글을 쓰는 것이 어떻겠냐' 따위의 말을 하는 사람들의 무책임함을 경멸한다. 그건 그저 동정심일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얼마 전에 반즈앤노블에 주문한 책이 날아오고 있는 중이다. 한 권은 예술사에 대한 책이고 한 권은 카르스턴 해리스의 새 책이다.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석사학위를 받을 지, 미술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을 지 고민 중이다. 철학을 하면 베르그송에 대한 논문을 쓸 생각이고 미술사학을 하면 로코코 미술에 대해서 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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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죽은 자들의 열망이 내 가슴을 훑어내리는 시간이다. 햇살은 곧지만, 바람 사이에서 굴절되고 삶은 열망들 사이를 해매다 상처입는다.

인생이 공포스러워지고 어느 컬트 무비의 주인공으로 나온 내 얼굴이 구름 사이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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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시커50-회화

롤프H.요한젠저 | 황현숙역 | 해냄 | 2002.03.11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롤프 H. 요한젠, <클라시커 50 회화>, 황현숙 옮김, 해냄



1.
서평이란 책을 평가하고 읽는 이, 또는 읽을 이를 위해 씌어진 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글 쓰는 이의 사정에 따라 그 글의 모양새가 달라지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책에 있다기 보다는 책의 외부에 있다. 즉 책을 온전하게 평가하기 못하고 책이 놓여있는 Context에 너무 얽매이게 되는 것이다. 이는 미술사(학)라는 한국에 아직 낯선 학문분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예술을 포함한) 전반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서평을 쓰는 이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요컨대 한국의 학문 연구 풍토가 어떠하며 대학 교육이 어떻고 독자의 수준이나 태도가 어떠하다는 말은 되도록 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이다. 원래 시대가 혼탁할수록 책에 대한 글에 정확한 시선과 정갈함이 요구되며 가치 있는 책들이 일반 독자에게 읽혀져야만 한다.

2.
미술 작품을 소개하거나 해설하는 책들은 예상 밖으로 많다. 하지만 그 책의 내용이나 질이 의심스러운 책들 또한 많다. 모든 책들이 정확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정적인 제목과 허술한 내용과 논증으로 독자를 기만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위험한 그림의 미술사'는 선정적인 제목의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독자의 주머니가 넉넉하다면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나 잰슨의 '서양미술사' 같은 책이 좋다. 혹자는 이러한 '미술의 역사'에 대한 책보다 개별 화가나 개별 작품들에 대한 책으로도 미술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체 미술사를 이해하고 있어야만 개별 미술 작품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가능하다.

한 예를 들어보자. 장 프랑수와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1857년)이라는 유명한 작품이 있다. 너무나도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고 곧잘 광고 소재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는 이는 몇 명쯤 있을까? 아마 고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이 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교수들 중에서도 많지 않을 듯 싶다. 그리고 감동 받지 않았으면서도 너무 유명한 작품이라 자세하게 설명하거나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가르친다면 자기 기만적인 행동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이와 가장 유사한 예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될 수 있겠다).

Millet, Jean-Francois,
Les Glaneuses, 1857


2002년을 살아가고 있는 나를 포함한 미술작품을 보는 모든 이들이 1857년에 완성된 이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서는 19세기 중반 유럽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19세기 중반의 사람에게 백남준이나 요제프 보이스의 작품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듯이 우리가 19세기 중반에 완성된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 19세기 중반의 사람이 되어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오래된 미술 작품을 보고 이해하고 감동 받기 어려운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이 가지는 의미 내지는 당시 미술계에 던진 충격은 이 작품이 완성되고 난 다음 6년 후의 작품인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터키 목욕탕'을 옆에 두고 보면 쉽게 알 수 있다(눈을 감고 한 화랑에 밀레의 작품과 앵그르의 작품이 나란히 걸려있다고 상상해보라). 자끄 루이 다비드의 제자인 앵그르는 그 당시 프랑스 미술계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고 그 당시 미술계에서는 앵그르류의 작품들을 최고로 평가하고 있었다. 이 때 공개된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은 한 마디로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롤프 H. 요한젠의 표현을 빌면, '그것은 얼굴에 주먹 한 방을 날리는 것 같은 충격을 주었음에 틀림 없다'.(p. 184)



Ingres, Jean-Auguste-Dominique,
The Turkish Bath, 1862
;Oil on canvas on wood, Diameter 108 cm (42 1/2"); Musee du Louvre, Paris


3.

한 예를 더 들어보자. 주위에 클림트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좋아하는데, 여기에 대해 무척 흥미로운 추측을 해보자. 나에게 클림트의 작품은 뛰어나거나 감동적이지 않은데, 그 이유는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욕심많은 한 화가의 집요함이 너무 눈에 거슬리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상실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여성을 비방하고 그녀에게 무한한 애로틱한 힘을 부여하여 그녀 앞에 다가온 남자를 살해하는 요부로 그린다'.(p.214) 이처럼 클림트는 여성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적어도 그의 작품들은 이러한 혐의를 벗기 어렵다. 그런데 이토록 여성을 비하하고 있는 그의 작품들이 도리어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은 여성들 스스로 이러한 요부를 선호하고 이러한 요부가 되길 꿈꾸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추측이기 때문에 자신이 클림트를 좋아한다고 해서 화를 내거나 흥분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러한 추측도 작품에 대한 미술사적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가령 '유디트 I'을 보면 유디트로 표현된 여성의 볼이 붉게 상기되어 있는데, 이는 여성을 성적 대상(또는 노리개)로 파악할 때의 여러 미술 작품들에게 주로 보여진다. 이러한 여성이 빼곡히 그려진 기하학적인 문양들 속에 갇혀있으니, … …


Klimt, Gustav
Judith I ,1901
; Oil on canvas 60 1/4 x 52 3/8 in. (153 x 133 cm) Osterreichische Galerie, Vienna



4.
그러나 이러한 흥미진진한 미술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은 드물다. 서점에 많은 책들이 나와있기는 하지만, 그 책들을 다 읽을 사람도 없겠거니와 다 좋은 책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내가 대학 일이학년 때 읽은 진중권의 '미학오딧세이'를 지금 읽어보면 무척 식상하고 재미없게 읽혀지지만, 그래도 일반 독자에게는 진중권의 그 책처럼 친절하게 하나하나씩 설명해주는 책들이 더욱 많이 필요하다(대학의 교양 교육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니). 하지만 국내 연구자에 의해 씌어진 우수한 책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나마 있는 책들은 번역서적들인데 대부분 전문연구서들 일색이다. 지금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일반독자를 위해 씌어진 책이라 할 수 있지만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전문서적 못지 않은 지식과 성찰을 보여주고 있어 일반 독자가 부담을 가지지 않고 읽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이 책 '클라시커 50 회화'는 해냄에서 나오는 시리즈물로서 원래 독일에서 출판된 시리즈이다. 여러 분야들에게 대한 책들이 나와있는데, 미술에 대해서 디자인에 대한 책이 한 권 더 있다. 책은 총 50개의 미술 작품(전적으로 회화에만 국한된)과 이에 대한 상세한 해설, 화가에 대한 간략한 요약으로 구성되어있다. 르네상스 초기, 흔히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시작이라고 평가되는 지오토의 '그리스도에 대한 애도'부터 시작해 앤디 워홀의 '마를린'까지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평가되는 웬만한 작품들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해볼 만한 하다. 또한 작품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그 화가의 다른 작품들이나 다른 화가의 작품들까지 곁들이고 있어 독자로 하여금 작품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와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의 일부분을 예로 들어 독자에게 이 책이 읽어볼 만한 책이면서도 만만치 않은 책임을 보여주기로 하자.


DURER, Albrecht
Selbstbildnis im Pelzrock (Self-Portrait in Furcoat, Self-Portrait at 28), 1500
Oil on panel, 67 x 49 cm Alte Pinakothek, Munich


작품의 창작을 수학적인 질서로 파악하고자 했던 뒤러는 휴머니즘(인본주의)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의 양식화된 자화상 속에서 인간은 기하학과 미(美)를 통해 그 가치가 상승된다. 그것은 인간과 신이 동일화된 근원을 갖기 때문이다.(p.49)

'자화상'은 뒤러와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의 새로운 자의식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자의식은 바로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화가는 신의 뒤를 잇는 제 2의 창조자이다.(p.53)


Millais, John
Ophelia 1851-52
Oil on canvas 76.2 x 111.8 cm (30 x 44 in) Tate Gallery, London


라파엘 전파의 기본 원칙은 자연에 대해 최대한 충실하자는 것이다. 그들은 이상화된 라파엘로의 방식을 거부했다. 초기 르네상스회화, 특히 보티첼리와 초기 르네상스 화가들에서 그들의 전형을 찾았다. 밀레이는 모든 식물과 꽃들을 식물학적 특성으로 파악했다. 그것은 파엘 전파가 추진했던 하나의 '세부적인 사실주의'였지, 결코 포괄적인 사실주의는 아니었다. 밀레나 쿠르베의 동시대적 사실주의와 그들은 전혀 공통점이 없었다. 라파엘 전파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는 하지만 그 사물과의 직접적인 논쟁을 피한다. 그들의 그림은 비현실적이며 풍경은 상상에서 비롯된다. 지속적으로 영향을 남긴 그들만의 특징이라면 젊은 신부나 죽은 애인으로 또는 남자의 자기 파괴적인 성적 호기심의 대상으로 - 성모이거나 '팜므 파탈'로 - 나뉘어지는 여성상의 분열이었다(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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