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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문화연구입문 - 10점
그래엄 터너 지음/한나래


         
문화 연구 입문

그래엄 터너 지음(김연종 옮김)   한나래
          


         
          이 책의 원제는 <<British Cultural Studies>>이다. 즉,  제목 그대
       로 영국의 문화 연구 전통에 대한 입문서이다. 그러나,  입문서라고 해
       서 그렇게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한 마디로 요약서이기 때문에, 꼼
       꼼히 읽을 필요가 있기도 하다.
        
          이 책의 구성은 제 1부  기본 원칙들-<제 1 장 문화  연구의 이념>,
       <제 2 장 영국의 전통:간략한 역사>. 제 2 부 중심 범주-<제 3 장 텍스
       트와 맥락>,<제 4 장 수용자>,<제 5 장 민속지학, 역사학, 그리고 사회
       학>,<제 6 장 이데올로기>. <결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요즘 문화연구(혹은 문화이론)에 대한 교양강좌가  각 대학교(원)나
       사설 교육 기관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그 곳에
       서 이루어지는 강의는 절대로 이 책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벗어난
       다면, 그건 강의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견해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동안 '문화연구(문화이론)'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적
       이 있었음으로해서 몇 권의 책과 여러 강의에도 가보았지만, 알  수 없
       는 묘한 반감같은 것이 있었다. 그 당시엔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없었지
       만, 최근에 들어 약간의 가닥을 잡았다. 이 가닥에 대해선 나중에 설명
       하기로 하고, 먼저 '문화이론의 세 가지 기본적인 특징'을 적어보겠다.
         
          1. 기호는 독자의 또 다른 세계/현실이다.
          2. 텍스트는 세상의 모든 것이다.
          3. 담론은 권력이다.
         
          어느 강의에서 적은 것으로 기억되는  이 세 가지 기본적인  특징은
       전적으로 구조주의적이며, 정치적이다. 첫  번째의 '기호는 독자의  또
       다른 세계/현실이다'라는 문장에서의 '기호'란  꼭 글자 뿐만  아니라,
       영상기호, 패션, 건물, 도시공간, 모든 기호학적인 논의가 가능한 것들
       을 의미한다. 즉, 문화이론의 대상은 우리가(* 독자) 살고  있는 지금/
       여기(* 시간적인, 공간적인)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연구  대상으로 한
       다. 두 번째의 '텍스트는 세상의 모든 것이다'라는 문장에서 우리는 구
       조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텍스트를 얼마만큼 분석해낼 수 있을까, 또한 과연 세상의 모든 것들을
       텍스트는 담고 있을까? 세 번째 '담론은 권력이다'라는 문장에서의 '담
       론'이라는 단어와 '권력'이라는 단어는 매우 의미심장한  말이다. 그렇
       다면, '담론discourse'이라는 단어의 뜻은 무엇인가?
         
          "담론들은 그것이 형성되는 제도와 사회적 실천의 종류에  의해, 그
       리고 말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말을 하는 상대의 위치(position)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담론의 영역은 동질적이지 않다. 담론은 사회적이다.
       어디서 어떤 상황인가에 따라 진술이 만들어지고 단어와 단어의 의미가
       사용된다. (... ...) 모든 제도(institution)에는 개인에게  배당된 담
       론이 있고, 담론의 위계질서(hierarchy)가 있다."
          - <<담론이란 무엇인가>> 다이안 맥도넬(임상훈 역. 한울) 11쪽에서
       12쪽.
         
          간략하게 인용하였지만, 인용된 부분을 통해서  보자면, '담론'이라
       는 단어가 지극히 정치적으로 이해됨을 알 수 있다(*  '권력'이라는 단
       어에 대해선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즉,세 번째  문장인 '담론
       은 권력이다'라는 말은 한 마디로 '지배담론을 쥐고 있는  자에게 권력
       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이 이론이 우리 인문학의  주된 흐름
       으로 자리매김할 정도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는 것일까?
         
          먼저, 문화연구는 유럽의 학문이라는 점이다.
         
          "전체성, 그리고 분리되고 복잡한 부분들을 연결시키는 합리적 틀에
       기초한 설명이 위대한 대륙적 사고 체계의 특징이다."(이안 챔버스. 25
       쪽. 재인용)
         
          "위대한 대륙적 사고"라니? 즉, 문화연구는 유럽적 학문의  한 경향
       이며, 그것을 수용하는 우리의 입장은 달라야 한다. 먼저 '문화연구'를
       수입함에 있어 저 꼴 사나운  '위대한 대륙적 사고'라는 것부터  비판,
       분석하여 없애는 일부터 필요하리라. 
         
          그러나, 불행히도 국내의 인문학연구자들은 서구의 그것을 무비판적
       으로 수용하려는 경향이 심하다. 한 예로, 영국의 문화 연구에서 '하위
       문화sub-culture'에 대한 연구가 매우 비중있게 다루어짐으로해서 국내
       연구자들도 우리의 하위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영국의 하위문화와 같은 것이 존재하고 있
       을까? 폭주족(?), 혹은 건달(?) 양아치(?)로 구분되어질 수  있는 부류
       의 문화가 그들의 하위문화일까? 내가 보기엔 전적으로  다르다고 생각
       된다. 영국의 하위문화적 전통은  젊은 세대의 부모세대에게도  있었던
       것이며, 그 이전 세대에서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폭주족 문
       화는 팝문화영향 때문이지,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폭주족이었거나, 혹은
       그 비슷한 문화를 향유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상황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하위문화에 대해 너무  쉽게
       연구를 하려는 것같아 안타깝다.(* 연구를 하려면,  먼저 하위문화라는
       단어 자체부터 우리 실정에 맞게 새로 정의내려야 할 것이며,  또한 그
       것은 역사학이나 문화인류학 등 여러 학문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의 핵심은 영국의  문화연구는
       그들의 인문학전통, 특히 영문학  전통에서 벗어나 이루어진  것이다(*
       대부분의 영국 문화연구자들이  이전엔 문학연구자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정치적인 이유때문이었다(* 영국의 문화연구자들은 좌
       파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의 문화연구는 전통 때문이라기 보
       다는 전적으로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다(* 이것을 구분하지 못할 경우엔
       임상훈처럼 문학을  부르조아 이데올로기로  해석한다(;<<문학연구에서
       문화연구>> 역자서문에서)). 하지만, 그 정치적인 이유는  이미 퇴색되
       어졌다. <<문화과학>>이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문화'에 대해서 공개적
       인 채널을 통해 논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들 문화
       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문화과학>>이 노렸던 정치
       적인 목적은 이루어진 것같지 않으며, 문화담론들은 지배권력의 이데올
       로기로 이용되거나, 상업자본의 그것으로 이용되고 있을 뿐이다. 이 사
       이에서 고통받고 있는 존재가 순수예술이다(* 필자의  순수예술에 대한
       사랑을 용서하시라). 여기에 대해선 다분히 감정적인 어조로 <<K에게>>
       라는 글에서 언급했음으로 그냥 넘어가겠다.
         
          글이 서평적인 성격을 넘어서버리고 말았다. 읽는 사람 각자 나름대
       로 읽어주었으면 싶다. 혹시, 현재 이야기되는 '문화연구'에 대해서 알
       고 싶다면, 그래엄 터너의 <<문화이론입문>>이 도움이 될 것이다.
         
          * 문화이론, 문화연구 라는 말을 섞어 사용하였다. 이 두 단어의 차
       이란 거의 없다. 단지 문화연구라고 했을 때에는 영국의 그것을  더 상
       기시키기는 하지만, 별 차이를 두지 않고 사용하였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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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바라기의 碑銘
          - 청년 화가 L을 위하여


          나의 무덤 앞에서는 그 차거운 碑ㅅ돌을 세우지 마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
       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 날아 오르
       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 함형수咸亨洙. <<詩人部落>> 창간호. 1936.
         
          길을 가다 해바라기로 둘러쳐진  무덤을 본다면, 그대의 무덤인  줄
       알고 고개 숙여 그대를  그리워하겠나이다. 그리고, 파아란 허공  속을
       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저는 아직 꺼지지 않은 그대 꿈을  쫓아 산으
       로, 들로, 바다로 뛰어다니겠나이다.  하지만, 내가 다니는 길은  갈색
       보도블록으로, 뚝뚝 부서진 시어처럼  외로이 서있는 가로등과  가로수
       로, 멍한 눈빛으로 하루를 사는 행인으로 둘러쌓여있음을.
         
                              *                          *
         
          글을 쓰지 못한다는 무력감은 일주일 넘기고 있다(*  문화공장에 올
       리는 글이 요즘 쓰고 있는 글이 전부일 정도로). 시를  쓰던 선배가 죽
       었다. 서른이거나, 아직 서른이 되지  않았을 나이일 텐데, 그는  몸의
       통증을 느낀 지 하루만에 죽었다. 어제는 그의 遺作들을  읽었다. 그의
       시는 일종의 암호처럼, 시어와 시어의 거리가 너무도 멀었다.  그 거리
       사이에서 그는 아파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 거리는  가까워질 수
       있었는데).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는  그 아픔의 거리를 즐기고  있었
       다. 그 먼 거리의 은유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도 날 버리고, 문학도 날 버렸다"라며, 먼 선배가 신문  한 귀
       퉁이를 장식하며 자살했다. 난 그녀를 알지 못한다. 아마 동문회나, 혹
       은 길 가다 우연히, 그렇게 옆을 스쳐지나갔을 지도 모르리라. 하지만,
       자살이라는 테마는 너무 가슴 아프다. 분명 그녀는 자신을 버린 사랑을
       향해 칼을 들었을리라. 그러나, 그 칼은 자신을 향했고, 상처  입은 채
       로 세상 이전으로 돌아갔으리라.
         
          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생사를 거듭하지 말아라.
          썩어서 공이 되거라.
          네가 간 그곳은 어떠냐.
          (... ...)
          누런 해가 돋고 흰 달이 뜨더냐.
         
                             *                  *
         
          萬感이 교차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겨울도 아니고,  그렇다고
       봄도 아닌 날씨 탓인가. 내 몸뚱아리는 그것이 늦가을의 날씨라는 고집
       을 굽히지 않는다. 그러나, 날씨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날씨는  그냥
       날씨일 뿐임을.
         
          "詩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
       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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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드릭 모디아노의 <<잃어버린 거리>>(김화영 역, 책세상)라는 소설을 읽다보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지. 한 부류는 책을 쓰는 사람들이고, 나머지 한 부류는 책과 같은 인생을 살아감으로 해서,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야. 자네는 어디에 속할 것같나?" 라는 문장을 만난다. 한때 이 둘을 혼동했었다. 책과 같은 인생을 살아야만 책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건 단지 책과 같은 인생일 뿐, 책은 아니다.

나도 김영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매력적인 단편 <거울에 대한 명상>, <도드리>를 읽고 '제법이다'라고 생각했지만, 결정적으로 <<나는 나를 --->>(문학동네)을 읽고 망가졌다. 송경아도 이 부류이다. 조경란은 그녀의 등단작 <불란서 안경원>을 텍스트로 문장연습을 한 경험이 있어,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녀의 단편은 살아남지 못했다. 온통 빨간펜이었으니. 아직 백민석은 읽지 못했다.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들도 바흐를 들었고, 모짜르트를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은 지금의 우리보다 더 모던했었는지도 모른다. 한국문학사를 보면 1950년대는 '암흑기'다. 뛰어난 작가들은 다 월북한 상태였고, 아직 김수영과 김승옥은 나타나지 않았으니.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민음사)을 읽으면서, 고진은 20세기초반 일본문학에 대해 이토록 명징한 글을 쓰고 있는데, 왜 한국은 그렇지 못한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일본의 근대문학시기에 한국은 무엇을 했는가? 식민지 상태였지만, 그로 인해 많은 명석한 지식인들이 '생존' 그 자체에 대한 절망을 몸에 새긴 채로 일본 유학을 했었다. 가끔은 유럽에 유학을 갔던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칸트와 헤겔, 마르크스, 엥겔스를 가지고 들어왔으며, 세잔느를 알았고, 바흐를 들었다. 그런데, 지금 9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매우 낯선 이야기다.

                 *            *

프랑스로 그림 공부를 떠났다가 아예 붓을 버리고 이가 몇 된다고 한다. 그들 대부분은 떨린 가슴을 안고 렘브란트나 세잔느의 작품을 보러 루브르로 달려가고, 그들은 그 곳에서 '과연 내가 꿈꾸는 그림은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처절한 물음에 봉착하게 되고, 끝내 붓을 버린다고 한다. 뒤샹도 그림을 버렸다. 아직 뒤샹의 모든 고민을 알지는 못한다. 그의 <<샘>>이라는 작품을 보고 있으면, 萬感이 교차한다. 근대 소설이 시작됨과 동시에 근대소설을 벗어나는 스턴의 <<트리스트람 샌디>>(*번역 되지 않았음. 번역이 되어도 재미없을 것같음)가 만들어졌고, 세잔느 이후로 현대미술이 시작되었다라고 본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뒤샹 은 아예 미술 그 자체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곤 붓을 버렸다. 뒤샹 이후의 작가들은 뒤샹이 그어놓은 미술의 경계선에서 왔다갔다 할 뿐이다.

               *                *

역시 플라톤은 대단한 놈이다. 그가 그어놓은 인간 본질에 대한 물음, '인간은 존재(being)의 세계에서 생성(becoming)의 세계로 추방되었다'는 말은 그가 죽고 난 몇 천년동안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헤겔도, 하이데거도, 아니 모든 철학자와 예술가는 본질적으로 플라톤주의자일 지도 모른다. 그건 자신의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과 별들이 발하고 있는 빛'을 동일하게 만들기 위한, 고대 이후의 인간 사투를 가르쳐주는 한 단어일 것이다. 뒤샹이 그림을 버린이유는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표현한 작품의 불꽃이 하늘의 '별들이 발하고 있는 빛'과 같아질 수 없다는 절망에 대한 결단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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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렸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알 턱도 없었고 알기도 싫었을 것이며 알려는 의지도 없었다. 이미 선 긋기는 시작되었다. 저 땅은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못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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