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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해바라기의 碑銘
          - 청년 화가 L을 위하여


          나의 무덤 앞에서는 그 차거운 碑ㅅ돌을 세우지 마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
       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 날아 오르
       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 함형수咸亨洙. <<詩人部落>> 창간호. 1936.
         
          길을 가다 해바라기로 둘러쳐진  무덤을 본다면, 그대의 무덤인  줄
       알고 고개 숙여 그대를  그리워하겠나이다. 그리고, 파아란 허공  속을
       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저는 아직 꺼지지 않은 그대 꿈을  쫓아 산으
       로, 들로, 바다로 뛰어다니겠나이다.  하지만, 내가 다니는 길은  갈색
       보도블록으로, 뚝뚝 부서진 시어처럼  외로이 서있는 가로등과  가로수
       로, 멍한 눈빛으로 하루를 사는 행인으로 둘러쌓여있음을.
         
                              *                          *
         
          글을 쓰지 못한다는 무력감은 일주일 넘기고 있다(*  문화공장에 올
       리는 글이 요즘 쓰고 있는 글이 전부일 정도로). 시를  쓰던 선배가 죽
       었다. 서른이거나, 아직 서른이 되지  않았을 나이일 텐데, 그는  몸의
       통증을 느낀 지 하루만에 죽었다. 어제는 그의 遺作들을  읽었다. 그의
       시는 일종의 암호처럼, 시어와 시어의 거리가 너무도 멀었다.  그 거리
       사이에서 그는 아파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 거리는  가까워질 수
       있었는데).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는  그 아픔의 거리를 즐기고  있었
       다. 그 먼 거리의 은유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도 날 버리고, 문학도 날 버렸다"라며, 먼 선배가 신문  한 귀
       퉁이를 장식하며 자살했다. 난 그녀를 알지 못한다. 아마 동문회나, 혹
       은 길 가다 우연히, 그렇게 옆을 스쳐지나갔을 지도 모르리라. 하지만,
       자살이라는 테마는 너무 가슴 아프다. 분명 그녀는 자신을 버린 사랑을
       향해 칼을 들었을리라. 그러나, 그 칼은 자신을 향했고, 상처  입은 채
       로 세상 이전으로 돌아갔으리라.
         
          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생사를 거듭하지 말아라.
          썩어서 공이 되거라.
          네가 간 그곳은 어떠냐.
          (... ...)
          누런 해가 돋고 흰 달이 뜨더냐.
         
                             *                  *
         
          萬感이 교차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겨울도 아니고,  그렇다고
       봄도 아닌 날씨 탓인가. 내 몸뚱아리는 그것이 늦가을의 날씨라는 고집
       을 굽히지 않는다. 그러나, 날씨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날씨는  그냥
       날씨일 뿐임을.
         
          "詩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
       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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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드릭 모디아노의 <<잃어버린 거리>>(김화영 역, 책세상)라는 소설을 읽다보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지. 한 부류는 책을 쓰는 사람들이고, 나머지 한 부류는 책과 같은 인생을 살아감으로 해서,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야. 자네는 어디에 속할 것같나?" 라는 문장을 만난다. 한때 이 둘을 혼동했었다. 책과 같은 인생을 살아야만 책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건 단지 책과 같은 인생일 뿐, 책은 아니다.

나도 김영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매력적인 단편 <거울에 대한 명상>, <도드리>를 읽고 '제법이다'라고 생각했지만, 결정적으로 <<나는 나를 --->>(문학동네)을 읽고 망가졌다. 송경아도 이 부류이다. 조경란은 그녀의 등단작 <불란서 안경원>을 텍스트로 문장연습을 한 경험이 있어,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녀의 단편은 살아남지 못했다. 온통 빨간펜이었으니. 아직 백민석은 읽지 못했다.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들도 바흐를 들었고, 모짜르트를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은 지금의 우리보다 더 모던했었는지도 모른다. 한국문학사를 보면 1950년대는 '암흑기'다. 뛰어난 작가들은 다 월북한 상태였고, 아직 김수영과 김승옥은 나타나지 않았으니.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민음사)을 읽으면서, 고진은 20세기초반 일본문학에 대해 이토록 명징한 글을 쓰고 있는데, 왜 한국은 그렇지 못한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일본의 근대문학시기에 한국은 무엇을 했는가? 식민지 상태였지만, 그로 인해 많은 명석한 지식인들이 '생존' 그 자체에 대한 절망을 몸에 새긴 채로 일본 유학을 했었다. 가끔은 유럽에 유학을 갔던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칸트와 헤겔, 마르크스, 엥겔스를 가지고 들어왔으며, 세잔느를 알았고, 바흐를 들었다. 그런데, 지금 9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매우 낯선 이야기다.

                 *            *

프랑스로 그림 공부를 떠났다가 아예 붓을 버리고 이가 몇 된다고 한다. 그들 대부분은 떨린 가슴을 안고 렘브란트나 세잔느의 작품을 보러 루브르로 달려가고, 그들은 그 곳에서 '과연 내가 꿈꾸는 그림은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처절한 물음에 봉착하게 되고, 끝내 붓을 버린다고 한다. 뒤샹도 그림을 버렸다. 아직 뒤샹의 모든 고민을 알지는 못한다. 그의 <<샘>>이라는 작품을 보고 있으면, 萬感이 교차한다. 근대 소설이 시작됨과 동시에 근대소설을 벗어나는 스턴의 <<트리스트람 샌디>>(*번역 되지 않았음. 번역이 되어도 재미없을 것같음)가 만들어졌고, 세잔느 이후로 현대미술이 시작되었다라고 본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뒤샹 은 아예 미술 그 자체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곤 붓을 버렸다. 뒤샹 이후의 작가들은 뒤샹이 그어놓은 미술의 경계선에서 왔다갔다 할 뿐이다.

               *                *

역시 플라톤은 대단한 놈이다. 그가 그어놓은 인간 본질에 대한 물음, '인간은 존재(being)의 세계에서 생성(becoming)의 세계로 추방되었다'는 말은 그가 죽고 난 몇 천년동안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헤겔도, 하이데거도, 아니 모든 철학자와 예술가는 본질적으로 플라톤주의자일 지도 모른다. 그건 자신의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과 별들이 발하고 있는 빛'을 동일하게 만들기 위한, 고대 이후의 인간 사투를 가르쳐주는 한 단어일 것이다. 뒤샹이 그림을 버린이유는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표현한 작품의 불꽃이 하늘의 '별들이 발하고 있는 빛'과 같아질 수 없다는 절망에 대한 결단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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