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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1.

사랑하는 이가 어느 순간 결별을 선언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어떻게 될까. 가령 그 사랑이 자신에게 있어 어떤 절대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고 했을 때, 그래서 그 사랑을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자신의 육체에, 자신의 영혼에 어떤 상처를 입는다고 했을 때, 그런 경우에 그 사랑이 어디론가 사라진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저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만 할까?

아마 많은 청춘남녀들이 떠나가는 사랑을 향해 돌아오라고 안쓰러운 손짓을 하고 절규하고 몸부림칠 것임에 분명하다. 적어도 위와 같은 경우라면 말이다. 그리고 그녀, 혹은 그가 귀가하는 무렵 길모퉁이에 기대고 사랑하는 이에게 한 번이라도 더, 무슨 일이 생기기 전까지 계속 매달릴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때, 떠나간 이가 우리에게 하는 말. "넌 날 사랑하지 않아. 단지 집착할 뿐이지."

집착? 사랑이 아니라 집착... ... 이 말을 듣고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말이 딱딱하고 건조한 허공을 가르고 있는 동안 과거 우리 사랑은 철부지 젊음의 사소한 불장난같은 것이 되어버리고 내 사랑은 얼빠진 청춘의 정신나간 집착이 되어버린다. 이래도 계속 사랑에 목을 맨다면 그건 자신의 영혼을 사랑이라는 허상에 쏟아 붓는 행위이며 이 순간부터 자신의 사랑은 정말 '집착'이 되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집착'은 무엇이고 '사랑'은 무엇일까?

2.

한때 세상은 하나이고 그 하나인 세상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깨지기 시작한 시기가 19세기 후반기였다. 이 당시 유행했던 것은 실증주의와 더불어 데카당이었고 인상주의였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과 절망이 동시에 교차하고 있었다. 그건 꼭 한 사랑이 떠나갔기 때문에 그러므로 그 사랑은 거짓이었다는 것이 판명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진짜 사랑을 기다린다는 희망에 들뜬 사람들과 사랑했던 한 사람이 자신 곁을 떠나갔기 때문에 이제 자신을 사랑해줄 이는 그 누구도 없다는 절망감에 휩싸이는 사람들로 구성된 듯해 보였다.

이 당시 소설가 토마스 하디는 "우리는 우주의 법칙과 본성에 대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존재한다는 것이 온통 더욱 소름끼치는 일이며 더욱 무의미한 일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라고 쓰고 있다. 드디어 그 누구도 자신 앞에 서 있는 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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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엥 대성당, 끌로드 모네, 1894.


인상주의자들은 우리들의 세계가 아닌 나 안의 세계에 주목한 최초의 화가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하나의 사물을 바라보더라도 그것을 파악하는 이가 누구인가에 따라 다른 사물이 된다는 점을 명백하게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대상들은 이제 부드러운 색들로 잘게 부서지기 시작하며 가볍게 경련을 일으키고 원근을 상실하고 우리가 흔히 바라보는 세상이 아닌 어떤 한 순간, 그 순간 자체의 세상 속에 위치하게 된다. 이는 사랑을 잃어버리고 난 다음 과연 나는 그녀, 혹은 그를 진정으로 사랑했던가 하는 자기 반문 같은 행위이다. 이 자기 반문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고 난 그녀, 혹은 그를 어떻게 생각했던가로 이어진다. 이 순간 그것이 사랑이었든, 집착이었든 상관 없어지고 그저 대상과 일정 순간 거리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즉 20세기를 풍미하게 될 지적인 미술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한 번 사랑에게 배신당한 이들이 취하게 되는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자신의 내부 속으로 그 누구도 침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인상주의 작품들이 한결같이 보여주는 평면화는 이와 비슷한 심리적 배경을 깔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제 사랑하는 이가 새로 생기더라도 놀라지 않으며 과도한 관심을 쏟지 않고 적당하게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사랑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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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GRADA FAMILIA, 안토니오 가우디, 스페인 바르셀로나.

그러나 과연 우리는 사랑을 그렇게 쉽게 단념할 수 있을까. 안토니오 가우디의, 아직도 공사 중인 저 놀라운 건물은 19세기 말 아르누보가 어떤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몇몇 사람들이 사랑을 잃어버리고 난 다음 새롭게 나타나는 사랑에게 과도한 관심과 지나친 기대를 하듯이 가우디의 건축물들은 꼭 그러한 몇몇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는 듯 하다. 꼭 사랑하는 이의 손가락 하나 하나의 움직임을 행복한 눈길로 바라보고 머리카락 하나 하나에까지 사랑의 가치를 부여하려고 애쓰는 모습 말이다. 실제로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그랬는지 나는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다. 단지 그가 보여준 저 장식에의 집착은 사랑을 잃어버린 이들이 보여주는 지나친 관심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즉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매달리는 몸부림 같은 것이다. 그런데 과연 사랑은 무엇이고 집착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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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악마 - 10점
레이몽 라디게 지음, 김예령 옮김/문학과지성사




육체의 악마
, 레이몽 라디게(지음), 문학과 지성사




1. Passion

불같이 활활 타오르던 사랑이 식지 못한 채 여러 차례의 깊은 계곡을 통과한 다음, 끔찍한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그 사랑의 정념이 사악하기 때문일까? 혹은 불륜을 지속시키기 위해, 부도덕을 도덕으로 위장하기 위해, 그 순수한 사랑은 그 사랑을 타인들에게 숨겼다는, 그것만으로도 자신들의 사랑이 허약하다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 상처 입은 것일까?

2. 불륜

나에게, 혹은 이 소설을 읽고 잔인한 쾌감, 아마 아리스토텔레스라면 자신만만하게 '카타르시스'라고 말했을 그런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 모두 도덕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일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도덕적인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면 모든 사랑이 모험이며 불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의 반대편에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한 사회를 지속시키고자 하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존재한다.

15살의 나는 19살의 마르트와 밤을 보내며 사랑을 찬미한다. 그러는 동안 어두운 밤하늘 아래 별빛들을 엮어, 쓸쓸한 전장(戰場) 위에서 자크는 혼자 신혼의 집에 남겨진 아내의 얼굴을 그릴 것이다. 그리고는 기필코 이 전쟁에서 살아남아 사랑스런 마르트와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는 것이다.

3. 행복

그녀는 머리를 저었다. "널 알기 전에 난 행복했어. 난 내가 약혼자를 사랑한다고 생각했고 그가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해도 용서했지. 그런데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내게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너야. 내 의무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냐. 내 의무란 내 남편한테 거짓말하지 않는 게 아니라 너한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거야. 가. 그리고 내가 못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마. 넌 곧 나를 잊을 거야. 네 인생에 불행을 초래하고 싶지 않아. 내가 왜 우는데. 너보다 나이가 많기 때문이야."(p.67)

길거리 위에서 사랑에 빠진 그들은 그들의 사랑과 적대적인 세상을 속이기 위해 남매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임신한 마르트와 뱃속의 아이의 아버지라고 하기엔 아직 어린 16살의 나. 사랑을 속이지 않기 위해 세상을 속여야만 했고, 세상 속에 남아있기 위해 사랑을 속여야만 하는, 사회적 통념 하에서 허락되지 않고 오직 수다스런 여자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의 대상일 뿐인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에게 상처 입히면서 파국을 향해 간다. 하지만 마르트는 불안해하는 나를 향해,

"나는, 너랑 있으면서 불행한 편이 그 사람과 있으면서 행복한 편보다 좋아."(p.162)

4. 존재이유(rasion d'^etre)

이 세상엔 사랑이란 없고 사랑에 속아넘어가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한껏 우아하고 아름다운 포즈를 연출하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속이고 그 사랑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할 것이다. 마르트가 죽고, 16살의 나는 자신 앞에 놓여진 세상이 그 순간 빛을 잃고 침묵하며 아무 것도 아닌 것(無)으로 내려앉는 것을 바라본다. 그리고 남의 아이를 자기 아이라고 믿는 순진한 자크는 그 아이가 자신의 존재이유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들의 사랑은 죽었고 그 사랑 때문에 우리들은 적이 되며 그 사랑을 죽인 세상은 오늘도 역겨운 사랑을 노래한다. 그리고 우리들 중 몇몇은 우리들이 추구할 것은 '사랑'이 아닌 '사랑의 행위'이고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는 것이다. (끝내 발견하지 못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희망적인 우리들 중의 일부는 그렇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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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성의 구조 - 10점
이마무라 히토시 지음, 이수정 옮김/민음사


근대성의 구조
, 이마무라 히토시(지음), 민음사, 1999.


1. 인과율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모든 현상에는 인과율 (causality)이라고 하는, <원인-결과>라는 이름의 족쇄에 묶여 있다. 그리고 현재의 고통이나 불합리는 이것을 둘러싼 이러한 인과 관계를 이해할 때에만 벗어나거나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찾 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근대인(Moderni)라면 그렇게 생각 할 것이 분명하다. 따지고 보면 우리 인간이 속해 있는 우주에 비한다면 '근대(Modern)'란 그렇게 특별한 시대는 아니다. 단지 이 세계와 우주, 그 속에서 진행되는 인간들의 삶을 이러한 인과 관계와 이성의 눈을 통해 보다 치밀하고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 시대이며, 20세기 후반의 학자들은 이 치밀하고 정확하려 했던 활동에 큰 문제점이 있었다라고 지적하고 있으며 이마무라 히토시는 『근대성의 구조』라는 책을 통해 이 난삽한 지도를 간략하게 정리해놓고 있을 뿐이다.

2. 이마무라 히토시

근대에 대한 근본적 회의의 시대로서 1960년대, 그 중에서도 1968년의 파리와 프라하가 있었다라는 말로 이마무라 히토시의 논의는 시작된다. 그러나 그가 68세대의 철학-소위 '포스트 구조주의'라 불리는-을 긍정하면서 걸어가려 하는 이러한 논의의 시작은 마샬 버먼이 미셸 푸코를 언급하면서 '그의 언어는 꿰맨 자 국이 없는 거미집, 즉 베버가 일찍이 꿈꾸었던 모든 것보다도 훨 씬 더 완벽한 새장, 어떤 생명도 꿰뚫고 들어갈 수 없는 새장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많은 오늘날의 지성인들이 그 새장 안에서 푸코와 함께 질식사하기를 원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기이다'(『현대성의 경험』, 현대미학사, p.37)라고 말했을 때처럼 스스로 새장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위험한 작업임을 미리 주지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토시의 논의는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는데, 그것은 근대 속에 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이 세상에 대해 보다 정확하 게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전해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큰 희망을 부여하기 보다는 그러한 희망을 앗아가는 것이 긴 하지만.

3. 시간관

우리는 밝은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는 근대인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거야'라든지 '내일은 이렇게 비참 하지 않겠지'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면서 현재를 극복하려 한다. 하지만 과연 그 옛날 내일이라고 믿었던 오늘은 행복에 가득차 있는 것일까?

내일을 염두해 두고 인간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백 년이 채 되지 않는다. 즉 오늘은 어제보다 나았고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다는, 앞으로 전진해나가는 '직선적 시간관'은 중세 와 그 이전의 순환적 시간관을 대체한, 근대의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전의 순환적 시간관 속에는 과거 와 현재 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에겐 미래란 없었고 끊임없이 순 환하는 시간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도시와 상업의 발달 그리 고 종교개혁 등 일련의, 근대를 향해가는 여러 사건들 속에서 우 리는 '직선적 시간관'이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알 수 있다. 간단 하게 우리가 내일을 예측하기 위해 오늘의 주가동향을 유심히 살 펴보는 것처럼 그러한 행동들이 중세 말기의 도시 상인들에게서 도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미래를 향해 기도 한다고 하는 시간의식'인 것이다. '기도하는 정신의 시간의식은 미래를 선취하여 현재에 편입시키고, 미래를 편입시킨 현재에 있 어서 계획을 세우며, 또다시 미래를 향해 모험적으로 도박을 해 가는 시간의식이다. 그런 점에서 순환시간과는 정반대이다. 순환 시간은 전적으로 과거를 향하지만, 근대의 시간의식은 전적으로 미래를 향하는 것이다.'(p.76)

4. 기계론

그렇다면 근대의 직선적 시간관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미래를 선취한다는 것, 그것도 신의 이름이 아닌 인간의 능력으 로 <계획>하고 <제작>하고 끊임없는 <실험>의 반복을 통해 <확실 한> 미래를 달성하는 것. 여기에는 '이 세계 즉 자연이라고 하는 책은 삼각형이나 원과 같은 수학이나 기하학의 언어로 씌여있다' 라는 수학에 대한 신뢰(갈릴레이), '제작으로써 자연을 정복한 다'라는, 기계를 제작하듯이 자연도 수학적 확실성을 바탕으로 제작할 수 있다는 새로운 태도(베이컨),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각하는 나>의 발견, 그런 나에 대한 절대적 믿음, 그 믿음으로 시작되는 <분석>, <종합>, <검산>의 시스템(데카르트)이 밑바탕 에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기계론적 세계관 속에서 세상 의 모든 것은 등질 공간과 등질 시간 속에 위치하게 되며, 시간 은 직선적인 양적 존재로 파악되면서 진보라는 새로운 시간관념 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뉴튼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도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렇듯 기계론적 이성은 '세계를 분해하고 재구성하는 방법적 정신'의 다른 이름이며, '이 방법을 뒷받침하는 원점에 분할 불 가능한 개인'이 놓이게 된다.(p.121) 근대 시민사회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기계로서의 인간과 세계'를 말하고 있으며, 근대의 <자연법사상>이란 데카르트의 '코키토'가 만들어낸 근대 정신의 끝없는 변주들 중의 하나이다. 개인의 자 유와 권리는 자연적으로 부여받은 것이라는 <자연법사상>은 근대 자유주의와 정치 사상의 뿌리를 형성하게 되며, 프랑스 혁명의 <인권 선언>에서 '인간이 자유이며 공적 시민으로서 권리를 주장 할 수 있다'는 근대적 <개인>의 개념이 확고하게 선언되기에 이 르게 하는 밑바탕이기도 하다.

근대 시민 사회는 이러한 기계부품으로서의 개인들이 모여 있 는 곳으로서, 크게 나와 나의 관계(윤리 혹은 정신), 타인과의 관계(정치 경제), 자연과의 관계(생산과정)라는 세 가지 관계가 기계론적으로 조직되어 있다. 그래서 홉스는 '사람들에게 이성 (기계론적 이성)을 자각시키고, 개개인이 이성적 존재자가 되어, 만인의 생명과 소유물을 보전할 수 있는 국가를 창출하고, 근대 세계에 어울리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p.146)한다. 여기에는 '부품으로서의 개인, 톱니장치로서 의 사회'가 구성되며, 국가란 거대기계(리바이어던)가 된다. 이 렇게 새롭게 구성된 세계 속에서는 스미스는 홉스가 <이성>이 인 공적 인간관계를 만든다고 본 것과 대조적으로 <감정>이 인간적 인 대타관계를 만든다고 본다. 스미스의 이런 주장을 통해 시장경제의 매커니즘이 완성되며, 칸트에게서는 자기 입법과 자기 통 제가 이루어진다. 근대란 개인적 자율의 시대인 것이다. 이러한 자율은 정치 혁명과 산업 혁명을 통해 더욱 성숙해지며, 근대 기 계론은 부분적으로 근대 유기체론-라이프니츠, 헤겔, 화이트헤드 -으로 그 결점을 보완하면서 시민사회에 더욱 강력하게 정착되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근대는 똑같은 이름의 다른 모습으로 나가게 된다.

5. 근본적 회의

하지만 1968년의 파리와 프라하에서 일어난 일을 우리는 어떻 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이마무라 히토시는 자본주의 내부에 서, 그리고 사회주의 내부에서 일어난 이 움직임을 근대에 대한 근본적 회의로 파악한다. '근대 세계가 충분히 <합리적>이기 때 문에, 근대적 시민의 내면이 너무나도 충분히 <자기 통제적> <자 기 입법적> 이기 때문에, 도리어 근대성은 배제적, 차별적이라는 반성이 일어나게 된 것', 다시 말해서 근대 세계가 스스로의 인 과율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통제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순 수 자아>가 <경험 자아>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일 안에는 가능하 면 <경험 자아>(신체와 욕망을 갖는 자아)를 말살하고 싶다는 욕 구가 몰래 작용하고 있다. 근대적 인간은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이미 배제와 차별의 구도를, 말하자면 매일같이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p.175)

인간 내부에서부터 이루어진 이러한 <배제>와 <차별>은 근대 성의 구조가 필연적으로 지니게 되는 성격이라 할 수 있다. 그것 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기계론적, 수학적 이성에 대한 절대적 믿음, 직선적 시간관과 진보에 대한 확고한 신뢰는 신의 손을 떠 난 인간이, 자신의 앞에 놓여진 세계를 해명하고 구축시키면서 자연의 질서가 아닌 인간의 이성이 파악한 질서와 인과율을 부여 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이성적이지 않은 모든 것은 배 척당하게 된 것이다. 이마무라 히토시는 이러한 근대성의 구조를 진단하면서 이러한 근대를 넘어서는 방법을 제시한다.

6. 타자 공동체

'타자의 공동체는 중심이 없는 공동체이다. 동일화도 배제도 없는 공동체이다. 솔선해서 자기배제하는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만든 소극적 공동체는, 비록 무력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거기에 서는 인간이냐 비인간이냐 하는 물음이 완전히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p.190) 하지만 이러한 타자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해 야 하는 일들-자신 내부의 타자를 발견하는 것, 스스로 타자화 되는 것, 그리고 세계의 타자를 수용하는 것 등에 앞서 먼저 '타 자'를 밝히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 는 결코 타자를 알 수 없는데, 왜냐면 우리가 진리를 알아가는 방식은 전적으로 수학적 이성에 의지해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 는 우리의 사고가 진행되기 시작하는 지점에서부터 이마무라 히 토시의 진단한 근대성의 구조- <배제>와 <차별>-속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성적 자아가 아닌 <경험 자아>(신체와 욕망 의 자아)를 결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근대의 문제점을 이야기 하는 모든 학자들의 논의 속에서 궁극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지점 은 바로 이 지점인 것이다.

7. 근대

근대란 <희망>의 시대이다. 이 시대는 신의 손을 떠난 인간이 스스로 상정한 '이성이라는 이름의 빛'을 따라 항해한 시대이며 항해 도중에 만나게 되는 파도와 암초, 바람과 별빛의 지도를 손 수 제작하는 것과 동시에 배 안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문제점들을 여러가지 규칙으로 제도화하려고 노력한 시대이다. 그것은 뉴튼 과 케플러가 '과학혁명'을 진행시켰을 때, 프랑스 민중들이 바스 티유감옥을 습격했을 때, 그 희망은 절정에 달하게 되었다. 하지 만 이제 그 근대가 꿈꾸던 '희망'이란 고작 '자본주의의 승리'쯤 이라는 사실에 우리들은 당혹해하고 있다. 그 동안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 일어났고 현대 과학이 어떻게 인간을 조직적으로 학살 할 수 있는가와 폭탄 하나가 한 도시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는가 에 대한 처절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사회주의'라는 이름의 20 세기 최대의 정치실험이 68년 프라하에서 그 정체를 드러내었을 때, '자본주의'가 어떻게 사람들을 제도화하고 억압하며 감시하 는가가 그 해 '파리'에서 드러났을 때, 근대에 대한 회의는 그 극단에 치달았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소위 탈근대라 고 불리는 '절망'뿐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절망을 요약하고 있 는 책이다. 나는 '타자공동체'론의 한계를 지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마무라 히토시는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중요한 점을 시사하고 있는데, 그것은 근대가 마주하게 된 '절망'을 이성의 눈으로 그 깊숙이 응시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최후의 근대인 이 될 지도 모르는 우리들이 해야할 첫번째 일일 것이다.

'절망적이라고 일단 판단되는 것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 아닐까. 달콤한 언설과 이데올로기에 속지 않기 위해서라도 인간의 사회성이 내포하는 끔찍스러움에 직면해 나가야 한다. 그 편이 인간적인 성실함의 표시가 될 것이다.'(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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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하련 님, 안녕하세요. 반디앤루니스 컨텐츠팀 현선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이번에 지하련 님의 리뷰를 9월 5주 <반디 & View 어워드>로 선정하였습니다. 어워드 관련 적립금은 지하련 님의 반디 아이디로 일주일 이내에 지급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네요.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컨텐츠팀 현선 드림

    • 고맙습니다. ^^~. 코엑스 반디앤루니스에 가끔 들려서 책을 사가지고 가곤 해요. 사무실이 근처라서요~. 인터넷 서점으로도 책을 사보기도 하지만, 그래서 책은 실제로 만져보고 내용도 확인하고 사는 게 최고라서..ㅋㅋ. 이번에도 요긴하게 써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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