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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08/04/28 월요일 아침의 단상 (6)
  2. 2008/04/27 生은 다른 곳에, 밀란 쿤데라
  3. 2008/04/25 2008년 독일 아트.칼스루헤 - 2
  4. 2008/04/16 2008년 독일 아트. 칼스루헤 - 1 (6)
  5. 2008/04/14 봄 밤 매화 (1)
  6. 2008/04/11 꿈은 현실의 기억이 되고
  7. 2008/04/07 내 모습 (4)

Latte E Miele를 듣는 아침, 이스탄불에서 사온 터키식 차를 마시며 글을 쓰려고 해보지만, 요즘 나는 아주 심하게 글쓰기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Passio Secundrum Mattheum(1972) - Calvario / Il Dono Della Vi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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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생은 다른 곳에 - 10점
밀란 쿤데라 지음, 안정효 옮김/까치글방



生은 다른 곳에
밀란 쿤데라(지음), 안정효(옮김), 까치



이 소설은 ‘봄을 사랑하는 남자’ 뿐 아니라 ‘봄의 사랑을 받는 남자’라는 의미도 되는 야로밀(Jaromil)이라는 이름을 가진 시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것은 소설의 표면에 드러나는 것일 뿐. 이 소설은 젊음과 그 젊음이 염원하고 갈구하는 혁명에 대한 알레고리이며 모호한 관찰이며, 작가와 허구적 목소리의 뒤섞임이다.

‘생은 다른 곳에’. 프랑스 학생들이 소르본느의 벽에다 이렇게 낙서를 했다. (… …) 그 까닭은 참된 삶이 다른 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길바닥에 깐 돌들을 뜯어내고, 자동차들을 뒤집어엎고, 바리케이드를 일으켜 세우며, 그들이 세상에 등장하는 방법은 시끄럽고 화려하고, 불꽃의 조명을 받고 최루탄의 폭발에서 영광을 찾는다. 빠리의 바리케이드는 상상만 할 뿐이고 샤를레스빌을 아예 떠날 수 없었던 랭보에게는 삶이 훨씬 더 어려웠다. 그러나 1968년에는 수천 명의 랭보가 그들 자신의 바리케이드를 소유하고 있다. 그 바리케이드 뒤에 서서 그들은 현재 세상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과 어떠한 타협도 거부한다. 인간의 해방은 철저해야 하고, 아니면 전혀 해방이 아니다.
- 193쪽

작가의 목소리는 1968년 파리의 불타는 젊음들 뒤에 서서 비아냥거리고 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그렇지만 모든 인간은 다른 삶들도 살아볼 수가 없기 때문에 후회한다. 그대 또한 그대가 실현해보지 못한 모든 잠재성들을, 그대의 모든 가능한 삶을 다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안타깝도다. 자비에르의 삶을 실현시킬 수가 없다니!) 우리들의 얘기는 그대와 마찬가지다. 이 얘기도 역시 그것이 이룩할 수 있을 만한 다른 모든 소설이 되기를 갈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다른 전망대를 세우려는 꿈을 끊임없이 꾸고 있다. (… …) 우리들은 어리석은 야로밀보다 별로 더 아는 것이 없으며, 야로밀은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정말로 조금 밖에 모른다. (… …) 인간은 그의 삶에서 뛰쳐나올 수야 없지만, 어쩌면 소설은 훨씬 자유로운지도 모른다. 혹시, 우리들이 남몰래 서둘러서 전망대를 허물고는 적어도 당분간이나마 그것을 다른 곳에다 옮겨 세웠다고 상상해보라. 어쩌면 우리들은 그것을 아주 아주 멀리, 야로밀이 죽은 한참 후로 가져갈 수도 있으리라! 어쩌면 (그의 어머니까지도 몇 년 전에 죽었기 때문에) 아직도 야로밀을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이곳으로, 현재로 그것을 옮겨올 수 도 있으리라.
- 296쪽 ~ 297쪽
(‘자비에르’는 소설 주인공인 야로밀이 쓰고 있던 이야기의 주인공 이름이다.)


‘생은 다른 곳에’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꿈이다. 1968년 파리에 대해 많은 지식인들이 이야기하지만(‘파리 혁명’이라고까지 하면서), 밀란 쿤데라의 눈에 비친 68년 파리는 마치 공산혁명이 진행되던 1940년대 후반의 체코 프라하와 비슷해 보였을 것이다. 그는 야로밀이라는 어리석지만 순수하고 어머니의 치맛바람 속에서 자라났지만, 어머니의 영향 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순백의 사랑과 그 사랑이 불러일으키는 욕정에 대해서 종종 무방비 상태가 되는 시인을 통해 혁명 시대가 어떻게 오고 어떻게 가는지를 이야기한다. 이 소설의 원제가 ‘서정시대’였지만, 실은 ‘서정시와는 아무런 관련없는 혁명 시대’가 그 속뜻은 아니었을까(밀란 쿤데라 또한 18세의 나이로 공산당에 가입하고 젊은 시절 시인으로 활동했다).

위대한 문학이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는 자괴감이 이 소설 밑바닥에 깔려있는 작가의 자의식이라면, 소설은 끊임없이 어리석은 젊음에 대해서 꾸짖고 비아냥거리며 인생을 제대로 살아갈 용기가 없기 때문에 무모해지는 꿈과 그 꿈에 의해 발동되는 행동들에 대해 조소한다. 그래서 소설을 다 읽고 나면, 한 때 운동권의 잘 나가는 투사가 정치 권력의 중심을 향해 돌진해 가는 국회의원이 되거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꿋꿋하게 수익 창출에 골몰하는 비즈니스맨이 된 모습을 씁쓰레하게 떠올리게 되거나 세상에, 세상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인생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알지 못했던 상태에서 혁명을 노래했던 우리들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이 소설은 매우 실험적이고 위트와 유머가 넘치지만, 이마저도 밀란 쿤데라의 자괴감이 만들어내는 소설의 기형화(畸形化)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쳐 슬펐다. 소설책을 덮고 나는 바진(巴金, 1904~2005)의 글을 떠올렸다. 20세기 중국의 모든 것을 경험한 그가 떠올리는 문화대혁명의 모습이 기억났다.

“내가 어찌 기억하지 못하겠습니까?” 나는 말했다. “그날 저녁 몇몇 중학생들이 담을 넘어 들어왔지요. 앞장선 한 사람은 열네댓 살에 불과한, 베이징에서 온 간부 자제였는데, 그는 동두(銅頭)채찍으로 샤오산(바진의 아내)의 눈을 때려 다치게 했습니다. 그들은 몇 시간 소동을 피웠고, 마지막엔 나와 샤오산, 두 여동생, 그리고 스물한 살 난 딸을 전부 화장실에 가두었어요. 그들은 마음대로 물건들을 가져가더군요. 화장실의 문을 잠그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떠난 후 30여 분이 지나서도 우리는 감히 문을 열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이튿날 새벽 샤오산은 기관에 보고하였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학생들은 여느 때처럼 우리 집에 들어서자마자 함부로 뒤엎고 제멋대로 물건을 가져갔습니다. 다만 옷장과 책꽂이에는 기관에서 봉한 딱지가 붙어 있어서 그것을 건드리는 사람은 없더군요. 대략 일년여 시간이 지나자 기관이 우리 전 가족을 아래층으로 옮기게 했고 윗층의 방을 모두 폐쇄시켜버렸습니다. 계속해서 대학생들이 들어와 다시 우리 집을 차지했습니다. 그들이 처음 들어왔을 때, 우리 ‘소’들은 모두 불려나와 심문을 받고 대청에 무릎을 꿇었으며, 어떤 사람은 맞아서 이가 빠졌습니다. 이 곳에는 당시 작가협회 분회(分會)가 있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작가들이 ‘소’로 취급되어 온갖 수난을 당했으니 정말 엄청난 풍자 아닙니까! 이것은 대략 1968년 1월 하순의 일인데, 그날 신문이 끝나자 조반파 우두머리가 우리를 풀밭에 불러놓고 훈화를 하더군요. 우리는 모욕을 당한 후 다시 욕설을 들었지만 감히 한 마디 대꾸도 하지 못했습니다.
- 바진, <<매의 노래>>(황소자리), 119쪽 ~ 120쪽
(설명: 문화대혁명 당시 사상이 불순하다고 평가된 사람들을 ‘소’로 취급하였고 외양간 생활을 오랫동안 하기도 했다. 바진 역시 그 외양간에서 살기도 했다. 그리고 문화대혁명 때 동원된 중고등학생, 대학생을 ‘홍위병’이라 하며, 직장에서 문화대혁명을 지지하여 들고 일어났던 직원이나 노동자를 ‘조반파’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홍위병’들이 이제 사오십대가 되어 중국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아직 ‘문화대혁명’에서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살아있을 때 바진은 문혁 박물관을 건립하여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희생된 많은 이들을 위로하고 기념하고 싶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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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테이블 위에 놓인 낯선 요리를 본다. 꼭 이국의 젊은 여인을 만나 사랑을 나눌 듯한 느낌이다. 포크로 조심스럽게 하나를 찍어 먹는다. 창 밖으로 어둠이 내리고 비가 내린다. 한 나라의 요리는 그 나라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하지만 내 천박한 허기는 낯선 요리를 깊게 음미할 기회를 여지없이 박탈해버린다. 마치 대부분의 소년들이 가진 거칠고 사나운 욕정이 순결한 사랑을 고백하는 소녀들에게 상처를 내듯이(아니면 그 반대든지).

낯선 요리에 반한다는 것은 이국의 대기와 대지 속에 온 몸의 감각을 맡기는 것과 같다. 독일 요리는 순박하다. 화려한 기교나 장식은 없다. 낯선 이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수줍은 듯 말을 건네다가, 상대의 호의를 느끼는 순간 편한 미소로 다가온다. 독일의 요리는 이런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선 보였다.

하지만 입맛만큼 세상에 보수적인 것은 없다. 어느 과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서른세 살 이후 먹게 되는 낯선 음식을 좋아하게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서른세 살 전에 먹었던 음식의 맛을 기억해두고 이를 계속 찾게 된다는 것. 외국 생활을 오래 했지만, 밥이나 김치, 고추장을 끊임없이 찾게 되는 것도 우리들의 보수적인 입 탓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여러 번 낯선 음식에 당황스러워한 경우가 있다. 이 점에서 호텔의 가지런한 아침식사만큼 부담 없는 것도 없다. 빵과 우유, 주스, 햄과 샐러드, 계란으로 이루어진 아침 식사는 지친 여행객에게 건조하지만 짧고 깊은 편안함을 선사한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메세 칼스루헤로 향하는 길. 밤새 내리는 비는 온데간데 없고 언제 그랬냐는 듯 햇살이 거리에 부서져 내렸다. 눈이 부셨다. 몇 천 명 정도 사는 듯 보이는 배드 해른알브는 우리의 작은 읍을 연상시켰다. 칼스루헤에서 배드 해른알브까지 전철로 약 40분 정도 걸린다. 이렇게 보면 그렇게 멀게 생각되지 않지만, 자동차로도 삼사십 분 이상 달려야 하는 꽤 떨어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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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인구밀도가 부러웠다. 그래서 독일의 자연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고 삶은 윤택해보였다. 다만 사람들 성격들이 내성적이고 조심스러워, 다소 심심하거나 쓸쓸할 경우가 많은 듯 보이는 것을 제외한다면.


아트페어의 첫 날은 VIP 프리뷰이다. 아트페어는 그 나라나 그 지역의 사회 저명 인사나 미술 수집가, 언론매체 종사자 등 VIP로 볼 수 있는 일군의 사람들에게 먼저 프리뷰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아트페어마다 프리뷰의 성격이 서로 다르다. 어느 아트페어의 경우에는 프리뷰 때 상당수의 작품이 팔려나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느 아트페어에서는 프리뷰 땐 살만한 작품을 점 찍어 놓고 며칠 지나 구입해 가는 경우도 있다. 어느 때에는 마지막 날 아트페어 대부분의 매출이 발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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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로 붐비진 않지만, 가장 신경쓰이는 날이 바로 첫날 프리뷰 때이다. 프리뷰 때 방문한 고객들 중 작품을 구입할 생각이 있는 일부는 아트페어 기간 중에 다시 들려 작품을 구입해 간다.


최근 들어 미술 비엔날레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와 대조적으로 아트페어의 위상이 높아지고 대한 미술계와 대중의 관심도 늘고 있다. 전자가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전시인데 반해, 후자는 갤러리들과 고객들을 위한 대규모 시장이다.

새로움으로 포장한 평론들, 일반인들에게는 어렵지만 현대 미술의 방향을 결정지을 지도 모르는 작품들, 현대적인 용어들로 작품들을 나누고 설치하고 설명하는 비평가들과 전시 기획자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예술가들. 관람객들은 작품들을 보기 위해 들어온다. 갤러리스트들도 있을 것이고 미술 잡지의 기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엔날레의 주인공은 예술가와 그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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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세 칼스루헤와 서울 삼성동 코엑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모두 오직 아트페어를 보기 위해서 오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흰 벽면에 작품이 걸리고 그 옆에는 제목, 작가이름, 크기, 재료, 제작연도, 그리고 가격이 적힌 메모가 있다. 갤러리스트들은 어느 관람객이 작품을 구입할 사람인지 유심히 살핀다. 콜렉터들은 손에 작은 수첩 하나를 들고 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을 경우에는 갤러리 이름, 부스 번호, 그리고 작품 이름과 가격을 적는다. 적게는 몇 천 유로에서 많게는 몇 만 유로 이상 나가는 작품을 사기 위해서 그들의 들이는 노력은 매우 대단하다(미주1). 여기에서 예술가는 매우 드물게 노출된다. 한 점이라도 더 팔려는 갤러리스트들과 좋은 작품 하나를 고르려는 콜렉터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정쩡하고 불안한 표정의 예술가들로 구성된 것이 바로 아트페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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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Schiela의 작품이다. 그의 홈페이지는 http://www.schiela.de/ 이다. 꽤 흥미로웠던 수채화였다. 한국에서도 극사실주의 작품이 유행이지만,  세계적으로도 추상 작품보다는 구상 작품들이 최근의 트렌드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재털이, 병뚜껑, 옷감, 과일 등이라면 외국 작가들은 일상의 풍경, 사람의 표정, 어떤 몸짓이라는 점이다. 어느 작가가 살아남느냐는 작품의 시작부터 이미 결정이 나있는 셈이다(그런데 가격도 보이는데, 지워야 되는 건가).



주1) 한국과는 달리 미술 작품에 대한 투자의 개념이 달라서, 유럽에서는 작품을 구입해 오래 보관한다. 젊은 청년이 구입한 작품은 그가 아버지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고 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작품은 그 때 그 자리에 걸려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작품의 가격은 오랜 시간 후에 작품의 가격은 극단적으로 나누어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구입했던 때보다 오른 경우가 많고 어느 경우에는 문화재로 인정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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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해마다 겨울이면 조용하고 은밀한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그것은 곱고 차가운 햇살 아래에서 다듬어지며, 창 밖의 불길한 어둠을 가르며 내리는 흰 눈으로 감추어진다. 가끔 깊고 무거운 막다른 골목길까지 걸어 들어오는 행인의 구두 밑에서 사각대는 눈 소리는 내 사각의 방이 가진 쓸쓸한 온기를 터질 듯 한 컷 부풀인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가기 전, 서울엔 눈이 내렸다. 그것이 내가 올해 본 마지막 눈이었다.

사진

공항 가기 전 날 찍은, 어느 건물 옥상 사진. 옥상에 새겨진 저 무늬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곧바로 Art. Karlsruhe가 열리는 Messe Karlsruhe로 갔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중이었고, 유럽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들이 이미 와서, 전날 항공화물로 도착한 작품들을 꺼내 놓고 작품을 전시장 벽에 설치하고 있었다.

작품 설치 중

Painting과 Photo 작품들 뿐이라 그리 어렵지 않지만, 시간은 꽤 오래 걸렸다.평행선을 벽면에 비추어주는 기계다. 저 기계, 건축 현장에서나 볼 만한 기계라고 생각했는데, 작품 설치 때 꽤 요긴하게 쓰인다.


한 시간 정도 작품을 설치하다가 미리 예약해놓은 호텔로 갔다. Karlsruhe 인근의 Bad Herrenalb에 있는 Treff Hotel이었다. 그런데 ‘Karlsruhe 인근’이라기 보다는 꽤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우리는 Karlsruhe에서 나와, 숲 속으로 무려 30분이나 들어갔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낯선 브랜드의 GM 자동차에 붙은 네비게이션 뿐이었다. 그것도 딱딱한 독일식 억양의 아줌마 목소리의 영어로 설명하는.

서울에서 프랑크푸르트로, 프랑크푸르트에서 다시 칼스루헤로, 칼스루헤에서 배드 헤른알브로, 나는 지쳐 금방 잠이 들었다. 시차도 피곤함에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하지만 새벽에 깨는 잠은 어쩔 수 없었다.

호텔방

두 명이 쓸 수 있는 방에 혼자 머물렀다. 지금 보니, 약간 우울한 풍경이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고 정신없는 일정이었다.


아침이 왔다. 낯선 풍경이었다. 독일의 숲이란 이런 모습이었구나. 침엽수로만 이루어진 유라시아 대륙 서쪽중간에 위치해 있는 숲은 겨울에서 봄을 향해가고 있었다. 간간히 새소리가 들렸고 어디선가 교회 종소리도 들리는 듯 했다. 집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 올랐다. 아침을 알리는 사람들의 소리 없는 메시지. 그러고 보니 호텔 조식 사진을 찍어둘 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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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이란 단어는 이국에 나가보면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며칠 지나면 그 기분도 사라진다. 일상의 힘은 놀랍다. 끊임없이 뭔가를 처리해야만 하는 일상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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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조금만 운전해 가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것이 산인데, 독일에선 그렇지 않았다. 낮은 언덕을 만나기도 어렵다. 이 곳이 난 어딘지 모른다. 베드 헤른알브에서 메세 칼스루헤로 가는 길 중간에 맞주친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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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트스피드를 잘못 맞추었다. 여유를 가졌다면 사진을 많이 찍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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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스루헤 인근에 바덴바덴도 있고 베드 헤른알브가 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도 인근이다. '인근'이라는 표현이 좀 모호한 감이 없진 않지만. 프랑스, 스위스, 독일이 서로 마주하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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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봄밤, 인사동 어느 집 정원에서 찍은 매화. 부드럽게 꽃망울이 밤바람에 흔들거리는 모습을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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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어떤 꿈은 너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그것은 실제 기억과 융합되면서 자연스럽게 현실의 기억이 된다. 아마 다수의 사람들에게 일어났을 것으로 짐작되는 이 일은 사소하지만, 사람들에겐 견딜 수 없는 정도로 깊이 패인 정신의 상처가 될 가능성이 있다. 눈을 뜨고 살아가지만, 우리가 가지게 되는 기억의 일부는 아주 오래전 선명하게 남겨진 꿈에게서 연유한 것. 종종 우리가 눈 앞의 현실에게서 고개를 돌리려고 할 때, 특히 젊은 날의 열정과 꿈이 흐린 눈가나 입가의 주름 사이로 숨어버리는 삼십대 후반이나 사십대 초반의 남자에게 더욱더 위험한 이 사건. 이 무렵의 남자들이란 대개 길거리에서, 직장에서 마주 하게 되는 젊음들에 대한 공포, 사랑하지만 사랑한다고 힘주어 고백할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아내, 번번히 대화의 미끄러짐을 경험하게 해주는 냉담한 그의 아이들, 하루하루 정해진 일과로 짜여진 그의 모던 타임즈, 정기적으로 바뀌는 계절의 수상한 향기 속에서 그들의 영혼은 천천히 주눅 들고 지쳐가고, 그러다가 소리없이, 혹은 과감하게 오래 전 꿈을 군데군데 조각난 과거 현실의 기억 사이에 집어넣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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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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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Segal
(1924-2000)

Girl Against a Post, 1973
Plaster and cloth with wood
183.5 x 53.3 x 54.6 cm


자기 전에 조지 시걸의 조각 작품 하나를 올린다.
현대인의 쓸쓸하고 슬픈 모습이다.

내 모습이다.
원하지 않았던 내 모습이다.

- 2003년 9월 16일.



이력서를 만들기 위해 내 사진을 찾다가 이 작품 이미지를 발견한다.
조지 시걸.
너무나 우아하고 슬픈 현대인들의 모습을 표현한 조각가.
그를 꽤 오래 잊고 있었다.

(아직까지도)내 모습이다.
원하지 않았던 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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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