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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08/05/28 바쁜 일상 속에서... (2)
  2. 2008/05/25 사람들 사이의 말 (2)
  3. 2008/05/24 시간이 싫어요. (2)
  4. 2008/05/16 넬Nell의 기억을 걷는 시간 (4)
  5. 2008/05/13 blogging (5)
  6. 2008/05/04 페스트, 알베르 카뮈 (7)
  7. 2008/05/02 내 인생 최대의 적

 요즘 거의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 음악도 듣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휴식과 몽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인가를 알고 있다. 다행이다. 잊어버리지 않고 있으니.

 어젠 화성시에 갔다 왔다. 현재 준비 중인 Art Fair 일로 화성시 비봉 근처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돌 깎고 있는 선배를 만나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작업실에서 보았던 조각상들의 돌 무늬가 너무 생각났다. 너무 아름다웠다.
 
 넬(Nell) 시디를 샀다. 사람들에게 넬 시디 선물해주고 있다. 싸이 미니 홈피 있는 이들에겐 음악을 선물하고. 오랜만에 가요에 '필'이 꽂혔다.

 간송미술관을 가야하는데, 언제가 좋을 지 ... ... 새벽 비 소리가 요란해, 마음이 너무 심란했다. 너무 심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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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며칠 전 사람이 살아가면서 한 번 듣지도 못할 말을 들었다. 그 들음의 충격은 며칠이 지나가도록 사라지지 않는다. 어떻게든 해야 겠지만, 인간 관계가 그렇게 쉽게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에 그냥 지나칠 생각이다. 하지만 기억은 해두어야 겠다.

일요일, 밀린 일들이 해야할 시기다.

"그린을 겨냥하는 게 점점 재미없어지고 대신 관중을 겨냥해 샷을 날리는 것에 관심이 많아져서" 골프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이 은퇴한다. "스트레스가 심한 경기에선 티를 땅콩처럼 씹어 먹"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고도 했으며, "(캐디가 아니라) 캐디백과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드디어는 자신의 퍼트에는 신경이 가질 않고 "오직 내 약혼자의 퍼트에만 신경을 쓰고 있"음을 고백했다. 그녀가 부럽다. '은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는 것이.

나는 태어나서면서 은퇴하고 싶었고 살아오면서 은퇴하고 싶었고 지금도 은퇴하고 싶다. 하지만 '은퇴'라는 단어는 내가 사용할 수 없는 단어임을 태어나면서부터 알았고 살아오면서 반복적으로 깨달았고 은퇴하고 싶은 지금에도 은퇴라는 단어가 나에겐 너무 먼 단어임을 알고 있다.

마음은 어둡고 쓸쓸함은 내 육체의 깊고 은밀한 아픔을 찌른다. 이럴 때 살아있는 동안 한 번도 이 세상 사람이었던 적이 없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어야한다. 오직 이런 때여야만 한다.

나는 지금 피가로의 결혼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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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인생은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롤러코스트. 무시할 수 없는 공포와 처절한 쓸쓸함과 슬픈 느낌으로 자욱한 길거리. 무수한 사람들로 빼곡하지만, 정작 손 잡을 사람은 한 명도 없는 모호함 속. 결국 나 혼자 걸어가는 공포의 계곡길. (http://me2day.net/intempus)

*    *  

토요일 아침, 흐릿하게 시작한다. 흐릿하게 시간을 흘러보낸다. 며칠 너무 정신 없었다. 며칠 너무 슬펐다. 며칠. 며칠. 며칠. 하긴 세상을 결정하는 건 단 1초다. 1초에 모든 것이 송두리째 날라갈 수도, 복원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싫다. 공간만 존재하는 곳. 그 곳이 있다면 이데아의 세계일 것이다. 그리스 고전철학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시간성을 잃어버리고 공간을 향한다. 왜냐면 그 곳엔 어떠한 감정의 흔들림도, 슬픔도, 쓸쓸함도, 고독도, 오해도, 아픔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아픔은 시간이 만들어내는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이 때 베르그송은 엘랑 비딸을 이야기하면서 시간이 가져다주는 약동하는 생의 모습을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도 아픔 앞에선 어쩔 수 없었다.

가끔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멍해지거나 도리어 정신이 맑아지는 때가 있다. 결국은 내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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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TAG 공간, 시간



곧잘 가는 술집에서 음악 선곡하다가, 손님이 신청해 알게 된 곡. 요즘 이 노래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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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않은 지 벌써 2주가 지난 듯 하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여전히 쓸쓸하기만 한 술과 가까이 지내고 육체를 돌보지 않으며 넓은 방안의 먼지들과 둔탁해지는 영혼을 보며 안타까워만 할 뿐이다.

 가끔 만나게 되는 묘령의 아가씨에게 던지는 내 '가을의 잔잔한 물결'(波)은 번번히 우아하지 못한 몸짓을 보여주며 시간의 연기 속으로 사라져 갔다. 어두운 미래 만큼이나 어두운 내 가슴의 그림자를 내가 어쩌지 못하는 까닭에, 어느 화요일 비 소리는 종종 견디기 힘든 고통을 안겨준다.

  거의 10년만에 다시 본 로만 오팔카의 그림을 보고 너무 좋았다. 그러나 로만 오팔카보다, 이우환보다 귄터 워커의 작품이 나에게 압도적이었다. 가슴을 찌르는 듯한 그의 작품들은 둔탁한 운동의 두께 속으로 날카로운 소리를 집어넣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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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페스트 - 8점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책세상


페스트
알베르 카뮈(지음), 김화영(옮김), 책세상



<<이방인>>이 주었던 그 강렬한 충격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리고 카뮈의 <<페스트>>를 읽었다. 벌써 몇 달이 지났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 난 후였다. 도시에서 일어난 어떤 질병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 두 소설은 흥미롭게 교차되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가 의사 아내의 눈을 통해 묘사되듯, 카뮈의 <<페스트>>에서는 의사인 리유를 통해 보여지고 있었다.

하지만 <<페스트>>는 <<눈 먼 자들의 도시>>와 비교해, 극적 긴장감이 떨어지고 사변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질병으로 인해 폐쇄된 도시의 풍경을 묘사하지만, 그 속에는 극적인 사건보다는 질병과 죽음이 일상이 되어가는, 우울한 도시 풍경 뿐이다. 젊은 카뮈에게 '어떤 절망적 위기 앞에서 인간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꽤 긴 성찰과 반성이 요구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점에서 주제 사라마구는 분명하다. '우리는 쉽게 자살하지 못한다'라는 것이다. 어쩌면 <<페스트>> 이후의 주제 사라마구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 지도 모른다.

<<페스트>>와 <<눈 먼 자들의 도시>> 사이에 우리 인류는 어떤 일들을 겪었던 것일까. <<페스트>>의 리유에게는 생각할 힘과 행동할 힘을 주어졌으나, <<눈 먼 자들의 도시>>의 의사 아내에게는 생각할 힘도, 행동할 힘도 주어지지 못했다. 그래서 <<페스트>>에서는 희망을 발견하고자 하는 인간 지성의 힘을 읽지만,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희망이란, 아주 우연스럽고 갑작스럽게 다가올 뿐, 인간 지성은 아무 쓸모도 없는 거추장스러운 것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 우리는 죽지 못해 살아갈 뿐이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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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뜨거운 차가 부담스러워지는 계절이 온 것일까. 아니면 내 마음의 뜨거움이 어색해지고 낯설어지는 나이가 된 것일까. 아니면 엉망으로 살아온 시절들에 대해 육체가 그 특유의 반응을 쏟아내는 것일까.

천칭자리 태생은 늘 어떤 선택의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넣고 그 선택을 끊임없이 뒤로 미루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일까. 세 여신을 앞에 두고 망설이는 파리스처럼.

전 세계 사람들이 망쳐놓은 계절은 실성한 듯한 더위를 우리에게 선사하고 극지방의 얼음이 녹고 깊은 바다 물고기들이 길을 잃고 얇은 바람은 삽시간 두텁고 무거운 부피로 우리의 도시를 강타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모른다는 건 얼마나 좋고 행복한 일인가. 모르기 때문에 그저 두려움에만 떨고 신에게만 의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토록 갈구하던 신은 우리에게 외롭고 싸늘하게 죽어가는 키에르케고르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신은 죽었다고 이야기한 채 미쳐 죽어가는 니체의 모습에게서 교훈을 찾으라고 한다. 결국 선택은 우리의 몫.

이젠 술마저도 날 버리고 날 둘러싼 모든 이들이 적처럼 보이는 어느 시간,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혹은 내 자신이 내 인생 최대의 적이 아닐까. 하긴 그럴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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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