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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21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에드워드 사이드 (11)
  2. 2008/06/17 눈물 (6)
  3. 2008/06/14 서양미술사 입문 (4)
  4. 2008/06/13 늦은 봄의 오후 (10)
  5. 2008/06/11 Korea Art Summer Festival 2008 (2)
  6. 2008/06/07 서양문화의 역사2, 로버트 램
  7. 2008/06/06 Atta Kim: On-Air, 로댕갤러리 (2)
  8. 2008/06/02 misc.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 10점
에드워드 W. 사이드 지음, 장호연 옮김/마티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에드워드 사이드(지음), 장호연(옮김), 마티, 2008년


 

자네는 새로운 나라를, 또 다른 고향을 결코 발견하지 못할 거네.
이 도시가 항상 자네를 따라다닐 테니까.
자네는 같은 거리를 걷고 같은 동네에 살다가 나이를 먹고,
결국은 같은 집에서 늙어갈 테지.
자네는 이 도시에서 벗어나지 못하네.
그러니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삶을 펼칠 희망은 버리게.
자네를 실어다 줄 배는 없네, 자네에게 열린 길은 없어.
여기 이 좁은 모퉁이에서 이제까지 삶을 낭비했듯이,
세상 어디에 가든 마찬가지로 삶을 망칠 것이네.
- 그리스 시인 콘스탄티노스 카바피의 <도시> 중에서(205쪽 재인용)

이 시처럼, 어쩌면,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이제까지 내 삶을 망쳐왔으니(내가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앞으로도 망쳐갈 것이다. (참 무책임한 비유이긴 하지만) 이 지구가 망쳐져 가는 것처럼. 터무니없게도 나는 내가 ‘세속적이고, 기지가 넘치고, 귀족적인 우아함이 있’기를 바랬지만, 이 바람은 거친 세계 자본주의 속에서 ‘시대착오’적인 무산 계급의 실현 불가능한 대부분의 것들 중 하나에 속한다.

그런데 그 스스로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하지 않는 에드워드 사이드는 아도르노 옆에 서서 시대착오적인 말년의 양식을 보여주었던 예술가들에 대해 분석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저작이 그의 유작이 되었다는 것이며, 그도 죽음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예술가들의 말년 작품들을 연구했다는 점이다.)


이제 말년의 예술과 반대 방향으로 노화의 길에 접어든 현대 음악은 그저 “악보만 복잡할 뿐 사실상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공허하고 들뜬 여행”(아도르노, <<음악에세이>> 중에서)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말년의 양식에는 부르주아의 노화를 두고 보지 않고 계속 거리두기와 망명과 시대착오의 감각 - 말년의 양식은 바로 이런 것들을 표현하고, 더 중요하게는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이를 사용한다 - 을 고집하려는 긴장이 본질적으로 내재해 있다.
- 41쪽

 

아도르노는 일차적으로 에세이스트였고, 에세이란 그에 따르면 “대상 속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것에 관심을 두는” 형식이며, “내밀한 형식적 법칙은 이단이다.” 아도르노의 의미로 볼 때 에세이스트라는 존재는 당대에 유행하는 모든 것에 영원히 맞서 싸우고 화해하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그는 보통 “에세이가 당대에 갖는 의미는 시대착오에 있다”고 말한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도 시대착오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월트 디즈니의 <판타지아>나 호세 이투르비와 오스카 레반트가 출연하여 멋지게 연주하는 할리우드 뮤지컬 등으로 음악 산업이 거대화되어 가는 시대에 여전히 고전 음악을 작곡한 인물이다.
- 141쪽


사이드가 주목하는 말년의 양식은 거리두기, 망명, 시대 착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그는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표범>>과 원작소설인 람페두사의 <<표범>>을 교차시키면서 영화와 소설 사이에서, ‘귀족출신이면서 대단히 시대착오적인 두 인재가 이렇게 소설과 영화에서 모두 커다란 성공을 거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그가 이 책에서 분석하고 있는 대부분의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은 그 당시 충분한 비평적 지지와 (커다란 성공은 아닐지라도)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시대의 흐름과 거리를 두었으며, 혹은 망명을 선택하거나 종종 과거의 양식 속에서 자신의 작품을 창조하였다. 도리어 그들이 받은 비평적 지지와 대중적 인기도 낯선 것에 가깝다.

모더니즘 문학은 조이스와 T.S. 엘리어트 같은 예술가들이 영감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시대를 떠나 신화와 서사시, 고대 종교 의식 같은 옛 형식들로 돌아가려 했다는 점에서 그 자체가 말년의 양식의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모더니즘은 역설적이게도 명칭과 달리 새로움을 내세운 운동이라기보다 늙어감, 종말의 운동이 된 것이다.
- 194쪽


'옛 형식으로 돌아가려는 태도'은 한국의 비평가들이 종종 이야기하는 '조로(早老)'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도리어 늙어가는 예술에 대한 반기에 가깝다. 미술도, 음악도, 문학도 늙어가고 있다. 그것은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는 자괴감이고 새로운 것이 있다고 한들, 우리 삶은 변하지 않는다는 절망에 비롯된 것이다. 이럴 때일 수록 사이드가 말하는 바의 '말년의 양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모차르트는 다 폰테와 함께 작업하면서 속죄나 변명의 기회가 아예 없는 세상, 유일한 법은 방탕함과 조작의 힘으로 표현되는 이동과 불안정이며, 죽음에 의해서만 영원한 안식을 맞이할 수 있는 세상을 제시하려 했는데, 이렇게 잠재적으로 끔찍한 견해에 <코시 판 투테>보다 더 가까이 다가간 작품은 결코 쓰지 못했다. 모차르트가 이 오페라에서 독보적인 솜씨를 발휘하여 이룩한 것은 그토록 사람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음악과 그토록 부주의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이야기의 결합이다.
- 110쪽

로코코 예술가 모차르트의 유쾌하고 발랄한 단음계 속에 숨겨진 음울하고 허무주의적인 세계를 알게 되는 순간, 모차르트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모차르트의 음악이야말로 '말년의 양식'에 속한다. 꼭 장 완트완 와토의 세계처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18세기로 돌아간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18세기 로코코 자체가 바로 '시대착오'적이었기 때문이다. 상승하는 부르조아 계급 앞에서 성직자와 귀족들은 계속 고개를 뒤로 돌리며서 거리를 두고 망명하고 옛 노래만, 옛 문화만 향유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름답지만 우울하고 유쾌하지만 슬픈 예술 양식이 탄생한 것이다.

나는 그동안 내 스스로도 '시대착오'이면서 '시대착오'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만 사용해 왔다. '시대착오'라는 단어에 대한 새로운 의미 하나를 알게 되었고, 그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호소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확인했다.  우리는 이 책에서 많은 예술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말년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문학비평가로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철학, 음악, 문학을 가로지르며 폭 넓고 깊이 있는 비평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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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잠시 그친 비가 다시 내린다. 자기 전에 잠시 가위에 눌렸고 일어나기 전에 잠시 꿈을 꾸었다. 꿈을 꾸면서 울었다. 일요일 낮잠에서도 나는 꿈을 꾸었고, 그 속에서 울고 말았다. 눈물 많은 남자라고 비난할 지 모르겠지만, 꿈을 꾸면서 우는 건 매우 특이하고 낯선 경우다.

당황스러운 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피지 않던 담배를 피우고 진한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음악을 듣는다. 오늘은 여기저기 갈 곳이 많은데, 비가 온다. 좋은 일인가, 아니면 나쁜 일인가.

반젤리스의 73년도 앨범 레코드를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음악을 듣던 시절이 그립다. 하긴 그 시절로 돌아가더라도 결과는 비슷했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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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오래 전에 공저로 미술사 책을 낸 적이 있었다. 다시 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먼저 블로그에 초고 노트를 정리해 올릴 계획이다. 2~3년 하다 보면, 책을 낼 수 있는 모양새를 갖출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Introduction to ‘History of Western Art’


1. 예술(Art)이란 무엇인가?
  art(영어), ars(라틴어), techne(희랍어)

  - 예술의 가치는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 ‘예술의 역사’가 예술 이해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2. 다양한 시대의 미술 작품과 우리들의 감동이 가지는 연관관계
  - 우리는 어떤 작품을 고전이라고 말하는가?
  - 과연 미술교과서는 우리를 감동시키는가?

3. 기술과 예술은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
  - 보이는 것(형태)과 보이지 않는 것(정신)
  - 예술의욕(Kunstwollen)

4. 미술사, 미학, 미술비평은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 미술사: 여러 다양한 역사들 중 하나에 대한 역사
  - 미학: 보이지 않는(추상적인/관념적인) 어떤 것에 대한 탐구
  - 미술비평: 전시되고 있는 작품에 대한 언어(meta-language)

5. 플라톤(Platon)과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os) 
  
 - 플라톤: 변하지 않는 세계에 대한 염원. 이분법적 세계관은 비극적이고 슬픈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함.
 
  - 헤라클레이토스: 이 세상은 변화함. 운동을 긍정. 그러나 그는 거만한 귀족주의자.
 
  - 사상(세계관)과 자신의 삶(혹은 예술작품)은 어떤 관계를 맺는가?

6. 고전적 세계관과 낭만적 세계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7. 서양미술사의 시대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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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연초에 세웠던 대부분의 결심, 계획들이 어긋났다. 아무 것도 된 것이 없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이 되기도 했다. 내가 싫어하는 것들 대부분이 내가 사회생활을 하고 일을 추진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임을 나이가 들어갈수록 새삼스레 느끼고 있다. 사람들은 내가 사회에 잘 적응하고 잘 헤쳐나가는 사람으로 보지만, 도리어 나는 정반대의 사람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어젠 방배동 커피숍에 앉아 여기저기 전화를 하다가, 새로 산 검정색 노트를 꺼내 뭔가 적으려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 문장도 떠오르지 않았다. 최근 책을 전혀 읽지 못했고 글도 쓰지 않았다는 것, 아니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공포와 두려움을 느꼈다.

그럴 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언어 공포증에 대한 얼마간의 위로가 되고, 그녀를 향한 아주 짧은 문장 하나 정도 떠올릴 수 있으리라 아주 오래 전 생각했으나, 이젠 사랑이라는 것도 일종의 감각적 허위이거나 사치가 아닐까 싶다. 언어 공포가 아닌, 나는 사랑 공포증 환자가 되어 가는 걸까.

<<오리엔탈리즘>>으로 잘 알려진 에드워드 사이드는, 실은 20세기 후반 손에 꼽히는 문학/예술 비평가이다. 최근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그의 책 몇 권은 한국의 문화 예술 관련 비평가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수 있을 듯 싶다. 어제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뒤적거린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를 읽어보면, 군데군데에서 그의 박학함과 통찰력을 빛난다. 이 책은 예술가가 늙어 죽기 전 발표하는 작품들이 가지는 일련의 양식적 특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나도 이런 비평적 기획 몇 가지를 가지고 있다. 아마 내가 계속 진학해 공부를 했다면, 그 중의 몇 개의 비평문을 작성했을 것이고, 어느 정도 필명도 얻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유약하면서, 터무니없는 언어적 욕심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늘 밥벌이를 걱정해야 하는 이에게 비평 언어는 얇은 영혼을 아프게 찌르고 도려내는 화살촉 같은 것이다.

내가 내 예상보다 빨리 은퇴하게 된다면,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년성에 주목했듯이 처녀성에 주목하고 싶다. 위대한 작가들의 처녀작에서부터 미술가, 음악가, 그리고 어떤 양식이나 장르의 시작 단계들이 가지는 공통된 양식적 특성,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영혼과 육체에, 그리고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분석해내고 싶다.

늦은 봄, 무더위 속에서 햇살은 투명하기만 하다. 이런 날, 나는 뜬금없는 슬픔, 혹은 우울함, 또는 절벽을 향해 떨어지는 유쾌함을 느끼곤 한다. 미켈란젤리의 피아노 소리가 조금의 위안이 되는 늦은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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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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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솔직히 어떻게 하루가 가는지 조차 모른다. 세상은 촛불 때문에 흥분하고 아파하고 그러는데, 나는 7월말 Art Fair 행사 때문에 정신이 없다. Art Fair는 일반적으로 Gallery들이 참가, 미술 작품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행사를 뜻한다. Art Fair는 Art Cologne가 그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Artist들이 참가하는 Art Fair도 있다. 예술가들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지는 전시는 많다. 이를 살롱전이라고도 하고 국내에서는 부스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KASF 2008은 올해 처음 하는 행사이다. 작가들의 관심이나 호응이 높고 기업 후원도 늘어나고 있다. 전체 프로그램을 설계 중이고 인터파크에 예매 페이지도 시작할 예정으로 있다. 주위의 선후배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아, 은근 기대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번 KASF 2008 행사에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빠듯한 재정에, 바쁜 일정에, 조금만 여유를 부리다간 금방 일이 밀려버린다. 사람도 많이 만나고 전화도 많이 하고 이런저런 문서작업도 한다. 직원을 뽑아야 하는데, 뽑을 시간조차 없으니, 난리도 아니다.

뭔가 나에게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혹시 주위에 참가할 예술가가 있다면, 추천을. (자세한 정보는 www.kasf.co.kr )
그리고 초대장이 필요한 분께서는 메일을. 초대장은 한정 수량이므로 이웃 우선임을 이해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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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그림과 함께 읽는 서양 문화의 역사 2 - 6점
로버트 램 지음, 이희재 옮김/사군자


깔끔하게 요약된 이 책은 혼자 읽기에는 다소 적당하지 않다. 나같은 독자는 필요한 부분만 읽으면 될 것이고 일반 독자에게는 다소 많은 정보에 비해 짧은 설명이 서양 문화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에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내가 빠져든 서양 문화사는 너무 흥미진진하고 때로는 가슴 아프고 현대 사회나 문화에 대해 깊은 이해와 통찰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이에 로버트 램의 이 시리즈는 혼자 읽기 보다는 대학 교양 수업의 교재로 적당하다.

'후기 중세: 확장과 종합'라는 챕터 제목을 단어 그대로 이해하면 일종의 발전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문화사의 측면에서 보자면, '종교의 위축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심리적 보상으로서의 확장과 종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후기 중세에 있어, 심리적 보상은 크게 문화예술의 측면(고딕 양식과 초기 르네상스)와 도시 자본주의의 시작을 들 수 있다. 이 둘의 관계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표면상으로는 서로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서로 협력하는 관계이며, 반대로 이 둘의 협력이 종교 권력의 약화로 이어진다. 실은 중세를 지배했던 종교의 어쩔 수 없는 귀결이 이 두 가지 측면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여러 사실/정보들의 평면적 나열에 그치며 깊이 있는 설명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장점은 있다. 이 평면적 나열이 역사, 미술, 건축, 음악, 무용, 문학에 걸쳐 있으며, 매우 잘 요약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강의 교재(이 책의 내용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강사나 이에 도전해 볼 강사가 있다면)으로는 매우 좋은 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 독자가 혼자 읽기에는 적당하지 않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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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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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a Kim: On-Air
로댕갤러리


사진이 무엇일까. 그렇다면 사진에 대한 글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내가 예술에 대한 글을 쓰지 않는 순간까지 나를 괴롭힐 것이다.)

어느 화창한 봄날, 미래에 대한 불안과 예술에 대한 사랑, 또는 호기심을 데리고 찾아간 로댕갤러리 안에서 나는 (현대)사진이 표현할 수 있는 바의 어느 극점을 발견하였다. 김아타의 이전 작업들, 뮤지엄 프로젝트나 해체 시리즈, 그 외 인물 사진 시리즈를 보았지만 내 시선을 끌지 못했다. 분명 그 때도 그의 작업들은 비평적 지지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사진 속에서 그의 카메라가 가진 즉물적이며 파괴적인 속성이 싫었다. 나는 좀더 우아한 방식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사진들은 피사체를 즉물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아픈 사진들이었고 필름에 옮겨진 피사체나 그 피사체를 바라보는 관객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오직 사진만 존재했고 사진 속의 세계가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사진 속의 사람들은 박제된 동물처럼, 혹은 어떤 인위적 목적에 의해 조장되어진 사물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카메라가 가지는 폭력적 속성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로댕갤러리에서 본 그의 최근 작업들은 놀라웠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의 이전 작업들과 온-에어 시리즈와의 연관관계를 선명하게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이전의 작품들에 대한 내 반감과 온-에어 시리즈에 대한 감탄은 선명한 금을 그으며 내 안에서 서로 대비되었다.

그리고 로댕갤러리의 전시는 끝났고 이 글은 어떻게든 정리해야만 하는 내 습성에 의해 씌어지는 것이지, 김아타 사진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나 예리한 비평적 접근은 아니다. 도리어 찬사에 가깝다. 정말 온에어 시리즈는 대단했다. 시간과 운동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이나 조망이 카메라라는 매체를 통해 아주 탁월하고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에 찬탄을 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 철학이 운동을 부정하고 정지만을 추구했던 것은 운동은 시간의 축에 따라 이루어지며, 그것은 끝내는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어떤 종말, 어떤 불안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점에서 우리의 삶도 그렇다. 플라톤이 영원한 세계를 이야기하였을 때, 그것은 우리 삶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어떤 불안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 불안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추동시키는 원동력이었다. (그리스 예술과 철학이 우울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김아타의 온-에어 속에서 시간과 운동은 매력적인 소재이면서 우리의 삶,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의 본질적 구성에 대한 어떤 통찰을 전해주는 듯하다. 그것은 바로 시간과 운동을 넘어서 있는 어떤 공간에 대한 것이다. 그것인 일종의 멸망이고 어떤 폐허이며, 보는 이들에게 무한한 노스탤지어를 자아낸다.

회화가 추구하는 평면성이 시간을 무시하고 공간성만을 추구하는 어떤 것이라면, 김아타의 카메라는 시간을 받아들이면서도 변하지 않는 어떤 공간성을 추구하고 그것일 발견해낸다는 점에서 놀랍기만 할 뿐이었다. 올해 상반기 보았던 여러 전시들 중에서 최고의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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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쌓인 스트레스 탓일까, 아니면 과도한 음주 탓일까, 아니면 나에게 영원히 무심할 것같은 저 별빛, 혹은 날 스쳐지나가면서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봄처녀의 하얀 볼, 어쩌면 아무런 이유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오후 늦게 갑자기 찾아온 복통은 먼저 수면을 방해했고 사람들 앞에서 가끔 이마를 찌푸리게 만들었으며 끊임없이 방바닥과 화장실을 오가게 만들었다. 처음 간 약국에선 소화제와 진통제를 주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 다음 간 약국에서는 좀 강한 소화제와 위 경련을 위한 진통제(?)를 주었다. 병원에 가는 것이 정석이지만, 병원에 갈 시간 조차 없었다.

다행히 주말을 지나자 통증을 거의 사라졌다. 대신 아픈 동안 거의 먹지 못한 탓에 현기증이 조금 있을 뿐이다.

내가 아픈 동안, 이 나라도 아팠다. 아주 낮은 투표율로 당선된 대통령과 그의 내각은, 그리고 10년 야당 생활을 청산하고 여당이 된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문제는 그들이 내놓는 정책이나 의사결정이 폭넓은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일종의 독단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픈 동안, 새벽 라디오를 통해 시위 현장 소식을 들었고 다음 날 TV를 보면서 상황이 심각했음을 알게 되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국민들은 2008년을 살고 있는데,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1980년대 중반을 살고 있다는 확신을 들게 만들었다. 더구나 그들이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 스타일은 완전히 1970년대나 80년대식이다. 그런데 더 끔찍한 것은 이들과 함께 앞으로 5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국민들이 얼마나 자주 촛불을 들어, 그들에게 '우리는 지금 2008년을 살고 있어요'라고 가르쳐줘야 할 것인가.

비가 많이 내린다. 우산을 들고 나가지 않은 탓에, 비에 흠뻑 젖었다. 아직 몸이 좋지 않다. 이럴 때,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느낀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혼자 산 사람들을 떠올린다. 아니면 지금도 혼자 살고 있는 미셸 투르니에를... 언제쯤 내 삶은 우아해질 것인가. 이런 날씨에, 바이올린 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간 따뜻하게 위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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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