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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rt Summer Festival 2008
국내 Art Fair의 새로운 장을 연다


최근 몇 년 간 한국 미술 시장은 보기 드문 성장을 구가하였다. 많은 작가들의 작품들이 거래되었고 예술옥션(Art Auction)회사가 주목의 대상이 되었으며 많은 갤러리들이 국내 시장을 벗어나 베이징, 상하이, 뉴욕 등지로 진출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이 한국 미술을 풍성하게 만드는 모든 작가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이는 미술 작품을 구입하려는 일반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이유로 인해, 오는 31일(목)부터 서울 대치동 학여울역 SETEC(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2008 코리아 아트 섬머 페스티벌(Korea Art Summer Festival 2008)’이 새삼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올해 첫 발을 내딛는 ‘2008 코리아 아트 섬머 페스티벌’은 한국 미술의 지나친 상업화와 고급화를 멀리하면서 작가와 애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즐겁게 미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경제적인 가격으로 좋아하는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연일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대형 아트페어들은 많은 돈을 남길 수 있는 (요즘 인기 있는 중국작가나 몇몇 유명 외국작가)작품들에게만 집중하고 있다. 미술에 대한 사랑의 순수함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투자와 수익률만이 전부인 아트페어가 되어가고 관람객들에게 이를 유도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국 미술시장이 성장함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예술가(특히 국내작가)들은 이러한 성장의 물결 속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코리아 아트 섬머 페스티벌은 일반인들이 미술작품투자자가 되기 전에 미술애호가(Art Lover)가 되기 바라고 이를 유도하기 위해 준비되었다. 그래서 자본(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화랑과 아트페어 주최 측)이 중심이 되는 미술시장이 아닌 예술가가 중심이 되어 미술문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예술가 중심의 Art Fair’로 기획되었고 미술에 대해 전문적인 식견이 없어도 편안하게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수 십 명의 전시 설명자들이 배치하여 관람객들에게 작품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작가들의 참가 비용을 최대한 낮추었으며, 작품이 판매되었을 때의 발생 수익을 모두 작가들이 소유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정책으로 경쟁력 있는 작품 가격을 만들었으며 작품을 관심 있는 관람객들이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였다.

오는 31일(목)부터 8월 4일(월)까지 열리는 2008 코리아 아트 섬머 페스티벌은 일반 관람객들에게는 미술 감상과 작품 구매가 사치가 아니라, 미술을 사랑하고 아끼는 행위임을 알릴 수 있는 보기 드문 자리가 될 것이다.


Korea Art Summer Festival 2008의 특징
-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참가비
- 천 여 명의 컬렉터와 아트딜러들와의 교류
- 작품판매에 따른 모든 수익이 작가에게 귀속
- 상세한 작품설명과 소개를 위해 행사장 곳곳에 전시설명자(AF Coordinator)를 배치하여 보다 즐거운 전시 관람이 되도록 함. 


행사 개요
- 명칭: Korea Art Summer Festival 2008 (KASF 2008)
- 일시: 2008년 7월 31일(목) ~ 8월 4일(월)
- 참여작가: 엄선된 200여명의 국내작가 작품 2000여 점 전시
(평면작업 작가:170 명, 입체작업 작가: 60명)
- 장소: SETEC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타) 전관 -서울 대치동 학여울역
- 오픈닝 초대일시: 7월 31일 (목) 오전 11시


Korea Art Summer Festival 2008
주최. ㈜경향전람
주관. ㈜경향전람, ㈜코에듀
후원. SK텔레콤, 페라리/마세라티공식수입원 fmk CORP, 임페리얼 세부 팰리스 리조트, 에이스침대,노블레스미디어인터내셔날, 아트온티브, 구띠에커피, 아트뉴스, 동아TV, 하나은행, BAOK
문의. 02-796-0567  KASF 2008 조직위원회   
www.kasf.co.kr   info@kasf.co.kr


주요 작가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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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 빛-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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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배, 꿈꾸는 비비, 장지 위에 채색, 112 x 145.5cm,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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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은, Untitled 6, 장지/청먹, 60x60cm,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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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 김옥진, 명량문소견鳴粱門所見, 화선지/수묵담채, 135x136cm,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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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혜, A rainy day, 91.7 x 61cm, oil on linen,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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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미, 바라보기-나비, mixed media, 146 x 9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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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상, 목어(木魚), 장지(長紙).토분(土粉).석채(石彩).분채(粉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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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실, Solitude Standing - work no.4, fired clay_ glazed, 168x30cm,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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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일을 하다가 문득 지난 일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신비로왔다. 내가 사랑하는 예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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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죽이지 마세요. 나는 사랑에 빠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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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조각은 공간을 새롭게 하면서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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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살아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내 심장이 뛰고 내 혈관에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이성을 만나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고 있을 때,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걸까? 그렇다면 살아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의 인생 전체는 일종의 가상이거나 허위일 지도 모른다. 우리의 인생, 그리고 그 인생을 둘러싼 모든 사건들이 시뮬라크르일 지도, 나란 존재하지 않고 나란 누군가의 눈에 비친, 누군가의 생각과 언어에 의해 형성된 어떤 픽션일 지도 모른다. 더 절망적인 사실은 내 것이 아닌 인생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늘 내가 생각했던 것은 어긋나고 내가 한 말은 오해되고 내 글은 무시되고, 내 사랑이 번번히 막다른 골목의 시궁창에 빠지게 될 지라도, 나는 내 인생을, 내 존재를 어떻게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내가 자살하더라도 나라는 가상의 존재는 세상 어딘가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르 클레지오의 소설의 한 문장 처럼, 내가 죽고 내가 알던 모든 사람들이 죽었을 때야 비로소 무로 될 수 있는 것이다.

도대체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이 가상이든, 허위이든, 살아있는 자는 그 살아있음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 로만 오팔카의 작업이 날 감동시키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그의 행위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나는 살아있다. 나는 여기에 있었고, 여기에서 숫자를 적고 있었다.' 시간에 대한 탐구는 곧바로 자기 존재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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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오팔카는 숫자를 캔버스에 적는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국내의 몇몇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사간동 학고재에서 전시되기도 한 세계적인 작가이다. '숫자를 적는 행위' 자체로 주목을 받았지만, 실은 단조로운 색채와 병렬적으로 이어져 있는 숫자들의 나열이 가지는 조형적 아름다움도 무시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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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작품과 더불어 그는 자신의 사진을 찍는다. 일련의 사진들은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면서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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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대한 탐구는 현대 미술의 강박증과도 같아 보인다. 하지만 거대해진 세계 앞에서 한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혹시 지하철 속에서 이 무수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지? '개인주의'가 유행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익명성 속에 자신의 몸을 숨긴 개인일 뿐이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결국 우리는 실패할 것이고 그렇게 죽을 것이다. 현대의 비관주의는 자신의 개별적이고 독창적인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즉물적인 방식을 택하도록 강요한다. 그래서 그 속에는 자신의 감정이나 주장, 일상이 드러나지 않고 객관적인 소재를 택해 '그저 (살아)있었음'을 표현하도록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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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에 온 카와라는 로만 오팔카와 비슷한 지점에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의 방식은 더 극단적이고 파괴적이다. 그는 날짜를 적는다. 하나의 캔버스에 0시부터 24시까지, 꼬박 하루동안 하나의 날짜 작품을 완성시킨다. 완성시키지 못할 때는 이를 파기한다. 그리고 그 날의 신문을 아래에 배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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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재미있는 것은 매일 엽서를 보낸다는 것이다. 엽서의 내용은 언제나 정해져 있다. 'I GOT UP AT 11.10 A.M'

로만 오팔카가 자신의 (시간 위의) 삶을 캔버스와 사진 속으로 넣는다면, 그래서 그 순간만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증명한다면, 온 카와라는 일정 시간 동안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통보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에서 한 인물이 이야기하듯, "천만에! 모두 꾸며낸거야. ... ... 그는 존재하지 않아. 그가 하는 행동도 말도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아. ... ..."라고 하여도 무방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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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로 제한된 작업 스타일은 '위태위태한 현대인들의 존재 상실의 위기감'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일 지도 모른다. 실은 우리들은 이미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 자신의 개성이나 독창성 따위는 날조된 것에 가깝다. 어쩌면 라크스의 말대로 우리의 생각이나 행동 패턴은 우리의 물적 토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실제 우리와는 무관한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그렇다면 과연 나란 무엇이고 살아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혹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맞부딪혀야 할 상대는 시간(Tim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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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Million Years  
On Kawara, 1999
2 volumes, each 2.012 pgs., leatherbound  
(EDITION/SET: 500 num & 60 num. & sign.)
h: 14.5 x w: 10.5 cm / h: 5.7 x w: 4.1 in  
http://www.artnet.com/artwork/424415142/424301160/one-million-year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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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한 점 바람이 그리운 계절이 밀려왔다. 때이른 더위만큼 곤혹스러운 것도 없다. 달구어진 아스팔트 위에 서 있으면 구두 밑창이 녹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렇게 내 인생도 녹았으면 좋겠다. 생의 열기에 녹아 사라졌으면 좋겠다. 기화되어 저 먼 하늘 높은 곳으로 날아갔으면 좋겠다.

낯선 더위 속에서, 문득 내 인생이 참 낯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그 낯설음은 버터플라이효과처럼 예상치 못한 규모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점이라도 봐야 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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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토요일 동네 슈퍼마켓에 갔다가 미국산 소고기를 파는 모습을 보았다. 그 사이를 오가는 분주한 표정의 아줌마, 아저씨. 내 장바구니 속에는 온통 라면이나 냉동만두 같은 것들 뿐이었다. 슬픔이 밀려들었다. 그 동안 여러 번 촛불에 대한 내 글을 적고 싶었지만, 적지 못했다. 지금도 적지 못하겠다.

촛불을 만든 책임있는 정부 관계자들은 잘못된 절차로 이루어진 협상에 대한 국민 반발을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력함을 보면서, 악화되는 세계 경제 상황에 대해 적절한 대처 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경제 관료들을 보면서, 이 나라의 불운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도 잘 될 것이라 믿고 싶지만, 청와대나 정부/여당은 너무 안일한 현실 인식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촛불에 대해 긴 글을 적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모든 일들이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이 나라 사람들 많이 성숙했다. 늘 시끄러운 이 나라, 그래서 살아있는 나라다. Dynamic Korea, Figh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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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TAG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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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ardo da Vinci
Mona Lisa
1503 - 1505, Oil on cottonwood, 76.8 x 53 cm, Musee du Louv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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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ardo da Vinci
Mona Lisa (Det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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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vard Munch
Puberty
1895; Oil on canvas, 150 x 110 cm (59 5/8 x 43 1/4 in); Nasjonalgalleriet (National Gallery), Os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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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zio Raffaello
The School of Athens
1509, Fresco, width at the base 770 cm, Stanza della Segnatura, Palazzi Pontifici, Vatican


A.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나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리고 실제 작품을 보고 놀라워한다. 하지만 이런 가정을 해보자. 미술사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하는 어느 현대인이 난생 처음 <모나리자>나 <아테네학당>을 보았다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리고 이 두 작품과 함께 뭉크의 <사춘기>를 보여준다면. 한 번 이런 상황을 상상해보자.

1. ‘현대인’은 누구인가? 남편과 아이를 회사로, 학교로 보내고 아파트에 홀로 남은 중년의 여성. 또는 밀린 일들을 처리하다가 상사의 눈치를 피해 잠시 건물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는 회사원. 혹은 매번 입사원서에서 떨어지는 20대. 우리에게 ‘현대인’이라는 어떤 모습인가? 우리에게 ‘현대’란 과연 어떤 시대인가? 그것은 좋은 시대인가, 나쁜 시대인가?

2. 현대인은 <모나리자>를 보고, <아테네학당>을 보면서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마찬가지의 이유로 <사춘기>를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리어 <사춘기>를 싫어할 지도.

3.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들이 있다.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이 있다. 대부분의 뛰어난 현(근)대 작품들은 보는 이를 부담스럽고 고통스럽게 한다. 하지만 위대한 고전 작품은 아니다. 그래서 고전 작품을 위대한 것이고 아프게 하는 현(근)대 작품은 그렇지 않은 것일까?

4. 그렇다면 어느 작품이 우리를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일까? 마음이 흔들리게 하고 가슴을 아프게 하는 감동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B.
‘고전Classic’이라는 단어는 로마 시민 5계급 중 가장 높은 계급을 의미하는 ‘Classis’에서 유래하였다. 이 단어의 형용사형인 ‘Classicus’는 높은 수준의 작가나 그의 작품을 뜻하였으며 이것이 굳혀져 ‘고전Classic’이 되었다. 그리고 13세기, 14세기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들이 잃어버렸던, 잊고 지냈던 그리스, 로마 문명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기 시작한다.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단어가 뜻하는 ‘재탄생’은 바로 그리스, 로마의 재탄생을 의미했다. ‘고전’이라는 단어가 요즘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때였다. 그래서 그리스적이거나 로마적인 양식을 그 당시의 이탈리아 사람들은 ‘고전적’이라고 표현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예술의 역사에서 ‘고전주의’라고 하였을 때, 그리스 고전 시대, 기원전 4세기 - 5세기의 작품들은 포함되나, 그리스, 로마의 다른 시대의 작품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였을 때의 ‘고전’이라는 단어가 미술사에서는 그 쓰임을 다르다. 높은 작품성을 가지고 있는 오래된 과거의 작품들을 모두 ‘고전’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예술사에서 ‘고전주의’는 구성이나 색채 측면에서의 양식이면서 동시에 정신적 양식(태도)를 의미한다. 그래서 ‘르네상스 고전주의’나 ‘신고전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며, 일부 모더니즘 양식의 작품을 두고 ‘고전적 현대’라고 하는 것이다.

고전주의의 양식적 특징은 낭만주의와의 대비 속에서 선명하게 이해될 수 있다.

C.
모든 고전 작품들은 감동적인가? <모나리자>나 <아테네학당>이 보는 이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가? 예술에 대한 지식을 쌓기 전에 예술 작품을 보고 감동받을 수 있는 태도를 먼저 가져야 한다. 가장 좋은 태도는 <모나리자>를 보고 손을 떨면서 감동 받았을 그 당시의 이탈리아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이탈리아 사람이 되지 않는 이상, 이 작품들이 현대인에게 현대의 다른 작품들이 주는 바의 그런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전혀 다른 시대의, 전혀 다른 영혼이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고전 작품에 대한 지식, 모나리자 부인이 누구이며, 아테네 학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안다고 해서 이 두 작품이 숨기고 있는 르네상스 고전주의의 정신적 태도를 알지 못할 것이며, 왜 이 두 작품이 위대한 고전 작품으로 남아있는지를 알지 못할 것이다. 도리어 뭉크의 <사춘기>를 보면서 마음 아파하고 왜, 어떻게 뭉크의 작품이 다 빈치나 라파엘로의 작품과 다른가를 알고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예술 작품에 있어서 ‘변하지 않는 교과서’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그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떤 작품이나 법칙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우리들의 마음이 될 것이다.

예술의 역사를 공부하기 전에 먼저 익혀야 할 것은 현대의 무수한 작품들을 보고 흔들거리는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하우저의 말대로 ‘감동을 주는 한, 그것이 바로 현대 작품’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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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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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 Hopper
Summer Interior
1909, Oil on canvas, 24 x 29 inches,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따갑고 건조한 여름 햇살이 방 한 가운데로 내리꽂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세울 정신적 의지는 지난 밤에 사라져버렸다. 꿈일 지도 모른다. 아니면 환상이거나. 만일의 경우 그것은 최악의 현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나가버린 것들이며 앞으로 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이다. 너무 가지런한 실내가 도리어 비현실적이다.

뜨거운 여름날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은 비현실적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자신에게 오래 전부터 빈혈이 있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잠시 후 세찬 소나기가 달구어진 대지를 식힐 것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두렵다. 이 순간이 지나는 것이.

교묘하게 환상과 현실 사이에 육체를 걸치고 있는 그녀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딱딱한 유화 물감에 자신의 영혼을 붙이고 환상도 아니고 현실도 아닌 어느 공간 속으로 들어가, 멈추어 버렸다. 어쩌면 시간의 틈새로 들어가, 공간의 틈새로 들어가 영원히 자신을 격리시키는 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바람직한 삶이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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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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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