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 11

세월호와 댓글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고 난 다음, 우리가 정확하게 아는 사실은 몇 가지 되지 않는다. 간단하게 이야기해서 우리에겐 구조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고, 그 전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끔 할 수 있었다. 모든 것들 하나하나가 잘못 엮어져, 차마 말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아이들은, 그리고 승객들은 전화통화를 하다가, 구조를 기다리다가,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죽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고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해서 이 나라는 한 걸음도 앞으로 가지 못했다. 유가족들이 아니더라도, 아이를 가진,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일이 왜 일어났고, 왜 구조 작업은 그 따위로 진행되었으며, 구조 과정 속에서 일어난 어수선하고 말도 안 되는 상황들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까?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

오르세 미술관 전 - 인상주의, 그 빛을 넘어, 국립중앙박물관, 2014.5.3 - 8.31

오르세 미술관 전 - 인상주의, 그 빛을 넘어국립중앙박물관, 2014.5.3 - 8. 31 몇 해 전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가서 놀라웠던 건, 1층에 놓인 거대한 작품들 - 제롬이나 부게로 같은 화가들이 그린 - 을 보면서 참 식상하다는 느낌과는 대조적으로 4층(?)의 낮은 천장 아래 놓인 작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 앞에서 전율같은 감동을 느껴졌을 때였다. 어쩌면 예상되었을 법한 일일 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예상했던 범위 이상이었고 그 놀라움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오르세미술관에서의 그 경험에 비한다면,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는 다소 어수선하고 산만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급하게 보고 나올 수 밖에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 집중하긴 어려웠다. 그리고 오늘 도록을 꼼꼼히 읽으면서..

빌 비올라 Bill Viola, 그리고 예술로서의 영화, 혹은 비디오 아트

"잠과 깨어남 사이의 장소, 의식과 무의식의 접경 지대, 정상적인 구별과 확실한 경계가 와해되어 현실과 상상의 경계선과 대상과 연상의 경계선이 희미해지는 곳" - 빌 비올라, 1994년 백남준의 어시스턴트로 시작해, 비디오 아트의 새로운 장을 열어보인 빌 비올라Bill Viola. 그의 작품은 의외로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실은 체력까지도 요하는지도... 갤러리에서 전시된 그의 작품들을 보기 위해선 꽤 많은 시간 서 있어야 했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비디오라는 매체가 가지는 물질성에 주목한다면(동양적 시선에서 서구적 확대로 나아갔다면), 빌 비올라는 비디오라는 영상이 가지는 추상성에 주목한다(서구적 시선에서 동양적 탐구로 나아간다). 그는 삶과 죽음에 대해 묻고 시간과 사건(혹은 찰라/순간)의 지속..

젖은 운동화 속의 목요일

새벽부터 내린 비는 아침이 되자, 더 세차졌다. 어둠이 내려앉은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비에 젖으면, ... 내 발이, 내 몸이, 내 얼굴이, 내 가슴이 젖으면 안 될 것같아, 운동화를 꺼내 신고, 큰 우산을 찾아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출근하는 목요일 아침, 길바닥에 고인 빗물들이 나를 향해 날아올랐다. 땅에서 허공으로, 대기로, 하늘로, 우주로 날아오르는 빗물 방울들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는 또다른 빗줄기에 갇혀 마음의 자유를 잃어갔다. 2014년 여름. 출근하자 마자, 전날의 최종 매출을 확인하고, 퇴근할 때 그 날의 최종 매출을 예측하며 사무실을 나간다. 대구에 출마한 김부겸 전 의원이 "출마해본 사람만 알 수 있어요. 지지율 1%를 올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라고 이야..

발튀스 Balthus

발튀스Balthus의 작품을 본다. 어떤 긴장이 느껴지지만, 내가 선호하는 긴장은 아니다. 나는 그의 작품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는 나는 취향이 분명한 사람이다. 성적인 압박으로 인한 기괴함이 화폭에 가득 묻어나고 분석가들에게 흥미로운 소재를 던져주겠지만, 딱 거기까지인 듯 싶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발튀스에 열광한다. 내가 모르는(알 턱도 없는) 작가인 탓에 블로그에 몇 편의 작품을 올리고 기억해둔다.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다시 적을 수 있겠지. The Golden YearsBalthus,1945199 x 148 cm, oil on canvas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 Washington, DC, USA The Fear of Ghosts Balthu..

평등이 답이다 - 리처드 윌킨슨의 견해

"평등과 성장의 관계에 대한 상당수 실증적 연구에 따르면, 보다 평등한 게 성장에도 좋다. 왜냐면 평등은 사회적 응집성(social cohesion)을 향상시켜 경제학자들이 중시하는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이 줄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가 평등할수록 '공공 정신(public spirit)'이 살아있다. 공공 정신이 살아있으면 사람들은 보다 기꺼이 다른 사람들을 돕는다. 공공선(common good)을 추구하는 것이다." - 리처드 윌킨슨Richard Wilkinson (영국 노팅엄대 의대 교수) (중앙Sunday 366호 중에서) 이 책을 사서 읽어야겠구나. 평등이 답이다리처드 윌킨슨, 케이트 피킷저 | 전재웅역 | 이후 | 2012.02.15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

그룹드Grouped, 세상을 연결하는 관계의 비밀, 폴 아담스(지음)

그룹드Grouped - 세상을 연결하는 관계의 비밀 폴 아담스(지음), 이지선(옮김), 에이콘출판 우리는 이제 기업들에게서도 '영향력 그룹'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우리의 마케팅 활동을 친한 친구들로 연결된 작은 그룹들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다.- 36쪽 이제는 짧지만, 무척 흥미진진하고 매우 시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디지털 마케팅, 웹 서비스에 관심 있는 이라면 필독서에 가깝다. 2012년에 출판된 책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는 점에서 다소 후회스러울 정도랄까. 어쩌면 저자의 주장, 사회적/개인적 관계 속에서 정보를 찾고 교감을 하며 의사결정하는 시대가 도래 했음을 알리기 위해 폴 아담스는 여기에 맞는 근거들만 찾아 스크랩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즉 이 책에서 펼치..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와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카메라 루시다는 하나의 광학 장치이며, 카메라 옵스큐라는 일종의 광학 현상을 이야기한다. 원래 이 글은 좀 길고 자세하게 적을 생각이었으나, 그럴 시간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 터라, 대강 정리해보기로 한다. 카메라 루시다는 광학자이면서 물리학자, 화학자 였던 윌리엄 하이드 울러스턴(William Hyde Wollaston)이 발명한 광학 장치이다. 일종의 드로잉 보조 도구로, 사진이 발명되기 전까지 무척 활발하게 사용되었던 장치다. 프리즘에 135도 각도의 반사면 두 개를 설치하여 비치는 이미지를 관찰자의 눈에 전달하는 장치였다. 출처: 위키피디아 실제로 그림의 초안을 잡거나 디테일한 부분들을 보다 정확하게 잡아내기 위해 자주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일종의 도구인지라, 어느 정도의 연습과 숙련이 필요했..

진폭, 이우환

진폭 자코메티가 모델에게 육박해가면, 동시에 모델 또한 자코메티에게 닥쳐온다. 자코메티는 자꾸자꾸 내쳐 가 이윽고 모델 너머까지 나아간다. 그때 모델 또한 점점 돌진해서, 자코메티를 지나 훨씬 이쪽으로까지 전진해 버린다. 도전해가는 힘과 덤벼오는 힘이 세차게 겹쳐지는 가운데, 두 개의 대상은 깎여나가, 마침내 하나의 뼈가 되어남겨진다. 이렇게 해서 생긴 대립의 축은, 자코메티를 넘고 모델을 넘어서 -. 그것은 끊임없이 커다란 진폭을 불러일으키고, 스스로를 공간의 펼쳐짐 속에 숨겨 지운다. 자코메티는 이것을 거리의 절대성이라 일컬었다. 이러한 시선을 따른다면, 본다는 것은 대상과 자신의 치열한 사랑의 운동이 겹치어, 드디어 투명한 여백이 된다는 것인가. - 이우환, 시집 중에서 자코메티, Three Men..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 보르헤스 시선,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보르헤스(지음), 우석균(옮김), 민음사 그의 소설들을 떠올린다면, 보르헤스의 시도 딱딱하고 건조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너무 지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수수께끼처럼 펼쳐지지 않을까 추측한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도리어 소설가 보르헤스는 잊고 시인 보르헤스만 기억에 담아두게 될 터이다. 그렇게 몇 주 보르헤스의 시집을 읽었고 몇몇 시 구절들을 기억하게 된다. 시집 읽는 사람이 드문 어느 여름날, 세상은 저주스럽고 슬픔은 가시질 않는다. 행동이 필요한 지금, 어쩔 수 없이 반성부터 하게 되는 현실을, 미래보다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탓하게 되는 상황 앞에서 보르헤스가 아르헨티나 사람이라는 것이 새삼스럽기만 하다. (...)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거리들은어느덧 내 영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