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13 2

물, 프랑시스 퐁주

물 프랑시스 퐁주 나보다 더 낮게, 언제나 나보다 더 낮게 물이 있다. 언제나 나는 눈을 내리깔아야 물을 본다. 땅바닥처럼, 땅바닥의 한 부분처럼, 땅바닥의 변형처럼. 물은 희고 반짝이며, 형태 없고 신선하며, 수동적이라 못 버리는 한 가지 아집이라면 그것은 중력. 그 아집 못 버려 온갖 비상수단 다 쓰니 감아 돌고 꿰뚫고 잠식하고 침투한다. 그 내면에서도 그 아집은 또한 작용하여 물은 끊임없이 무너지고, 순간순간 제 형상을 버리고, 오직 바라는 것은 저자세, 오체투지의 수도사들처럼 시체가 다 되어 땅바닥에 배를 깔고 넙죽이 엎드린다. 언제나 더 낮게, 이것이 물의 좌우명. '향상(向上)'의 반대. (역: 김화영) 서가에서 책을 꺼내 읽는다. 오랜만에 읽는 이름. 프랑시스 퐁주. 물에 대한 시다. 물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