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 3

게리 위노그랜드 Garry Winogrand

게리 위노그랜드Garry Winogrand(1928 ~ 1984) 현대 도시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르가 있다면, 그건 사진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가장 적절한 작가가 있다면 바로 게리 위노그랜드가 될 터. 예술에서의 모더니즘Modernism은 도시와 함께 시작한다. 보들레르는 근대 도시 파리를 걸어다니며 모더니티를 이야기하고 익명성에 주목했다. 그 도시의 산책자는 파리를 지나 뉴욕에 와 자리잡는다. 거대 도시에서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전화를 거는 사소한 일상도 드라마가 되고 어떤 사건의 시작이거나 종결, 또는 클라이맥스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들이 의미를 가지며 의미들 속에서 한 없이 가벼워진다. 거리에 나서면 발가벗겨지는 기분과 함께 그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희열에 들뜬다. 길을 가..

나는 고故 마티아 파스칼이오, 루이지 피란델로

나는 고故 마티아 파스칼이오 Il fu Mattia Pascal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지음), 이윤희(옮김), 문학과지성사 "예, 그럴 겁니다! 백작은 이른 아침, 정확히 8시 반에 일어났다. ... ... 백작 부인은 목 둘레에 화려한 레이스가 달린 라일락 꽃무늬 드레스를 차려입었다. ... ... 테레지나는 몹시 배가 고팠다. ... ... 루크레지아는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었다. ... ... 오, 세상에!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있습니까? 우리는 한줄기 태양광선을 채찍 삼아 쉼 없이 회전하는 보이지 않는 팽이 위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 연유도 모른 채, 결코 목적지에 도달하지도 못하면서, 우리에게 때로는 더위를 때로는 추위를 선사하고, 혹은 쉰 번쯤 혹은 예순 번쯤 회전한..

비가 오고, 또 오고.

비 온 뒤 땅은 단단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비의 종류에 따라 달라질 게다. 그냥 조용히 반 나절 정도 내리다가 그치는 비라면, 곧이어 햇살이 비친다면, 그 위로 이름 모를 들짐승이 다니고 초록빛 풀들이 자라난다면, 분명 땅은 단단해질 것이다. 하지만 며칠째 쉬지 않고 폭우가 내린다면, 땅은 단단해지는 대신, 패이고 상처 입고 무너질 것이다. 일도 그렇다. 어떤 종류의 일들은 자신을 성장시키지만, 어떤 종류의 일들은 포기하도록 만든다. 바쁜 일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있는 중인데, 마무리도 너무 어렵기만 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