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 6

늦여름 속 추석을 보내고

나이가 들수록 명절 보내기가 더 어려워진다. 내가 그런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그렇게 변해가는지 모르겠지만. 과거는 화석이 되어 이젠 향기마저 풍기지 않고 미래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 끝도 보이지 않는 계곡 사이로 이어진다. 중년이라 그런 건가. 돌파구는 늘 위기에 있다지만, 우리 인생은 늘 위기 위에 있다. 올웨이즈 리스크 모드라고 해야 하나. 음악을 들었지만, 예전같은 감동을 찾기 어려웠다. 이렇게 늙어가는 건가. 가을이 왔다고들 말하지만, 내 마음은 아직 끔찍했던 여름이 이어져, 계속 지치고 땀이 나고 흔들거린다. 그래도, 기어이 가을은 올 것이고, 그래도 나는 나이가 계속 들어갈 것이고, 그래도 내 아이는 계속 자라날 것이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어쩌면 다행한 일인지도 모르겠구나.

가나아트 컬렉션 앤솔러지, 서울시립미술관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 가나아트 컬렉션 앤솔러지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어느 대담에서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과 미술관에 들어가 작품 감상을 하고 나온 후, 거리 가로수 이파리의 색이 달라져 있을 거라고, 세상 풍경이 더 생생해지고 풍요로워졌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미술관에 들어가 작품을 둘러보고 나오는 일상이 우리들의 삶과 얼마나 멀리 동떨어져 있는가를 생각할 때면, 참 서글픈 생각이 든다. 나 또한 일반인들의 그런 일상을 무너뜨리고 미술 - 순수 미술 - 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을 한 때 고민하고 실천하기도 했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한가람미술관에서 가끔, 인상주의전을 하기만 하면, 비싼 입장료를 내고 길게 줄을 서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더 절망..

더 고독했던 때는 없네, 고트프리트 벤

더 고독했던 때는 없네 - 고트프리트 벤 (Gottfried Benn, 1886 ~ 1956) 8월처럼 고독했던 때는 없네성숙의 계절 -, 땅에는붉은, 황금빛 신열(身熱)그런데 그대 정원의 즐거움은 어디에 있는가? 맑은 호수, 부드러운 하늘,깨끗한 밭들은 조용히 빛나는데그대 군림하는 왕국의 개선(凱旋)은,그리고 그 개선의 자국은 어디에 있는가? 모든 것이 행복을 통해 드러나는 곳,술 냄새 속, 물건 소리 속에시선을 나누고, 반지를 나누는 곳에서그대는 행복의 적(敵)인 정신에 몸 두고 있네 지독했던 8월이 가고, 여기저기 긁힌 마음의 가장자리는 찢어진 헝겊으로 잘 덮어두곤 가을 놀이를 시작했다. 하지만 갑작스런 변화는, 몸에 무리를 주기 마련. 노트 정리를 하다가 메모 해 두었던 벤의 시를 읽으며, 문득 ..

디어 클래식, 김순배

디어 클래식 Dear Classic 김순배(지음), 책읽는수요일 저자는 피아니스트다. 그런데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그녀처럼 쉽고 재미있게 글 쓰는 재주는 없는 것같다. 책을 펼치자마자 금세 빨려들어가, 책 중반을 읽고 있는 나를 보며, 클래식 음악을 이렇게 재미있게 풀어내는 저자가 부러웠다(그녀의 아버지는 김현승 시인이다. 시인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건 아닌지..). 내가 모르는 작곡가들과 그들의 음악, 그리고 내가 알고 있으나, 잘 알지 못했던 이들의 음악에 대해 저자는 부드러운 어조로, 깊이 있는 내용까지 언급하며 독자를 안내한다. (내가 얼마 전에 올린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도 이 책에서 읽은 바를 옮긴 것이다) 1966년 초연된 이 작품은 펜데레츠키 특유의 극단적인 실험기법으로 채워져 있었지만..

모차르트와 살리에르

모차르트: 차이데; 아리아, Ruhe Sanft - 펠리시티 롯/ 모차르트: 레퀴엠, K626 - 아카데미 합창단/ 라즐로 헬타이 집에 있는 아마데우스 OST LP를 듣지 않은 지도 몇 년이 지났다. 예전, 2장의 레코드판으로 된 이 앨범을 꺼내 D면 첫 번째로 나오는 이 아리아를 즐겨 들었다. 모차르트는 그냥 천재다. 이 영화는 모차르트를 바라보는 살리에르의 질투이 주 테마다. 그 위로 수놓아지는 음악들. 이 영화의 힘은 대단해서, 많은 사람들은 모차르트를 살리에르가 독살했다거나, 혹은 살리에르의 모차르트에 대한 질투와 증오가 하늘을 찌를듯했다고 믿을 지도 모르겠다. 이 스토리는 애초에 소문으로만 떠돌던(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았으나) 독살설을 푸쉬킨의 라는 짧은 극시로 시작해 피터 쉐퍼(영화 아마데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