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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모신 하미드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The Reluctant Fundamentalist 모신 하미드(지음), 왕은철(옮김), 민음사 대화체로 이루어진 소설은 종종 군더더기가 있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깔끔하다. 이야기하는 사람만 있고 듣는 이는 이야기하는 사람의 대화 속에 등장할 뿐이다. 정치적 논란을 불러올 이야기를 매끄럽게 소화시켰다는 점에서 격찬을 받을 만하다. 하지만 아직 한국은 전 세계 테러 분위기에서 한 발 비켜서 있다. 몇 번의 피해가 있었지만, 이는 전도 지상주의와 경쟁적이고 배타적 신앙심으로 무장한 이들로 인한 것으로 인해, 이슬람 문명에 대해 우리들의 반감은 적다. (특정 종교의 경우에는 이슬람 뿐만 아니라 모든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므로, 이 종교의 문제라고 보는 편이... ) 이 소설은 파키스탄인..

근황

말많던 프로젝트를 끝내고 잠시 쉬고 있다. 마흔이 지난 후, 일만 한 듯 싶다. 한 때 미술계에 발 담근 기억이 아련하기만 하다. 전시를 보러 가는 횟수도 줄었고 미술계 사람을 만나는 일도 드물다. 과정이 어떻든 간에, 결과가 좋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다. 돌이켜보니, 내 잘못도 많은 듯하여 마음이 아프다. 지난 1년 간 대형 SI프로젝트 내 단위시스템 PM 역할을 수행하면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전체 프로젝트 관점에서의 단위 시스템에의 접근, 협업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전략, PM으로서 인력 채용과 관리 등 많은 부분에서 그동안 내 장점으로 부각되었던 것들이 단점으로 드러나 더욱 힘들었다. 잠시 쉬면서 지난 1년을 되새기고 있는데, 쉽지만은 않다.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배워야한다는 건 늘 힘들다. 스스로 ..

현실을 직시하라Confronting Reality, 래리 보시디, 램 차란

현실을 직시하라 Confronting Reality 래리 보시디, 램 차란(지음), 정성묵(옮김), 21세기북스 2004년에 번역 출판된 책을 2016년에서야 읽는다. 인터넷서점에서 찾아보니, 이미 절판되었고 중고서적으로만 구할 수 있다. 이 책보다는 2002년 이 더 유명하고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지만, 이 책은 읽지 못했다. 다만 을 읽은 후, 라는 그들의 전작도 읽고 싶어졌다. 2004년에서 2016년 사이, 비즈니스 환경도 급변했다. 하지만 이 책이 아직도 호소력이 있다는 건, 비즈니스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뜻일 게다. 특히 최근 1년 동안 내가 경험한 것들, 내가 힘들어 했던 것들, 결국 도전했지만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었던 내 역량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되새길 수 있었다. 이 책에서 ..

제대로 실행되는 전략 만들기

요즘같은 시기에 지속적인 경쟁력나 경쟁우위를 이야기하는 건 좀 뒤떨어져보인다. 왜냐면 경쟁우위는 지속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술의 발달 속도가 빨려졌고 핵심 인력의 변동도 심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회사가 가지고 있는 경쟁력이 앞으로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믿는다면 큰 오산이다. 아마 내일 아침 일어나면, 보다 더 나은 기술에, 낮은 가격력으로, 더 뛰어난 디자인으로 경쟁사 우리 고객을 만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맥그래스(Rita Gunther McGrath)의 '일시적 경쟁우위'는 이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2015/06/28 - [책들의 우주/비즈] - 경쟁 우위의 종말 The End of Competitive Advantage 오늘 오랜만에 경영전략과 관련된 ..

히페리온의 노래, J.Ch.F.횔덜린

히페리온의 노래 J. Ch. F. 횔덜린(지음), 송용구(옮김), 고려대 출판부 "우리는 시를 향해 나아가고,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삶이란, 제가 확신하건대 시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시는 낯설지 않으며, 앞으로 우리가 보겠지만 구석에 숨어있습니다. 시는 어느 순간에 우리에게 튀어나올 것입니다." - 보르헤스, 중에서(, 박거용 옮김, 르네상스, 11쪽) 시는 아무래도 원문 그대로 읽어야 제 맛이다. 번역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동일한 단어라고 언어마다 그 어감이나 뉘앙스, 풍기는 멋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글로 옮겨서 밋밋한 시라도 원문으로 읽으면 풍성한 느낌을 주는 시일 수 있다. 몇 해 동안 영시를 읽으면서 배운 바라고 할까. 횔덜린에 대해선 익히 들어왔으나, 그의 시를 제대로 읽은 건 이번..

잠자는 뮤즈, 브랑쿠시Brancusi

출처: http://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488458 잠을 자고 있는 두상이라는 주제에 대해 콘스탄틴 브랑쿠시는 거의 20년 이상 몰두했다. '잠자는 뮤즈'를 구상하고 작업할 때, 그는 근본적인 형태와 단순화된 세부를 위해 개념들(ideas)을 줄여나갔으며, 이를 위해 극적인 요소와 디테일을 피했다. 그는 관성으로 인해 무겁게 내려앉은, 그러면서 평화롭게 쉬는, 바닥에 엎드린 머리의 모습으로, 나른함(languor)의 본질을 만들었다. -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설명을 번역함. * * 저런 잠이라면, 영원할 것만 같다. 1910년, 브랑쿠시는 왜 저런 잠을 꿈꾸었을까. 잠은 죽음과 맞닿아있고 꿈과 연결된다. 삶은 멈추고 운동하는 것들은 모두 사라진다. 네 태양..

자화상, 에두아르 르베

자화상에두아르 르베 Edouard Leve 지음, 정영문 옮김, 은행나무 소설일까? 그냥 일기일까? 자서전일까? 에세이일까? 예술 형식에 대한 구분이 호소력을 가지지 못하는 시대에, 장르를 적는 건 무의미하다. 책 표지에 적힌 '장편소설'이라는 단어가 부적절해보인다. 이 책의 서술, 그것이 진실인지, 허위인지 에두아르 르베를 제외한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심지어 에두아르 르베는 이 짤막한 글 속에서 자신이 여든 다섯 살에 죽을 것임을 예감하지만, 마흔 둘의 나이로 자살하니, 이 책 자체로 일종의 부조리일지도 모른다. 실은 내 일상이, 내 인생이, 이 세상이, 이 우주가 다 부조리하고 무의미하지만, 우리는 죽을 힘을 다해 그걸 부정하고 있지. 이미 죽은 자의 자화상. 서로 연관성 없는 문장들은 병렬적으로..

게리 위노그랜드 Garry Winogrand

게리 위노그랜드Garry Winogrand(1928 ~ 1984) 현대 도시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르가 있다면, 그건 사진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가장 적절한 작가가 있다면 바로 게리 위노그랜드가 될 터. 예술에서의 모더니즘Modernism은 도시와 함께 시작한다. 보들레르는 근대 도시 파리를 걸어다니며 모더니티를 이야기하고 익명성에 주목했다. 그 도시의 산책자는 파리를 지나 뉴욕에 와 자리잡는다. 거대 도시에서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전화를 거는 사소한 일상도 드라마가 되고 어떤 사건의 시작이거나 종결, 또는 클라이맥스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들이 의미를 가지며 의미들 속에서 한 없이 가벼워진다. 거리에 나서면 발가벗겨지는 기분과 함께 그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희열에 들뜬다. 길을 가..

나는 고故 마티아 파스칼이오, 루이지 피란델로

나는 고故 마티아 파스칼이오 Il fu Mattia Pascal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지음), 이윤희(옮김), 문학과지성사 "예, 그럴 겁니다! 백작은 이른 아침, 정확히 8시 반에 일어났다. ... ... 백작 부인은 목 둘레에 화려한 레이스가 달린 라일락 꽃무늬 드레스를 차려입었다. ... ... 테레지나는 몹시 배가 고팠다. ... ... 루크레지아는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었다. ... ... 오, 세상에!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있습니까? 우리는 한줄기 태양광선을 채찍 삼아 쉼 없이 회전하는 보이지 않는 팽이 위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 연유도 모른 채, 결코 목적지에 도달하지도 못하면서, 우리에게 때로는 더위를 때로는 추위를 선사하고, 혹은 쉰 번쯤 혹은 예순 번쯤 회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