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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

걱정은 태산같고 시간은 쏜살같다. 몇 달 사이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일들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쓸쓸하기만 초겨울, 눈발이 날리는 강변 도로를 택시 안에서 잠시 졸았다. 나는 아주 잠깐, 졸면서 기적과도 같이 행복한 꿈을 꾸고 싶었다. 며칠 전 가로수를 찍었다. 무심하게 계절을 보내는 은행나무의 노란 빛깔은 어두워지는 하늘과 차가워진 대기와 묘한 대비를 이루며 시선을 끌어당겼다. 그 가로수 밑에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얇은 몸매의 미니스커트를 입은 처녀가 연신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었다.

페르미나 마르케스, 발레리 라르보

페르미나 마르케스Fermina Marquez발레리 라르보(지음), 정혜용(옮김), 시공사 이라는 평가는 다소 황당해보인다. '20세기 청춘 소설의 효시'라는 뒷표지의 찬사도 오버다. 작고 흥미로운 소설이나, 과도한 찬사는 도리어 이 소설에 대한 쓸데없는 부푼 기대를 만들고, 짧은 독서 뒤의 실망감을 더 크게 만들 뿐이다. 그러니 정직해질 필요가 있겠다. 1911년. 벨 에포크의 파리. 발레리 라르보의 청춘 소설. 밝고 낙관적이었던 시절, 소녀, 소년들이 보여주는 사랑이야기라고 하기엔 왠지 진지하고, 그렇다고 철학적인 소설이라고 하기엔 페르미나 마르케스라는 여주인공에 대한 묘사가 간지럽기만 하다. 조아니의 대사는 장황하기만 하고 산토스도 상남자 스타일로 등장한다.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감미로운 사랑이야기라..

기러기, 메리 올리버

기러기 당신이 꼭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참회를 하며 무릎으로 기어 사막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다만 당신 육체 안에 있는 그 연약한 동물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하라 내게 당신의 상처에 대해 말하라, 그러면 나의 상처에 대해 말하리라.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간다.그러는 사이에도 태양과 비는 풍경을 가로질러 지나간다. 풀밭과 우거진 나무들 위로산과 강 위로당신이 누구이든, 얼마나 외롭든세상은 당신의 상상 앞에 스스로를 드러내며 기러기처럼, 거칠고 들뜬 목소리로 소리치고 있다. 다시, 또 다시 네 자리가 있다는 걸,이 세상 모든 것들 속에. - 메리 올리버 장석주의 책, 을 다 읽고 짧은 서평을 올렸다. 최근에 책도 못 읽고 글도 못 쓴 탓에, 그 짧은 서평 쓰는 것도 힘들..

일요일의 인문학, 장석주

일요일의 인문학 장석주(지음), 호미 "책은 소년의 음식이 되고 노년을 즐겁게 하며, 번역과 장식과 위급한 때의 도피처가 되고 위로가 된다. 집에서는 쾌락의 종자가 되며 밖에서도 방해물이 되지 않고, 여행할 때는 야간의 반려가 된다." - 키케로 일종의 독서기이면서 에세이집이다. 서너 페이지 분량의 짧은 글들로 이루어진 이 책은, 시인이면서 문학평론가인 장석주의 서정적인 문장들로 시작해, 다채로운 책들과 저자들을 소개 받으며, 책과 세상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에 빠질 수 있게 해준다고 할까.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 이 책은 가벼울 것이고 어떤 이들에겐 다소 무거울 수도 있다. 깊이 있는 글들이라기 보다는 스치듯 책들을 소개하고 여러 글들을 인용하며 짧게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면서 끝내는 짧은 글들이 대부분이기..

수전 손택의 말, 수전 손택, 조너선 콧

수전 손택의 말수전 손택, 조너선 콧(지음), 김선형(옮김), 마음산책 1978년 '롤링스톤'지와의 인터뷰를 그대로 옮긴 책이다. 약 12시간에 걸친 인터뷰 중 일부만 '롤링스톤'에 실렸고 지난 2013년에서야 인터뷰 전문이 이 책을 통해 공개되었다. 책의 원제는 . 수전 손택Susan Sontag의 팬들에게야 반가운 책이 되겠지만, 이 책은 매우 밀도가 떨어진다. 도리어 인터뷰를 하는 '롤링스톤'의 조너선 콧이 두드러져 보일 정도다. 이 책에 대한 가디언의 기사 댓글에서처럼, 그녀는 다소 과대평가된 측면이 없지 않다. 수전 손택은 감각적인 평론가다(이론가나 철학자가 아니라). 하지만 그 감각이란 깊이 있는 사색이나 통찰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재료들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해석에 있다. 그녀..

이성적인 화해, 장-폴 뒤부아

이성적인 화해 Les accommodements raisonnables 장 폴 뒤부아(지음), 함유선(옮김), 현대문학 출처: http://lci.tf1.fr/culture/livres/2008-08/le-nouveau-jean-paul-dubois-est-savoureux-4873947.html 바로 그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차이를 고려하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또한 집중해서, 현재에 그대로 머무르는 능력이었다. 특히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아닌 걸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육체의 살결도 배의 연한 살도 손가락의 기교도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어느 정도 흥분이 지나가자, 우리의 신체를 연결하는 뼈 마디마디가 모두 별 차이가 없어졌다. (안나든 셀마든) 누구의 육체든. 그렇다. 만일 내가 무엇인..

슈가 맨, 장정일

슈가 맨 아 - 입 벌려요. 너는 마른 휘파람을 불기 위해 입술을 모았고,나는 그게 지겨웠어.슈가 맨, 벤츠를 사 줘. 너는 노래방에서 탬버린을 훔쳐 왔지.꽃집에서 버린 시든 꽃을 주워 왔지.아울렛에서 싸구려 팬티를 사 왔지.나는 그것들을 쓰레기통에 넣었어. 슈가 맨, 너한테 없는 것을 줘.다이아몬드 - 은빛 배 - 파리로 날아가는 전용 비행기 - 번뜩이는 빌라의 지붕 - 금빛 넘실거리는 전자 오르간 - 아 - 입 벌려요. 너는 녹아 사라지고,깊게 썩은 입이 말하기 시작했어. 가엾은 슈가 맨.너는 노래방에서 ... ... - 장정일, , 2015년 여름호 도서관에서 문학잡지를 읽는다. 밖은 낮아지는 구름, 어두워지는 대기, 사랑을 꿈꾸지 않는 젊음, 어긋나버린 시간들로 채워지고, 나는 흔들리며 가라앉는 ..

연휴 끝, 그리고 거친 일상

책을 사놓고 한 페이지도 읽지 못하는 날들의 연속이다. 평균 퇴근 시간 밤 10시. 그래도 일은 끝나지 않는다. 이토록 많은 일들이 필요했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면서, 한정된 시간과 자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어떻게든 일은 끝내야 하니, 밤 늦게, 주말까지 나가 일을 하고 있다. 요즘, 정말, 주말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매일 평일이었다면 기분이 어땠을까.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가 일을 하지만, 그래도 조금 늦게 나갈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다니. 고향에 가면 늘 바다 앞 횟집엘 들린다. 서울에도 회를 곧잘 먹는 편인데도, 고향집에 가면 회만 찾는다. 그게 신기하기도 하고 ... ... 전생에 바다 물고기였던가, 다음 생에 진짜 향유고래가 되려고 그러는 것인지. 가끔 핸드폰 사진이 잘 나올 때가 있..

20세기를 생각한다, 토니 주트, 티머시 스나이더

20세기를 생각한다 토니 주트, 티머시 스나이더(지음), 조행복(옮김), 열린책들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터무니없이 바빠졌다. 지금도 바쁘니, 이 책에 대한 제대로 된 서평은 기대할 수 없겠지. 나는 아마 이 책을 다시 읽게 될 것이고, 다시 흥분하게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건 일종의 행운이었다. 점심 시간 잠시 들른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 책을 사지도, 읽지도, 토니 주트라는 역사학자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예전 주위에 책을 읽던 사람들이 많았을 때, 그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책들을 나에게 소개해주곤 했지만, 지금은 주위에 책을 읽는 사람도, 책을 추천해주는 사람도 ...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특히 인문학 책은 제대로 읽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긴 내가 이..

어느 화요일 밤, 혹은 수요일 새벽

어제 11시에 퇴근하곤 오늘 8시에 프로젝트 사무실로 나왔다. 그리고 오늘, 혼자 저녁을 먹고 서점에서 두 권의 수필집을 산다.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굳어졌고 프로젝트 걱정, 미래에 대한 염려, 세상에 대한 불안, 가족에 대한 책임, 사랑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젠 잠마저 쉬이 들지 못하는 중년의 초가을. 장석주의 , 헬렌 맥도널드의 을 충동적으로 사선 내 마음이 물렁해지고 내 몸이 사랑으로 물들고 세상으로부터 온전한 내 전부가 자유로워지길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