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958

종교, 신천지, 카불, 아프가니스탄

1972년 카불, 아프가니스탄 너무 유명한 사진이라서 굳이 설명을 덧붙여야 할까. 1972년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 시내를 걷는 젊은 여성들의 사진이다. 그리고 40여년 후 이들의 자녀들, 혹은 그 손녀들은 아래와 같이 입고 길을 걷는다. 2013년 아프가니스탄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왜 저렇게 변해버린 것일까. 이유를 묻는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 오랜 내전, 외세 -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등 - 의 갈등과 간섭, 그리고 지원으로 카불을 점령한 탈레반은 이슬람 근본주의에 기반한 나라를 세운다. 알카에다도 탈레반이 지배하던 아프가니스탄에 자리를 잡는다. 불과 수십 년밖에 지나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지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들의 공격으로 탈레반이 ..

근황, 그리고 내일

계단을 올라갈 때 오래된 나무 조각들과 내 낡은 근육들의 사소한 움직임으로 얇게 삐걱이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이젠 이런 종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도 없다. 나무 계단은 이제 없다. 만들지도 않는다. 나무 바닥이나 나무 계단을 뛰어가다가 발바닥에 나무 가시가 박히는 일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어제는 사라졌다. 한 땐 당연한 일이, 익숙했던 사물이 지금은 낯선 것이 되거나 아련한 것이 된다. 그렇게 나도 요즘, 종종, 가끔 그렇게, 그냥 사라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가장한 어떤 부재.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내 스스로에게 공포와 두려움, 끝없는 연민을 느끼곤 한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지만, 실제로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이렇게 사는 ..

한 잔의 깔바도스

술 기운이 확 올라왔다. 피곤했다. 지쳐있었다. 어쩌다 보니, 다시 프로젝트의 한복판에 있었다. 자주 술을 마신다. 팀원을 다독이기 위해서 마시고 나를 위로하기 위해 마시고 이런저런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마신다. 블로그도 뜸하다 보니, 오는 사람도 뜸해진다. 레마르크의 을 읽다보면, 사과로 만든 술 '깔바도스'가 궁금해진다. 사과향이 확 올라오지만, 끝은 무겁고 까칠하다. 거친 사내의 느낌이다. 둔탁하지 않고 날카롭다. 적당한 바디감이지만, 부드럽지 못해 살짝 불쾌해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연거푸 마셔 한 잔을 빠르게 비운다. 비운 만큼, 내 마음의 때도 알코올 향 따라 사라질려나.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는데, 올해의 반성이니 결산이니 하는 건 사치다. 그저 술을 마실 뿐이다. 이렇게 술을 마시기도 한다...

흑석동 어느 건물 앞

길을 가다가 찍는다. 요즘은 핸드폰 카메라도 좋아,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일은 거의 없다. 군데군데 낡은 건물들이 남아있지만, 정말 많이 변하고 있다. 그리고 나도 변하고 있다. 변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많지만, 변해야만 견딜 수 있는 일상이 이어지니, 어쩔 수 없다. 요즘은 글이 거의 씌여지지 않는다. 심지어 서평 쓰기도 어렵다. 그만큼 글쓰기가 뒷전인 셈이다. 생각을 정리할 겨를도 없이 밀려다닌다고 할까. 사정이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

인문학 유행과 인문학적 사고

소위 인문학적 소양이란 치열한 '왜'로부터 출발한다. '왜'를 묻는다는 것은 비판적 사유와 분석을 필요로 한다. 현대 인문학의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정신이 있다면, 그것은 '질문은 해답보다 심오하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인문학적 사유에 들어서는 사람들이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간결함과 명쾌함'이 아닌 '불확실성과 모호성'이다. 인문학적 사유는 이전의 익숙한 이해 세계를 뒤흔드는 '내면적 불편함'을 경험하게 한다. 한국의 대중매체에서 소비되고 있는 인문학의 상품화가 결정적으로 놓치고 잇는 점이다.'어른들의 인문학'이라는 제목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인문학 종결자'라고 소개되는 강사를 통해서 전해지는 인문학은 갖가지 '해답'으로 이루어진다. 청중들에게 간결한 요약과 해답을 제시하면서 그들을 즐겁게만 ..

주말 저녁 외출, 반포대교 무지개분수

지하철에서 내려 걸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들어갔다, 한강변으로. 몇 번 차를 타고 가다 반포대교 옆으로 쏟아지는 분수를 본 적 있었다. 재미있긴 했으나, 찾아가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토요일 오후 늦게 집을 나섰다. 반포대교 아래로 푸드트럭들이 줄 지어 있었고, 야외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도심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하지만 이런 공간도 여유가 되는 사람들이나 이용하는 것일 뿐이다. 실은 관심에 없다, 관심을 둘 시간도 없다. 하지만 간만의 외출이 기분을 살짝 풀어주었다. 반포대교 무지개분수 - 주말에는 7시 30분부터 9시까지 30분 단위로 분수가 나오지만, 겨울엔 운영하지 않는다. - 반포대교 오른쪽으로 분수가 쏟아질 지, 왼쪽으로 쏟아질 지는 그 ..

성당 풍경

마음이 스산하고 몸은 피곤하다. 꿈은 외롭고 발걸음은 정해진 궤도만 오간다. 나무와 본당 건물 사이의 전선만 없으면 어느 유럽 도시 풍경처럼 보일텐데. 저 풍경 사이 어디론가 몸을 숨기고 싶다. 그리곤 나오지 말아야지. 그렇게 사라진 몇몇 사람들은 나는 알고, 그들은 나를 모른다. 그렇게 사라진 그녀를 나는 알고, 그녀는 나를 잊었다. 가을 오는 소리에 살짝 놀라 궤도를 벗어나려고 했으나, 모든 것들은 정해진 대로 갈 뿐이다. 벗어난 그 곳마저도 예정된 궤도 위라는 걸. 그걸 알았다면, ... ...

가을을 준비하는 어느 일요일, 그리고

바람은 선선하고 하늘은 높고 파랗다. 이번 여름은 사무실과 집만 오갔다. 그 사이 한일갈등은 극에 다달았고, 언젠가는 이런 국면이 펼쳐지리라 예상되었으니, 우리의 일상은 평온하면서 현대적 자본주의의 스트레스로 지쳐만 갔다. 그 스트레스 속으로 한일갈등은 들어오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한국의 언론은 우리가 그들을 향해 기대하는 기능의 절반 이하로 언론의 참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한일갈등도 그러한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채 20%도 되지 않을 듯 싶다. 저 정도의 호들갑이라니. 박근혜 정권 때 저렇게 해주었으면 나라가 지금보단 훨씬 더 나아져 있었을 것이다. 이번 사태의 시작은 지난 정권에서의 잘못된 외교 관계와 여러 협약 때문이다. 아베 정권의 극우적 태도는 이미 다 ..

misc.

수십년은 되었을 레코드판을 턴테이블에 올려놓는다. 한밤 중, 퇴근 후 마신 술이 부족해, 집에 들어와 마트에서 사다놓은 위스키를 꺼내 한 두 잔 들이키다가 그냥 취해버렸다. 아마 취한 내 마음과 달리 내 귀는 이브 몽땅의 목소리를 들으며 기뻐했을 것이다. 수백장의 음반을 놔두고도 듣지 못하는 요즘 내 신세를 보면, 뭐랄까, 음악을 듣는 것도 젊은 날의 사치같다. 지금은 그저 추억. 최근엔 몰트 위스키에 빠졌다. 와인에 빠졌다가 이젠 위스키로 넘어가는 중이다. 나이 탓도 있겠다. 아니면 더위 때문인가.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를 보면서, 역시 호크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독특하다. 그는 평면과 입체를 교묘하게 섞어놓으면서 그 사이를 응시하는 관객에게 도리어 묻는다. 너는 지금 무엇을 ..

대상포진, 혹은 꽃단

대상포진에 걸렸다. 예전엔 '꽃단'으로 불렸던 병이다. 수두바이러스가 몸 속에 숨어있다가 면역력이 약해진 틈을 타 다시 발병하는 병이다. 대체로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어서 악명을 떨치는 병이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 중 일부는 걸렸는지도 모른 채 지나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마다 고통의 편차가 있다. 어떤 이는 너무 아파서 아예 움직이지도 못한다. 물집(수포)가 생기는 병이지만, 안 생기는 경우에는 대책 없는 병이다. 관절이 아픈 느낌이 지속되는데, 물집이 있으면 아 이거 대상포진이구나 하고 짐작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이게 뭔지 한참 헤매게 된다(의사도 마찬가지다). 특히 그냥 며칠 지나면 낫겠거니 하다가 된통 당하게 된다. 또한 보이지 않는 곳, 특히 등에 대상포진이 발병하는 경우도 주의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