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958

혼술, 또는 쓸쓸한 두려움의 시각

혼술의 빈도가 늘어나는 나이. 그렇게 다시, 혼자가 되어 가는 계절. 술에 취하는 것이 무서워지는 시간들. 기도를 올리기 위해 두 손을 모으지만 계속 방향이 어긋나는 몸으로 변해가는 시절. 인생의 오르막이 아직도 한참 남아 있음을 아직 어린 아들을 보며 깨닫을 무렵, 역시 위스키는 부드럽게 취하긴 적당하지 않아. 특히 탈리스크는 피트가 좀 거칠고 날카로워. 난 좀 더 묵직하고 부드러운 피트가 필요해. 그래야 취할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혼자 주절거리던 시간. 그런 시간들이 흘러 어둠 속으로 묻히는 여름밤. 밖에 닫힌 창 너머로 비 소리가 들리고 ... 내가 취한 걸 아무도 모르는 어떤 깜깜한 밤.

흐린 하늘, 흐린 마음, 흐린, 흐린,

한동안 피프티피프티 노래를 들었는데, 플레이리스트에서 삭제했다. 그녀들의 인터뷰를 보며 성격들도 다 좋구나 생각했더니만, 다들 귀가 얇았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전 세계 어딜 가더라도 신뢰(trust)는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 덕목이다. 애덤 그랜트Adam Grant는 대놓고 기버(Giver)가 되라고 조언했다. 우습게도 신뢰란 먼저 믿어줄 때 생기는 것이지, 신뢰해주지 않는다고 비난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신뢰하는 것이 아니다. 상당히 안타깝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피로도가 전 세계적으로 누적되었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은 어떻게든 이 전쟁을 끝내고 싶어할 것이고 이는 리더십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푸틴의 러시아도 비슷할 것이다. 지금 경제적으로 상당히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 우크라이나에게 언제까지 ..

문신(타투)과 그리스 청동 투구

집 앞에 골목길 이십대 초반의 여자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전자 담배를 피우면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하얀 두 다리가 드러나는 반바지를 입고 그 위로 무채색 주방 앞치마가 포개져 있었다. 흰 색 반팔 티셔츠 위로 목덜미 옆으로 살짝 문신(타투)이 보였다. 그 작고 앙증맞은 문신은 아이의 가느다란 목덜미를 더 부각시켰다. 하얀 살갗 위로 희미한 담배 연기로 흘러 지나갔다. 여자아이는 핸드폰을 보던 얼굴을 들어올려 맞은 편 건물 벽을 향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하지만 담배 연기는 금세 사라졌다. 내 짧았던 이십대처럼. 모든 것이 절망스러웠던 시절, 나는 모든 것을 위선이라 여기며, 나 또한 위선으로 포장했다는 걸 그 땐 몰랐다. 거친 말을 진실된 태도라 여겼고 술만 마시면 아무 이유없이 취해 버렸다. ..

낮술

대낮에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난다. 그렇게 걷고 나면 쉬이 지친다. 이젠 뭘 해도 지칠 나이가 되었다. 지쳐 쓰러져 영영 깨어나지 않으면 어떤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단 전제가 있기는 하다. 그렇게 영영 의식이 없어야 한다. 사후 세계라든가 이런 것이 있으면 안 된다. 생명의 입장에서야 살고자 하는 의지가 크지만, 우주의 입장에서는 생명이란 우연스러운 사소한 사건일 뿐이며, 생과 사는 일종의 반복이며, 등가(等價)다. 내 의식에겐 죽음이며, 사라짐이지만, 우주의 입장에서는 변화란 없다. 어차피 우주 전체적으로는 고정된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었다. 그냥 소주를 마시다 보니, 내 손이 빨라졌고 취한다는 생각 없이 그냥 마셨을 뿐이다. 최근 나는 너무 급하게 술을 마시고 순식간에 취하고 그렇..

위급 재난 문자에 대한 단상

중국이 대내외적으로 상당한 위기 상태다.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가 부채 규모는 미국 다음이며(통계에 잡히지 않는 지방정부 부채가 너무 많다), 내수 시장만으로 버텨내기에는 기존에 투자된 곳이 너무 많다. 이렇게 볼 때 대만침공은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겠다. 또한 중국 공산당의 기본적인 목표 중 하나가 '하나의 중국'이다. 대만은 언젠가는 중국으로 들어와야 될 곳이라고 확실하게 믿으며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러니 대만 침공을 하기 위한 전제 조건들 중 하나가 바로 주한미군을 묶어두기 위한 한반도의 긴장 조성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한반도 긴장 조성을 통해 얻어낼 것이 있다면 환영일 것이다. 솔직히 그들도 전쟁을 일으켜 막대한 피해를 입고 결국 패배하는 모습을 보기는 싫겠지만, 적절한 군사적 긴장..

요리하는 나에 대한 반성

냉장고에서 길을 잃어버린 무우 하나가 몇 달째 냉기를 먹으며, 한때 딴딴하고 신선했던 탄력을 상실해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나는 숙취와 스트레스의 바다 속에서 겨우 살아나와, 푸르딩딩한 겉이 살짝 물렁해진 무우를 꺼내 껍질을 도려내고 네모나게 잘랐다. 하나, 하나, 하나 그릇에 담고는 꽃소금 몇 스푼을 뿌려 같이 놀게 해주었다. 소금 알갱이들이 네모난 무우 사이에서 낄낄거리며 노는 소리가 작은 집 부엌 한 구석에 쌓여갔다. 그러나 봄햇살은 놀러오지 않았고 내가 사랑하는 아이는 그 노는 소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십대란 부모가 관심 가지는 것과는 정반대로 나아가며,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와 정의를 만들어 간다고 여겨졌다. 고향 집에서 가져온, 정체를 알 수 없는, 심하게 짜 바다 향이 그 소금기에 짓눌려 응축된..

뒤늦은 성장통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하지만, 실감하긴 어렵다. 그저 자주 아프고 피곤한 육체만 떠올릴 뿐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죽음에 대해서 상당히 개방적으로 변한다는 정도. 다시 말해 죽음을 담담히 준비하게 된다. 생에 대한 미련을 줄여 나가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물욕이 사라지진 않아서 곧잘 욕심을 부리기도 한다. 가끔 미디어를 통해 내 나이 또래 사람을 보게 되면, 아, 저들은 왜 저렇게 늙게 보이는걸까, 하다가 내 얼굴을 거울로 보면 낯설기만 하다. 오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아래 이미지를 발견했다. 이래도 성장(Growth), 저래도 성장이지만, 성장의 모양은 제각각이었다. 내 성장의 모습은 어떤 걸까. 나는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걸까.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 계속 노력해야 하는 건..

어떤 아침 풍경

봄 바람이 차가웠다. 대기는 맑았다. 하늘은 높았다. 하얀 구름을 시샘하듯 파란 배경 위로 햇살이 떨어져 내렸다. 마치 내 마음은 알몸인 듯 추웠고 쓸쓸했으며, 비에 젖은 스폰지마냥 몸은 무겁고 피곤하고 지쳐있었다. 출근길은 길고 지루했으며 해야할 일들의 목록을 사랑의 주문을 외듯 되새기며 걸었다. 걷다가 살짝 삐져나온 보도블럭 모서리에 걸려 넘어질 뻔 했다. 그렇게 넘어져 다쳐 응급실에 실려가는 걸 잠시 상상하다가, 말았다. 불길한 상상은 현실이 되고 행복한 상상은 언제나 상상으로만 머물었다. 그랬다. 마치 우리 젊은 날들을 슬프게 수놓았던 사랑의 흔적들처럼. 마치 공부하는 학생처럼 두꺼운 책 한 두권을 들고 다닌다. 오늘 들고 나온 책에 인용되었던 문장은 아래와 같았다. 계몽이란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in my life, 2023.04.22

1.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많은 생각에 휩싸였다. 한국 사람들에 대해서. 한국 사회에 대해서. 결론도 없지만, 더구나 결론을 내리기에 이제 남은 생도 얼마 되지 않으니까. 최근에 읽는 책들을 보면,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 행동하는 방식, 원래 그래왔던 것들, 그렇게 기록되지 않았던 옛날부터 내려온 어떤 것들이 층층히 쌓여 온 것임을 깨닫곤 절망한다. 오래 외국생활을 한 친구에게 아직 한국은 적응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타자의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볼 때마다 느끼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또한 조직에서의 승진이 정치적 역량으로 결정되는 모습에 이젠 포기했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 또한 답답함을 느꼈다. 2. 시간이 지..

misc. 23.04.11

같은 성당을 다니는 원양 컨테이너선 선장이 카톡으로 보내온 사진이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배에는 컨테이너만 있고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한다. 몇 달을 배 위에서, 바다 위에서 보내야 하니, 상당히 건강도 그렇거니와 심적으로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임을 미처 몰랐다. 배에 오르기 전에 이런저런 검사를 받은 후에 오른다고 하니. 저 끝없고 평온한 바다만 보고 나도 저 바다를 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한때의 바람일 뿐이다. 요즘 역사책과 지리정치학이나 경제학 책에만 손이 가게 된다. 특히 한국 역사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의외로 서양사 책들보다 접근성이 떨어진다. 찾으면 아이들을 위한 책이나 중고등학생용이 있을 뿐이다. 아니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대중 교양 서적이 대부분이다. 좀 깊이 있는 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