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958

토요일 출근

지하 1층의 공기는 무겁고 차갑고 쓸쓸하다. 텅빈 주말의 프로젝트룸은 예전과 같지 않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주말 출근도 마다하지 않던 이들도 이젠 주말에 출근하지 않는다. 한 두 명씩 주말 출근을 하지 않기 시작하면서, 주말 출근하는 이들만 호구처럼 보이던 과도기를 거쳐 지금은 관리자나 성실한 정규직 직원만 가끔 주말 출근을 한다. 어쩌다 보니, 몇 년째 여의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계속 여의도 쪽 프로젝트만 하게 되었다. 원래 업무가 프로젝트 관리가 아닌데, 누군가 잘못하면 내가 가서 책임을 지게 되었다. 나라고 해서 모든 걸 잘 할 수 없기에, 늘 피곤하고 스트레스로 둘러쌓인 환경에 놓여져 있다. 꿈은 멀리 사라지고, 그 멀어진 거리만큼 내 피부는 건조해지고 푸석푸석해졌..

불안

휴가를 내어도 마음은 불안했다. 전화가 무서웠다. 예전엔 이 정도까지 아니었다. 현대인 대부분은 이럴까. 아마 대부분 이럴 것이다. 불확실성은 우리의 불안을 증폭시킨다. 강조되는 불확실성. 연역법의 시대가 지나고 귀납법의 시대가 되었다. 합리론은 폐기되고 경험론이 주류가 되었다. 하지만 경험론이 강조하는 불확실성은 인간 이성의 오만함을 경고하지만, 현대 자본주의는 그 오만함을 지탱하기 위해 합리적 이성(?)이 결정 가능한 세계를 제한하고 이 안에서의 합리적 결정을 위한 다양한 이론들을 등장시킨다. 그러면서 한 쪽에서는 현대 사회의 복잡성을 강조하며 그 복잡성 위로 수학을 이야기한다.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았고 결정할 수 없다는 경험론의 시대에 복잡성을 강조하며 이를 해결하고 결정할 수 있다고 밀어붙인다...

요즘, 책임에 대하여

젊었을 때는 자유를 이야기했으나, 나이가 들고보니, 자유보다 책임이 더 중요하더라. 그러고 보니 한국 교육은 '책임'에 대해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더라. 특히 '책임을 지는 자(리더)'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교육은 전무했더라(아니면 내가 그렇게 살아온 것인지). 공부를 잘 하는 것보다 책임이 더 중요한데. 책임감이라곤 제로인데, 공부를 잘 했다는 걸로 리더가 되는 모습은 어딘가 이상하다. 요즘 이 나라 모습을 보니, 제대로 된 리더를 찾아보기 힘들구나. 하물며 작은 구멍 가게 사장도 저러지 않는데, 국가/정부의 장(리더)들이 왜 저러는지. 그리고 저런 사람들을 옳구나, 좋구나 하면서 뽑은 사람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세상은 좋게 변할 듯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곳인 듯 싶다. 이러다가 브라질처..

난리블루스

IDC 내의 부분적인 화재로 서비스가 이렇게 오래 중단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서버가 다 불탄 것도 아니고 그냥 전원만 내려간 것이니, 다시 전원을 공급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을 텐데, 아마 다들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서버가 내려가는 이유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고 그 중 하나가 전원이니, 전원이 들어오면 서비스가 금방 정상화될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또한 대부분 시스템은 안정적인 서비스를 위해 시스템 이중화라든가, 물리적으로 분리된(위치가 다른) 동일한 시스템으로 백업하기도 하니. 그것을 이것을 DR이라고 한다. 경영의 관점에서 DR는 정말 순수한 비용이다. 비상사태가 아니면 사용할 일이 없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에서 DR는 필수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다가 이번과 같은..

가을,잡생각,들

쫓기듯 급하게 휴가를 냈다. 그냥 쉬고 싶기도 했고, 아이의 성당 숙제를 도와주어야 하고, 부동산 계약 건도 있다. 치과에도 가야 하며 공부도 해야 하고 저녁에는 성당에도 가야 한다(과연 하루만에 다 할 수 있을까). 직장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들 대부분은 아이와 함께 한다. 이렇게 될 것이라고 이십년 전의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심지어 성당에 나가게 될 줄. 이럴 줄 알았다면, 이럴 줄 알았다면, ...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후회와 연민이 쌓인다. 며칠 전 출근길에 소방차들 수 대가 이차선 이면도로로 싸이렌을 울리며 올라갔다. 어디로 가는가 했더니, 아래쪽 동네 어느 빌라에서 불이 난 것이다. 내가 탄 마을버스는 앞으로 가지 못했고 연기가 도로에 가득했다.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려 다들..

재편되는 세계, 그리고 한국 속의 나.

며칠 전 페이스북에서 독일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그 전략적 가치를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포스팅을 읽게 되었다. 하긴 독일이 최근 러시아와 가까이 지낸 건 사실이다. 동시에 미국 또한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세계 질서에 발을 빼는 모습을 보여준 것 또한 사실이다. 중국, 인도, 터키, 이란,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 미국과의 적절한 긴장 관계를 형성하며 지역 패권 국가로서의 자리를 다시 차지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들 나라들은 한 때 제국이었던 국가들이었다. 러시아는 20세기 이후의 패권국가였다고 봐야겠지만. 최근 피터 자이한의 책 을 읽으면서 세계는 현재 미국이 설계해 놓은 질서 위에서 돌아가고 있음을 뒤늦게 알았다. 실은 이를 부정하기에는 너무 설득력 있었고 상당히 논리적이었다. 하지만..

슈타이얼, 바르트, 손택

유럽도 전개되는 양상이 비슷했다. 연로한 롤랑 바르트는 전통적인 지식인과 작가는 멸종하고 대부분이 대학교에 자리를 잡은 새로운 종이 그들을 대체하고 있다며 입버릇처럼 불평하곤 했다. 손택도 이런 묘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손택은 1980년 인터뷰에서 시대에 역행해 작가이자 지식인으로서 보편적인 역할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목적이라고 공표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 다니엘 슈라이버, , 글항아리, 288쪽 러셀 저코비(자코비)의 에서도 언급된 내용이다. 롤랑 바르트나 손택, 그리고 저코비가 이야기할 때의 그 지식인과 대학 교수는 일치하지 않는다. 신문기자를 지식인이라고 하지 않듯이(한국에서는 경멸적으로 '기레기'라고 쓰고 '쓰레기'로 해석한다) 대학교수도 지식인이 아니다. 저코비의 책을 읽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