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 1045

어항, 금붕어, 달팽이

공항 이마트에서 공짜로 받은 금붕어 3마리. 한 달 정도가 지난 지금, 매우 건강해보인다. 그리고 나는 주말마다 어항 청소를 한다. 특별한 건 없다. 물 갈아주고 어항에 끼인 녹조류를 깨끗하게 닦아준다. 그런데 오늘 달팽이인지, 고동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녀석들 몇 마리를 발견했다. 그래서 부레옥잠들이 힘을 잃고 있나. 다음 청소 때 잡아 없애야 겠다. 관련 까페를 검색해보니,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좀 더 큰 어항으로 바꾸면 바닥에 자갈같은 것들을 깔아줘야 겠다. 금붕어 노는 모습, 정말 좋다. (2007년 11월 3일) ** (2018년 10월 10일 업데이트)블로그에 방문하는 이들의 검색 엔진 방문 키워드를 보면 흥미롭다. 10여년 전, 어항으로 사용하던 저 투명 플라스틱 용기를 얼마 지나지..

일요일 오후 사무실

주말 난지캠핑장에 갔다. 동네 지인들과 함께 간 곳은 잠을 자러 온 곳이라기 보다는 술을 마시러 온 공간 비슷했다. 사진 속으로 보이는 공간들은 모두 잠을 잘 수 있는 곳이긴 하지만,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바닥이 흙먼지로 쌓여 있었다. 몇 번을 닦아냈지만, 계속 흙이 묻어나와 불편했고 결국 아침까지 술을 마시다가 집에 올 수 밖에 없었다. 밤바람이 다소 시원해진 탓에 즐거운 한 때를 보내긴 했지만, 토요일은 종일 잠만 자는 불상사가.... 토요일 잠에서 깨어 창 밖을 보니, 어둠이 내려 앉은 도시의 풍경이 들어왔다. 매번 보는 풍경이라 익숙하지만, 이 풍경도 보지 못하면 꽤 보고 싶을 지도 모르겠다. 하긴 매일 바다를 보던 시절도 있었는데. 아직도 나는 바다 앞에 가서 살고 싶은 바람을 버리지 못했다..

자정의 퇴근길

자정이 지난 지하철 9호선. 선정릉역에서 김포공항역으로 달려가는 급행. 신논현역. 즐거운 유흥을 끝낸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수다를 나누며 등장. 자신의 취하고 지쳐보이는 얼굴 사이로 피어나는 웃음의 어색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하철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별안간 낯설게 여겨졌다. 실은 요즘 내 모습에 스스로 상당히 낯설어 하곤 있지만, 어쩌면 나이 들면 갑작스레 이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나오자, 거리엔 사람들이 없었고 택시마저 보이지 않고, 대신 밤을 지키는 술집들이 나를 향해 손짓을 했다. 다행이다. 밤을 지키는 술집들이 있다는 건. 어쩌면 아직 살만한 곳임을 알리는 징표 같은 게 아닐까. 수백년 전 밤길을 가던 나그네의 눈에 비친 주막의 불빛처럼, 그렇게. 찰칵..

슬퍼하는 아테나Mourning Athena와 나이가 든다는 것

나이가 들수록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 하나 그 모습을 드러낸다. 비밀스러운 속살이라기 보다는 굳이 알 필요 없는 구차함에 가깝다. 인과율의 노예라서 '왜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이유나 배경으로 끼워 맞출 수 있다는 것 이외에 쓸모없는 것들이긴 하지만, 그런 것들이 쌓이면 이 세상이나 우리 삶은 참 슬픈 것이라는 생각에 휩싸인다. 아마 하우저가 그리스 고전주의 정점을 'The Contemplating Athena'로 여기게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게다. 부연하자면, 알기 때문에 피하게 되고 알기 때문에 멀리하게 되며 알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게 된다. 알기 때문에, 결국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된다. 회한과 눈물의 밤을 보내고 젊음을 부러워하고 되돌릴 수 없는 추억에 자신의 마음을 맡기게 된다..

비 내리는 날의 녹턴

이렇게 비 올 땐 쇼팽이구나. 쇼팽의 녹턴만 들으면 왜 고등학교 때 가끔 주말마다 가던 창원 도립 도서관 생각이 나는지 몰라. 노오란 색인표를 뒤져가며 책을 찾기도 하고 빌리기도 하고 혼자 온 나를 사이에 두고 앞서 책을 빌리던 아저씨는 무슨 책을 빌렸나 뒤에 빌린 그 소녀는 무슨 책을 빌렸나 궁금해 했지. 아무 말 없이 서서 물끄러미 창 밖을 보며 아주 잠시 내 미래를 생각했어. 그 옆을 지키던 네모난 색인표를 넣어두던 서랍장과 책들 사이로 지나는 서늘하고 무거운 공기들 사이로 계단이 이어지고 해가 살짝 기울어, 도서관 앞 나무들의 그림자가 길어지기 시작할 때쯤 나들이 나선 여학생들의 깔깔거리던 소리들과 ... 지금도 그 자리에, 그 도립도서관은 그대로 있을려나. 내가 타고 다니던 그 시내버스도 그대로..

비 오는 날

비가 내렸다. 우산을 챙겼다. 우산 밖으로 나온 가방, 신발, 입은 옷들의 끝자락들, 그리고 내 마음과 이름 모를 이들로 가득한 거리는 비에 젖었다. 비 내리는 풍경이 좋았다. 내 일상은 좋지 않지만, 비 속에 갇힌 거리의 시간은 음미할 만 했다. 아주 가끔 있는 일이다. 그런데 요즘은 글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고 .... 술이나 마셔야 하나. (그러기엔 너무 일이 많구나) 비 오는 그림을 좀 찾아봤는데, 거의 없다. 비 내리는 풍경이 회화의 소재로 나온 것도 이제 고작 1세기 남짓 지났으니.. Gustave Caillebotte (1848-1894)Paris Street; Rainy Day, 1877

현충일 국립묘지 방문기

현충일 국립묘지엘 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하철에서부터 사람들이 빼곡했다. 동작역에서 나와 보니, 경찰관들이 임시 횡단보도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유가족들도 있었고 군인들도, 경찰관들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현충원 여기저기를 두리번 거리면서, 위패봉안관에 갔다. 평소에는 개방하지 않는 곳이지만, 현충일 유가족들을 위해 개방하고 있었다. 위패봉안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나,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유골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 위패만 모아둔 곳이다. 위패봉안관 옆에선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를 하고 있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유해를 발굴하게 되면 그 뼛조각과 유가족의 유전자와 비교해 유족을 찾아주는 것이다. 유해발굴감식단의 활동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는데, 위패들만..

일요일 출근

1. 봄날이 간다. 여름이 온다. 비가 온다는 예보 뒤로 자동차들이 한산한 주말의 거리를 달리고 수줍은 소년은 저 먼 발치에서 소녀의 그림자를 보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다. 그 사이로 커피향이 올라오고 내 어깨에 매달린 가방의 무게를 잰다. 내 나이를 잰다. 내 남은 하루, 하루들을 세다가 만다. 포기한다. 2.포기해도 별 수 없는 탓에 하루를 살고, 또 하루를 살게 된다. 포기해도 된다면, 포기가 좋다. 내려놓든가, 아니면 그냥 믿는다. 포기를 해도 남겨진 삶은 어쩔 수 없다. 그러니 포기는 그저 단어일 뿐, 행동은 아니다. 3. 비가 내리는 날 저녁 황급히 들어간 카페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 저녁 식사의 수선스러움을 기억한다.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일상. 그런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텅 비어가는 중

5월 7일. 텅 빈 대체 공휴일. 아무도 없는 사무실. 인적이 드문 골목. 몇 시간의 집중과 약간의, 불편한 스트레스. 태양은 빠르게 서쪽을 향하고 바람은 머물지 않고 그대는 소식이 없었다. 봄날은 하염없이 흐르고 내 마음은 길을 잃고 내 발길은 정처없이 집과 사무실을 오간다. 운 좋게 예상보다 많은 일을 했고 그만큼 지쳤고 어느 정도 늙었다. 몇 만 개, 혹은 몇 백만개의 세포가 소리없이 죽었고 텔로미어도 짧아졌을 것이다. 책 몇 권을 계속 들고 다녔지만, 5월 내내 읽지 못했다. 밀린 일도 많고 읽을 책도 많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대체공휴일, 조금의 일을 했고 나를 위해 와인 한 병을 샀다. 그리고 마셨다. 최근 콜드플레이를 우연히 듣고 난 다음, 아, 내가..

카프카의 드로잉. 그리고

카프카의 드로잉을 한참 찾았다. 뒤늦게 발견한 카프카의 그림. 하지만 제대로 나온 곳은 없었다. 잊고 지내던 이름, 카프카. 마음이 어수선한 봄날, 술 마실 시간도, 체력도, 여유도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에 살짝 절망하고 있다. 한 때 내가 사랑하던 것들이, 나를 사랑하던 존재들이, 내가 그토록 원하는 어떤 물음표들이 나를 스치듯, 혹은 멀리 비켜 제 갈 길을 가는, 스산한 풍경이 슬라이드처럼 탁, 탁, 지나쳤다, 지나친다, 지나칠 것이다. 내가 보내는 오늘을, 십년 전의 나는 상상하지 못했다. 똑같이 내 십 년 후의 오늘을 지금 나는 상상할 수 있을까. 뜬금없는, 나를 향한 물음표가 뭉게뭉게, 저 뿌연 대기 속으로 퍼져나가는 새벽, 여전히 사는 게 힘들다고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아, 그건 변하지 않았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