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 1048

다른 곳으로 가시는 본당 신부님들

몇 년만에 조계종을 앞을 지나게 되었다. 그 사이 조계종 내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 것인지, 아니면 주변을 새로 단장한 것인지, 모습이 좀 변한 듯 했다. 건너편에도 템플스테이 안내센터가 있었고. 대도심 중심지에 큰 사찰이 있는 것도, 그 사찰 앞으로 머리를 민 스님들이 오가는 풍경이 새삼 흥미로웠다. 젊은 스님들 몇 명이 앞을 스치며 지나갔다. 이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나이였다. 아니면 삼십대 초반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슨 사연으로 저들은 승려가 되었을까 생각했다. 환하게 웃으며 서로 장난을 치며 거리를 걷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성당 막내 신부님을 떠올렸다. 사제 서품을 받고 바로 본당 보좌신부로 와, 영성체반과 초등학생, 중고등학생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이들의 부..

고장난 출생율(Baby Bust)

어제 처음 Baby Bust라는 단어를 봤다. 좀 늦게 본 셈인데, 우리 말로 옮기면 "고장난 베이비"정도의 느낌이랄까. 이제 더 이상 아기들을 예전처럼 출산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동안 나는 이 현상이 잘 사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지역적인 트렌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진국 인구가 줄어들더라도 남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젊은이들도 채워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 세상이 좀 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하지만 출생율 하락은 전 세계적인 트렌드였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출산율이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아기가 아니라 반려동물이 더 늘어났다고 한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언급하듯, 경제 성장이나 재정적인 관점에서는 국가 차원에서의 경제 위기 요소로 작용할 것이며 기업 경영에도 ..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Last exit to Brooklyn

2024년 1월 꾸준히 이 영화를 검색하여 들어온다. 나는 기억은 간유리처럼 흐려진다고 여긴다. 아프고 잔인했던 기억은 그렇게 흐릿해지고 상처는 아물기 마련이다. 한국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그랬던 적이 많아 상처를 그냥 아물기 기다리고 그냥저냥 살아간다. 일본 사람들은 어떨까, 중국사람들은? 영국 사람들은? 프랑스 사람들은? 실은 이런 국가적 경계가 생긴 거도 이제 백 년 정도 지났는데. 차라리 지역으로 구분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래서 어느 지역 사람들은 상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행동하더라고 말이다.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상처를 자연 치유되길 기다리는 것은 잘못된 대응이다. 시간이 약이라고? 한 마디로 개소리다. 잊혀지기 전에 냉정하게 바라고 해결하고 내일을 맞이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

Gran Passione Rosso 2021 그랑 파시오네 로쏘

Gran Passione Rosso 2021 Veneto, Italy 메를로와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의 코르비나(corvina) 품종을 블랜딩한 와인이다. 낮은 등급 와인(IGT등급인데, 프랑스로 치면 Vin de Pays라고 해야 하나..) 치고 의외로 평판이 좋은 와인이긴 하나, 나는 그다지 즐겁게 마시진 못했다. 비비노(Vivino) 평점 4.0. 의외인데. 이 정도는 아니잖아. 최근 비비노의 평점을 믿을 수 없는 수준인 듯하다. 간단한 핑거 푸드와 먹기에는 너무 밋밋했다. 최근 비비노 평점을 믿기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해 낮은 평점을 주려고 노력 중이긴 하지만... 와인을 자주 마시는데, 이렇게 정리를 해두지 않으면 내가 무슨 와인을 마셨는지 기억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서 마시..

일요일 잡담 - 자유와 경제적 불평등

진영 갈등이 얼마나 심한지, 책마저 오독하게 만든다. 아니면 한 개념이 가지는 풍부한 스펙트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룰루 밀러의 를 너무 정치적으로, 우생학의 관점으로만 접근했던 것같다. 룰루 밀러는 스탠포드 대학 초대 총장의 우생학을 보면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성장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더 나아가 차이(다르다는 것)를 받아들이면 내가, 우리가 성장한다는 것을 적고 있었는데. 하긴 그러기엔 우생학이 그토록 뿌리깊게 자리잡았다는 사실을, 그 흔적이 한국 사회에서도 있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리처드 윌킨스과 케이트 피킷의 를 보면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정신병이나 미성년자 임신, 가정 폭력 등이 일어난다고 풍부한 통계 자료를 보여주면 이야..

현대적 쓸쓸함, 그리고 스타벅스 커피와 홀로

토요일 아침, 국을 끓이고 밥을 짓고 쓰레기를 버리고 ... 아, 겨울인가, 그러기엔 춥지 않아, 이 불길함이란. 가끔 이런 상상을 하곤 했다. 마을에 백 명의 사람이 있고 그 중 한 명이 살해당한다. 사람들은 서로 웅성웅성거리며 누가 범인인지 추측해 대다가 마을 사람들과 교류가 적어 오해를 사고 있던 한 명을 지목하곤 자신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강변하였음에도 교수형에 처해버린다. 그리고 그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변호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심하게 때리곤 마을에서 쫓아내 버린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다른 사람 한 명이 또 살해당하고, 그제서야 사람들은 그가 살인하지 않았음을 막연하게 추측하곤 외부의 도움을 구하기 시작한다. 과연 마을 사람들은 죄가 없는가? 내가 이런 마을에서 살고 있다면,..

1월 7일 일요일

구립 도서관을 가려다 집 근처 스터디카페로 향했다. 커피 두 세잔 가격으로 6시간을 있었다.읽고 노트할 거리를 잔뜩 들고 갔지만, 언제나 시간이 부족할 뿐이다. 영어 단어와 한글 단어가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깨닫게 되자, 더욱더 영어로 책을 읽고 싶어졌다. 황당할 정도로 뒤늦게 이것저것 깨우치게 된다. 거참. 살짝 늦은 감이 있지만, AI와 빅데이터에 대한 여러 자료들을 찾아 읽고 정리하고 있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내가, 혹은 인류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속도를 추월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단순하게 말해, 살기 피곤해졌음을 뜻한다. 배우는 것을 즐기는 이들에겐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을 것이나, 그렇지 않다면 상당히 어려운 시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수학..

샤또 드 파랑쉐 뀌베 라파엘 2019

샤또 드 파랑쉐 뀌베 라파엘 2019 Chateau de Parenchere Cuvee Raphael 2019 메를로 50%, 카베르네 쇼비뇽 50%으로 블랜딩된 와인으로 샤또 드 파랑쉐의 대표 와인이다. 아래 등급으로는 보르도 슈페리어 루즈가 있고 위로는 에스프리 드 파랑쉐가 있다. 하지만 빈티지마다 유통가격이 제각각이다. 파랑쉐 보르도 슈페리어는 병당 8유로 ~ 10유로면 살 수 있지만, 국내 샵에서는 4만원 가격으로 판매되기도 했다(이런 도둑놈들!). 내가 마신 뀌베 라파엘은 12유로 이상. 그리고 에스프리 드 파랑쉐는 19유로다. 샤또 드 파랑쉐 홈페이지에 가면 6병이 들어가 있는 박스로 구입할 때 위 가격으로 살 수 있다. 그리고 많이 사면 가격은 더 떨어진다. 하지만 한국으로 운송하려면 세금이..

2024년, 기도하는 마음으로 견디자.

2023년말 우리 모두가 알았던, 이제는 세계 사람들이 아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매력적이었던 영화배우가 스스로 이 세상과 등졌다. 두 아이의 아빠가 그렇게 떠났다. 이제 한국은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비가 와도 내 책임, 눈이 와도 내 책임 같다던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가신 후에, 한국 사회는 안타깝게도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했다. 잠시 선진국이 된 듯한 기분도 들었지만, 지금은 하염없이 뒤로, 과거로 밀려내려가는 중이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한 나라의 리더는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과 비례할 뿐이다. 새해 초부터 야당 지도자의 피습 소식이 멀리 남쪽 도시로부터 전해져 오고, ... 혹시 사람들은 알련지 모르겠지만, 야당 지도자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 대부분이 구속되었거나 검찰 고발을..

2023년의 대한민국이 싫다

두 아이의 아빠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너무 화가 나는 하루였다. 검찰, 경찰, 언론의 합작품이다. 그리고 자극적인 컨텐츠를 올리는 유튜버들과 무관심한 척하는 대중들의 묵인 아래 이루어진 일이다. 실은 며칠 전 아파트 화재 속에서 어린 딸들을 안고 뛰어내린 아빠의 부고 기사를 보면 열이 받아있었다. 방 안에서 담배 때문에 불이 났고, 그 담배를 피운 이가 70대 노인이라는 사실에, 그냥 지금 늙은이들이 젊은이들의 앞날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정치든, 경제든 ... 평일 교외 카페를 가보라. 한껏 꾸며 입고 이야기를 나누는 노인들로 가득하다. 실은 노인이라고 부르기도 그렇다. 60대, 70대여도 아직 젊게 보이니까. 그들은 젊은이들에게 자신들이 젊을 때 열심히 일해 쌓아 올린 부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