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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이성적인 화해 Les accommodements raisonnables 

장 폴 뒤부아(지음), 함유선(옮김), 현대문학 





출처: http://lci.tf1.fr/culture/livres/2008-08/le-nouveau-jean-paul-dubois-est-savoureux-4873947.html 




바로 그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차이를 고려하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또한 집중해서, 현재에 그대로 머무르는 능력이었다. 특히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아닌 걸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육체의 살결도 배의 연한 살도 손가락의 기교도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어느 정도 흥분이 지나가자, 우리의 신체를 연결하는 뼈 마디마디가 모두 별 차이가 없어졌다. (안나든 셀마든) 누구의 육체든. 그렇다. 만일 내가 무엇인가에 이르고 싶다면, 생각할 필요가 있는 그런 방식이었다.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부드럽게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그녀가 요구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오래 모든 걸 계속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 307쪽 



우울증에서 벗어난 아내와의 섹스. 폴은 '누구의 육체'든, 그렇다며, 자신을 뒤돌아본다. 우리는 이 소설 내내 어떤 궁지에 처한 것으로 보이는 중년의 프랑스 남자를 만나지만, 그가 왜 그 지경에 몰렸는지 알지 못한다. 아버지의 변화, 우울증에 걸린 아내, 도망치듯 프랑스를 벗어나 미국으로 온 주인공 폴. 


몇 해 전 나에게 놀라운 감동을 안겨주었던 <<프랑스적인 삶>>과 달리, <<이성적인 화해>>는 밋밋하고 까닭없는 방황이 이미 진행된 채로 소설은 시작했고 시작과 동시에 그 결말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결국 모두 제 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 


스크립터 닥터(script doctor)인 폴의 아버지 스테른, 아내 안나, 그리고 자녀들,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건너간 헐리우드의 휘트먼, 셀마, ... 폴의 주위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동들, 폴과의 대화, 교감을 통해 소설은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보여준다. 한국에 사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그렇다고 공감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장 폴 뒤부아는 인물에 대한 사려깊은 태도와 쓸쓸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회고조의 문장으로, 내가 읽었던 <<프랑스적인 삶>>에서처럼 뒤부아만의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작 <<프랑스적인 삶>>에 비한다면, 이번 소설을 평이했다. 


도리어 소설보다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도망칠 수 있었던 폴이 부러웠다. (작중 인물의 환경을 부러워하다니!) 툴루즈에서 LA로. 우울증을 이겨내지 못한 채, 스스로 요양소로 들어간 아내 안나. 그 사이 폴은 안나의 젊은 시절을 연상시키는 셀마를 만나 육체적 사랑을 속삭인다. 하지만 안나가 우울증에 빠져있듯, 셀마는 마약에 취해 있고, 파티를 할 때, 섹스를 할 때, 그저 쓸쓸했다. 이성적인 화해란,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의 방황 끝에 제 자리로 돌아온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그런 희망을 꿈꾸는 걸까. 셀마와의 짧은 밀애는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안전한 방황인 셈이다. 안나는 미국으로 오지 않았고 셀마는 프랑스로 가지 않는다. 갈등은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우리가 왜 변하는지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어쩌면 변화란 의미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갈테니 말이다. 


장-폴 뒤부아의 <<프랑스적인 삶>>은 권하지만, 이 소설은 권하지 않겠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이미 읽은 이들에겐 이 소설 몇 배의 감동을 <<프랑스적인 삶>>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 보수적인 기준에서 권하지 않겠다는 뜻일 뿐, 이 소설은 여느 작가들의 소설들보다는 훨씬 좋다. 






이성적인 화해 - 6점
장폴 뒤부아 지음, 함유선 옮김/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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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ssandro Magnasco, Sacrilegious Robbery, 1731, Oil on canvas, Quadreria arcivescovile, Milan

이탈리아 로코코 화가인 Alessandro Magnasco의 작품은 어딘가 어둡고 무거우며 침울하고 그로테스크하다. 바로크적이거나 로코코적이기 보다는 매너리즘에 더 가깝다. (내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이런 느낌을 환기시키는 그림을 떠올린다면, 'Stil Life'류의 작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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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Simeon Chardin, Still Life (The Silver Tureen), 1728,  Metropolitan Museum of Art

둘 다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목적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동일하나, 작품의 스타일은 판이하게 틀리다. 샤르댕의 정물화는 정성스럽게 그렸다는 것이 한 눈에 드러나지만, 마그나스코의 작품은 거친 붓질이 두드러진다. 이는 아래의 'Three Camaldolite Monks at Prayer'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제노바에서 1667년에 태어난 Magnasco는 밀라노와 제노바를 오가며 작품활동을 한다. 다행히 그의 어둡고 그로테스크하며 신비적이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작품 세계는 소수의 지지자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로코코 시대의 미술이라고 하면, 밝고 화사한 색채, 공기에 떠서 날아다니는 기분이 들 정도의, 마치 현실 세계 바깥의 세계를 향한 듯한 황홀감, 그런 풍부한 색채의 세계 속에서 풍겨나오는 멜랑콜리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로코코 미술도 두 가지 경향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귀족적인 로코코, 다른 하나는 부르조아적 로코코.

우리가 로코코 화가로 알고 있는 샤르댕이나 그뢰즈는 후자에 속하는 예술가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로코코의 화풍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귀족적 삶의 모습을 그리기 보다는 부르조아 시민의 모습, 그들의 가치관, 종교관을 대변하는 작품을 그린다. 그 중에서 영국의 윌리엄 호가스는 부르조아의 편에서 작품을 그린 대표적인 화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Magnasco의 경우에는 이러한 로코코 미술과는 다소 거리를 두고 있다. 위의 'Sacrilegious Robbery'은 교회를 약탈하는 도적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Magnasco가 이런 주제의 작품을 그린 것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그리고 이 작품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알려져 있지 않다.

로마시대 이후 이탈리아가 통일 국가를 형성하게 되는 건 19세기에 들어서부터다. 그 이전 시기는 크고 작은 전쟁과 혼란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약간의 도움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오래 전부터 귀족와 시민, 구교와 신교, 국가와 종교의 갈등은 드러나기 시작하였으나(카를링조 르네상스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나게는 되는 것은 르네상스 시기부터이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로마 교황와 지방 군주와의 경쟁이 두드러졌다. 이탈리아와 인접한 스페인, 프랑스, 독일/오스트리아가 군주 국가로 자리잡은 것과 비교해 이탈리아의 혼란은 이례적인 것이었다. 특히 로마에 교황청이 있는 이탈리아는 이러한 갈등이 더욱 두드러졌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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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ssandro Magnasco, Three Camaldolite Monks at Prayer, 1713-14, Oil on canvas,
Rijksmuseum, Amsterdam

Camaldolese는 베네딕토 수도회의 한 일파로 알려져 있다(자세한 정보는
http://www.reference.com/search?r=13&q=Camaldolese). 이 작품에서 수도사의 경건하고 성스러운 모습보다는 고통스럽게 기도하는 모습이 보인다. 바로크를 지나 다시 매너리즘을 향한 듯한 작품 스타일에서 관람자는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다. 위의 작품은 교회를 약탈하는 도둑의 무리를, 아래의 작품은 신을 향해 기도하고 있지만,  애처로움만을 환기시킬 뿐이다.

바로크 시대는 절대 권력의 시대였으며, 심정적으로는 매우 안정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파스칼과 같은 불안한 영혼이 있기도 하였으나, 불안한 영혼마저도 안식을 기댈 어떤 곳이 존재했다. 하지만 로코코 시대로 오면 달라진다. 이제 불안한 영혼이 안식을 취할 곳이 없어진다. 로코코의 화사한 세계 밑에는 마그나스코의 작품과 같은 어떤 세계가 숨어있다. 로코코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유미주의적 해답이나 정치적 해답을 찾았으나, 마그나스코의 경우에는 이미 호소력을 잃어버린 종교에서 그 답을 찾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또는 지나가버린 과거를 떠올리면서, 현재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보는 이들에게 강력한 도덕적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다만 그렇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가 즐겨 그렸던 것들 중에는 '폐허'도 있었다. 그의 작품들을 더 보고 싶다면, 아래 주소를 방문해보길 바란다.
http://www.wga.hu/frames-e.html?/html/m/magnasco/index.html 

위키피디아에서 Magnasco 항목을 확인할 수 있다.
http://en.wikipedia.org/wiki/Alessandro_Magnasco 

Comment +2

  • noi 2008.01.04 23:34 신고

    그림 맘에 와닿습니다.. 단정하고 발랄한 그림보단 항상 처절하고 거칠고 비틀린 그림이 좋으니 역시 제 성격이 삐뚤어진 건가 의심하게 됩니다요. 삶을 아름답게 비추려는 시도는 일단 먼저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되니 원.-_-; (참, 지극히 지엽적인거 하나.. 이탈리아 사람이니 '마냐스코'가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영어발음으론 마그나스코가 되겠지만요.^^)

    • 로코코 미술에 대해 이야기해야 될 때가 있었는데, 그 때 흥미롭게 본 화가예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로코코 미술과는 사뭇 달라, 기억해두고 있다가 최근 메모들을 정리하다가 한 번 정리해봤어요. : )
      '마냐스코'라고 발음해야 되는 군요. 이탈리아어는 알파벳 그대로 읽으면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처절하고 거칠고 비틀린 그림'의 대표는 '반 고흐'죠. 반 고흐만큼 처절하고 거칠고 비틀린 그림을 그린 사람도 드물답니다. 우리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 고흐를 좋아하니까, 다들 그렇겠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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