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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갤러리 +17



어느 블로그에 들어가 주말에 전시를 보았다는 글을 보고, 전시를 보러다니는 사람은 많은데, 왜 미술 작품을 구입하는 사람은 적을까, 짧게 생각하고 적었다. 아직도 작가들을 만나면 작품 가격 높이지 말고 일년 생활비, 작품 제작 기간을 고려해서 최대한 낮은 가격에 팔면서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작품이 소장될 수 있도록 하라고 조언하지만, 그게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또한 잘 알기에, 말하곤 후회한다. 어찌되었건 내 인건비도 건지지 못하고 떠나온 미술계에 대해선 아직도 관심이 가고 수시로 전시를 보러가고 작가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탓에, 미술작품을 판매하는 것이나 구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그것을 대중화시키는 건 참 멀리 있는 일이라는 게, 힘 빠지게 한다.  



미술작품을 사기 위해선 여러 제반 조건이 따라야 한다. 돈은 그 다음 문제다. 


우선 작품을 걸거나 설치할 공간이 있어야 한다. 회화를 구입할 경우에는 그 작품을 걸 수 있는 빈 벽이 있어야 하고, 설치나 조각일 경우에는 그 작품을 놓아둘 빈 공간이 있어야 한다. 


공간이 확보된 다음에는, 그 공간에 어울리는 최적의 작품을 구해야 한다. 집이 화이트큐브가 아닌 이상, 마음에 든다는 건 그 작품을 걸 수 있는 환경(분위기)가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과 집에 걸 수 있는 작품은 전적으로 다른 일이다. 혼자 산다면 좋겠으나, 가족과 함께 산다면, 집안에 작품을 둔다는 건 같이 사는 사람들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일이다. 몇 해전에 만났던 어느 컬렉터는 아예 빈 방 하나에다 작품들을 놓아두고 있었다. 아이도 없었고 그만큼 경제적 능력도 되는 덕분에 다수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었지만, 예외적인 경우다. (대부분의 전문 컬렉터는 이런 예외적인 경우가 많다) 


아이가 있다면 교육적 효과까지 고려해야 한다. 표현방식이나 소재/주제가 과격하거나 일반인이 소화시키기 어려운 작품(대부분이 현대미술이겠지만)은 집 안에 놓아두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되면 팔 수 있는 작품은 지극히 제한적이 된다.


일본 미술 시장이 작은 작품 위주로 형성된 것은 작은 것을 좋아하기도 하거나와 무엇보다 실내공간이 작은 탓이다. 상대적으로 미국이나 유럽에선 꽤 큰 작품들이 잘 팔리는데, 컬렉터 대부분이 다들 집이 크기 때문이다. 


미술작품을 사거나 판매한다는 건 의외로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하는 탓에, 최초의 구입자가 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막상 몇 백만원 수준을 자금을 마련했다고 하더라도, 작품 구입까지는 엄청난 고민을 하고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가는 애호가들의 극소수만이 미술작품 구입자가 될 수 있다. 


한때 내 꿈은 내 주위의 젊은 동료들이 1년 할부로 몇 백만원 수준의 작품을 구입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걸 하려고 보니, 먼저 갤러리나 미술관에 그들을 오게 만들어야 했고, 그들 스스로 작품 구입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이건 불가능. 그 다음은 취미 미술하는 이들로 하여금 컬렉터가 되게 하는 길이었지만, 한국은 도리어 취미로 미술에 발을 들인 이들이 몇 년의 수련을 통해 전업작가가 되고 그들도 작품 판매 대열에 합류하는 기현상이! 이들 중에는 뒤늦게 자신의 소질을 깨닫아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에 매달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정말 취미로 하면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나 현대 미술에 대해선 관심과 식견을 갖추지 못한 채 그저 감투 놀이만 할 뿐이었다.  


결국 내 인건비도 건지지 못한 채 쫓기듯 미술판을 나왔지만, 아직도 미련을 가지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젠 그저 수줍은 애호가로 남기로 했지만, 아직도 이런 포스팅을 올리는 걸 보면, 아직도 미련이 남아있는 것이다. 


내 경우에도, 가지고 있는 몇몇 작품을 보이지 않는 구석에 쌓아둘었다. 너무 현대적이라 같이 사는 이들의 동의를 구하지 못해 벽에 걸지 못했다. 어떻게든 이사를 가야 하는데 말이다. 



***


미술작품 구입에 대한 포스팅을 여러 개 올렸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된 글을 아래 글 밖에 없구나. 시리즈로 한 번 올려볼까. 


2011/08/13 - [예술의 우주/예술마케팅] - 미술 투자보다 먼저 미술 감상의 태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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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 그리고 '정물화: 살아있는 것의 소고' - 김주연 사진전

2016.4.7 - 5.3, 트렁크갤러리, 서울 





트렁크갤러리도 참 오랜만이었다. 설치 작가로 알고 있었는데, 사진 작품으로 만났다. 2008년의 쿤스트독이었나, 아니면 다른 전시에서였나, 김주연의 작품을 만난 적이 있다. 선명한 작품 스타일로 한 번 보면 기억하게 된다. 그 동안 다양한 공간/물건에 식물을 키웠는데, 이번엔 옷이다. 



김주연, 존재의 가벼움I -2, 사진, 피그먼트 프린트, 144×108cm, 2014



시간은 현대 미술에 있어서 중요한 화두다. 김주연은 그 위로 생명의 시작과 끝은 넣으며 식물이 자라고 있는 공간을 탈세속화시킨다. 세속에서 일정 기능을 수행하는 어떤 것에 씨앗을 심음으로서, 그것이 가지고 있던 세속의 기능을 잃게 만든다. 그리고 마치 버려진 물건처럼, 버려졌다가 기적처럼 식물에 의해 전혀 다른 기능과 목적으로 되살아 나는 듯하다. 


그런데 이건 무엇을 지향하는 걸까? 여기에선 고객을 갸웃거릴 수 밖에 없다. 왜냐면 자연 속에 버려지는 모든 것들 위로는 무조건 어떤 것이 자라기 때문이다. 그게 식물이든 곰팡이든.  결국 작품들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어떤 공간을 그대로 옮겨온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깊은 산 속에서 마주할 때와 갤러리에서 마주하는 것이 다를 뿐. 

  


김주연, 정물화살아있는 것에 대한 소고I, 사진, 90×60cm



갤러리에서 인류 문명을 부정하는 작품을 만나, 우리와 무관한(혹은 거부하는) 자연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현대 문명에 대한 깊은 의문과 우려가 될 수 있겠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것들 대부분, 그것을 위치한 콘텍스트를 상실하는 순간 전혀 다른 존재가 되기 때문에. 


그래서 김주연의 작품들은 자라나는 식물 속에서 우리를 다시 묻는 일종의 질문이며 반성이 된다.   




김주연, Metamorphosis, 아시바구조물, 신문지 약 18000부(3톤), 씨앗식물, 가변설치,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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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전시 소개 어플리케이션인 '올댓 주말미술여행'을 가지고 있은 지도 이제 2년이 되어간다. 초반에는 매월 몇 개씩 올리곤 했는데, 바쁜 직장인이 주말 전시 보러 가는 것도 빠듯한 탓에 개점 휴업 상태였다. 이제서라도 반성을 하며, 전시 정보만 담고 있는 글이라도 자주 올릴까 한다. 나도 놓치는 전시 없고 여길 방문하는 이들에게도 약간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주말미술여행'은 구글플레이나 T스토어에 가면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 


가지 않은 전시를 소개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전시 보러갈 시간은 없었고 주말미술여행은 개점 휴업 상태가 되었다. 심지어 전시를 보았지만, 리뷰를 쓰지 못하면 올리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소개하기도 전에 전시가 끝나는 경우가 생겼다. 그래서 이제서라도 볼만한 전시 정보만이라도 올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원래 가을에는 전시가 많다. 여름은 확실히 비수기이고.







아니쉬 카푸어 Anish Kapoor

10.25 - 2013.1.27

삼성미술관리움 Leeum, Samsung Museum of Art




먼저 추천할 만한 전시는 아니쉬 카푸어 전이다.  현대 조각의 최전선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가도 좋을 것이다. 입장료는 8,000원이지만, 이왕 가는 김에 리움의 상설 전시도 같이 보면 어떨까. 





주명덕: 시작과 시작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

2012.10.10 - 2012. 11. 25 



주명덕의 작품을 만나는 것은 우리의 어제와 오늘을 만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시작'이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언급한 것일까. 평일 사당역에 내리게 된다면, 사당역 근처에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에 들려 주명덕의 사진 작품을 보면 좋겠다. 




한국현대미술 : 시간의 풍경들 Landscape of Moment

10.9 - 11.25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에서는 곧잘 주목할 만한 기획전시를 열곤 한다. 이번 전시는 한국현대미술, 다시 말해 컨템플러리 아트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 



텍스트가 된 인간 : 이응노, 줄리안 오피 & 소피 칼

TEXT & HUMAN : Lee Ungno, Julian Opie & Sophie Calle

9.26 - 2013.1.13

대전이응노미술관



대전에서 이응노와 만나는 줄리안 오피와 소피 칼을 볼 수 있다. 특히 소피 칼이 기대된다. 이응노의 작품은 이미 많은 이들이 보았겠지만, 소피 칼은 드문 기회가 될 테니 말이다. 




(불)가능한 풍경 (Im)Possible Landscape

11.8 - 2013.2.3

플라토 PLATEAU 


플라토의 기획전시이다. 올 가을부터 내년 늦겨울까지 하니, 전시 일정은 넉넉하다. 한국 현대 설치 미술을 볼 수 있는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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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외출을 했고 몇 개의 전시를 봤다. 아이 웨이웨이는 '감각적 미학으로 본 정치적 풍경'(이런 표현이 정확하진 않지만, 그냥 '감각적 정치 미학'이라고 하고 싶은데, 이건 더 모호한 것같아서..)을 잘 포착한다. 그래서 중국 내에서는 꽤 위험한 예술가이지만, 외부의 시각에서 본다면 그는 현대 중국 미술에서 가장 흥미로운 작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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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ected works from the Francois Pinault Collection
프랑소와 피노 컬렉션: Agony and Ecstasy
2011.9.3 - 11.19
SongEun ArtSpace


스산한 늦가을 바람이 부는, 오후의 청담동 거리. 연이어 있는 명품 가게들 옆 작은 골목길 안에 송은아트스페이스가 있었다. 1층에는 하얗고 투명한 식당이 있고(레스토랑이라고 하면 고급스럽고, 식당이라고 하면 너무 평범해지나...), 위층으로는 송은아트스페이스다. 

2층에는 다카시 무라카미(Takashi Murakami)의 작품들이, 3층에는 제프 쿤스(Jeff Koons)와 신디 셔먼(Cindy Sherman)이, 4층에는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가 있었다. 아, 작품 가격을 묻는 실례는 저지르지 말자. 실은 별도의 공간이 없다면 다카시 무라카미의 작품은 소장하고 있기도 어려울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프랑소와 피노(Francois Pinault)는 누구인가? 

"프랑소와 피노는 구찌, 알렉산더 맥퀸, 스텔라 매카트니 등의 럭셔리 브랜드를 보유한 PPR 그룹의 수장으로, 세계적인 경매회사 크리스트(Christie's)를 소유하고 있다. 또한 2천여 점에 이르는 방대한 소장 작품의 전시를 위해 이탈리아 베니스에 팔라조 그라시(Palazzo Grassi, 2006)와 푼타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 2009) 미술관을 설립하여 수준 높은 기획 전시로 베니스 비엔날레와 함께 주요한 현대 미술 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 전시 소개 중에서




2층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선연하게 들어오는 다카시 무라카미의 'My Lonesome Cowboy'는, 솔직히 너무 아름다웠다. 그는 현대 미술이라는 스펙트럼 속에서 질풍노도의 소년기에서부터 지쳐버린 노년기의 따스한 추억까지 가로지르는 밝은 애니메이션 풍의 성적인 로망을 과감하게, 가벼운 터치로, 유쾌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My Lonesome Cowboy
Oil, acrylic, fiberglass and iron, 245*116.8*91 cm
* 이미지출처: http://kyokaze07.typepad.com/blog/2010/09/takashi-murakami-my-lonesome-cowboy-viewer-discretion-is-advised.html  (다카시 무라카미는 그의 다른 조각상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개의 edition을 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일본에서 제작하는 애니메이션 피규어와 뭐가 다른 걸까. 단지 크기만... 하지만 일본 팝아트는 일본적 속성을 잘 드러내면서도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의 가닥을 찾아낸 듯 보인다.(아직 한국의 예술가들은 헤매고 있지만) 

4층의 데미안 허스트는 확실히 천재임에 분명하지만, 너무 도발적이고 공격적이며, 심지어 불쾌함을 자아낸다. 그의 죽음에 대한 탐구는 병적일 정도여서, 솔직히 뭐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이 점에서 그는 확실히 모더니스트이다. 그는 실존적 부조리의 21세기적 해석을 하고 있으며, 그의 작품 대부분은 실존적 죽음 - 끊임없이 시간 속에서 '죽어가는 나', '나의 육체'에 대한 조형예술적인 반영이다.


데미안 허스트
Matthew, Mark, Luk and John, 1994-2003 
* 이미지 출처: http://www.whitewallmag.com/2011/08/30/14093/ 


소의 머리를 그대로 옮겨왔다. 소의 속성을 4대 복음서의 성인들과 연결지어 만들었으며, ... 실제로 보면 매우 끔찍해서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작품성을 떠나, 보는 것 자체도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일 것이다.

그 외 제프 쿤스의 작품와 신디 셔먼의 작품이 있었지만, 다카시 무라카미와 데미안 허스트 앞에서 너무 얌전했다.



* 이 글이 올라온 시점에, 이 전시는 끝났습니다. ㅜㅜ. 실제 작품을 보고 난 다음 더 강력하게 추천했어야 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다카시 무라카미의 작품과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은 당분간 한국에서 보기 어려울 것같으니깐요. 성의 없는 글쓰기라도 자주 업데이트해야 겠다고 스스로 다짐해봅니다. (일정에 맞춘 정보가 더 중요하니..)



올댓 주말미술여행 출시
미술 전시 정보/리뷰, 미술 서적 및 미술 관련 칼럼 등으로 이루어진 '올댓 주말미술여행'이라는 어플을 출시하였습니다. 이 어플은 SKT의 지원을 받아 TNM에서 제작한 콘텐츠 어플입니다. 매주 업데이트를 할 예정으로 있으며, 금요일이나 토요일, 이 어플로 주말에 가볼 만한 전시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많은 이용 바라며, 주위에도 많이 추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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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제(均齊) - 김수영 展
원앤제이갤러리(www.oneandj.com)
2011.9.1 - 10.2




사각의 캔버스 속, 빼곡하게 들어찬 창들을 가진 건물의 숨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들리는 듯하다. 그건 마치 동물의 피부와도 같다. 마치 거대한 식물의 이파리같다. 현대의 건물들, 정확히 말하면 모던 건축물의 외벽을 옮기는 그의 페인팅(회화)는 딱딱하고 건조하지만, 섬세하고 참을성이 있다.

실은 그의 작품 속에 건물들은 어제 밤에 토라진 애인같다. 그의 작품이 차갑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창이 닫혀 있고 벽만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건 거대한 도시에서 마주하게 되는 차가운 건물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으로 들어온 살아있는 건물이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우리가 늘 눈으로 마주하는 존재,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 마음 속에 비친 이미지들. 




그는 지금 건물의 마음을 알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건 미술사적인 접근이 아니라, 그저 눈에 비치는 불가해한 건조함으로 서 있는 현대식 건물에 다가가기 위한 심리적 접근이다. 결국 이 차가움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 가회동에 위치한 원앤제이갤러리는 인상깊은 페인팅 작품들을 선보이는 걸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 이는 제 취향과도 맞아 그럴 것입니다. 전시를 지난 달에 보았으나, 이제서야 리뷰를 올리네요. 작품에 대한 글을 쓴다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돈 받고 하는 짓이 아니라고 함부로 쓸 수도 없고, 또 돈 받고 글을 쓰기도 하니, 다소 어쩡정한 글쓰기 모드가 몇 해째 이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진은 직접 갤러리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 주말미술여행 어플 관리가 요즘 뜸했습니다. 성실히 할 것입니다. ^^


올댓 주말미술여행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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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미술산책 가이드
류동현,심정원 공저, 마로니에북스





"발을 내딛는 순간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세상에는 그런 매혹적인 길이 있다. 한 번 내딛으면 나도 모르는 새 푹 빠져 드는 그런 길. '미술'이라는 길이 바로 그렇다. 이 책은 미술에 관심 있는 독자들을 미술 현장으로 이끌기 위해 쓴 가이드북이다."



저자들은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말미술여행'을 운영하기 시작한 다음부터 미술 전시에는 관심있으나,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 없을까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 책 한 권을 서점에서 샀습니다. 책은 무척 좋습니다. 문장은 평이하면서도 미술 전문가들이 일반 관람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다 적고 있었습니다.


주요 미술관, 갤러리들 뿐만 아니라 미술 감상법에 대해서도 적고 있는 이 책은 저자들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씌여져, 쉽고 재미있으며, 귀에 쏙쏙 들어온다고 할까요. 길을 가다 잠시 쉬어가는 카페에 앉아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읽어도 될 정도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읽기 쉽다고 필요한 내용을 놓치지 않습니다.  올 가을 좋은 전시들이 여러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오래 미술을 사랑할 작정이라면, 미술 전시를 보러가려는데 뭔가 가이드북 한 권 필요하신 분들께 이 책을 선뜻 추천합니다.






서울 미술산책 가이드 - 10점
류동현.심정원 지음/마로니에북스





올댓 주말미술여행 출시
미술 전시 정보/리뷰, 미술 서적 및 미술 관련 칼럼 등으로 이루어진 '올댓 주말미술여행'이라는 어플을 출시하였습니다. 이 어플은 SKT의 지원을 받아 TNM에서 제작한 콘텐츠 어플입니다. 매주 업데이트를 할 예정으로 있으며, 금요일이나 토요일, 이 어플로 주말에 가볼 만한 전시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많은 이용 바라며, 주위에도 많이 추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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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F 2011
(Korea Interanational Art Fair 2011)
2011. 9. 22 - 9. 26

코엑스 1층 A&B Hall   http://kiaf.org


어제 퇴근 길에 키아프에 다녀왔습니다. 국내 최고의 국제 아트 페어라고 하지만, 국제적인 아트페어와 비교한다면 갈 길이 먼 행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국 미술계 내에서도 논란이 많은 행사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생각는 미술 쪽에 한 때 몸 담았던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고, 한국의 미술 애호가들에게 이런 행사는 놓치면 안 되는 아트페어임에는 분명합니다. 

여유가 되어 홍콩 아트페어나 상하이 아트페어, 혹은 유럽이나 미국에서 열리는 아트페어를 가지 못할 바엔, 키아프는 (다소 미흡하긴 하지만) 세계 미술 시장에서 주목받는 작가들의 작품이나, 작품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고 해외 갤러리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나라 미술 동향에 대해 물어볼 수도 있는 좋은 기회이니깐요.

입장료가 15,000원 정도로 다소 비싸네요. 대신 도록은 25,000원입니다. (몇 년 전에 갔던 프랑스의 피악FiAC은 입장료와 도록을 합쳐 약 10만원 정도 쓴 것과 비교한다면 저렴한 아트페어입니다.)
 
길게 포스팅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다음 주 월요일까지 하는 행사라 리뷰는 이 정도에서 끝낼까 합니다. 주말에 시간된다면 한 번 놀러가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


마음에 드는 몇 작품을 카메라에 담아보았습니다. Issac Julien의 작품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보았는데, 실제로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네요. 그리고 김택상의 작품은 제가 블로그를 통해 언급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작품은 더 좋더군요!

Pertti Kekarainen는 처음 보는 작가였습니다. 사진 작품인데, 꽤 흥미롭더군요. 자료를 한 번 찾아볼 생각입니다. 도록도 한 권 구입했는데, 서재 책상 위에 올려놓고 펼쳐보지도 못했네요.  



Issac Julien
Glass House, Prism(Ten Thousand Waves)
180 x 483 cm, 2010 



Pertti Kekarainen 




김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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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과연 한국에서 순수 미술 작품 투자로 돈을 버는 사람은 몇 명쯤 될까? 또는 반대로 돈을 잃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 돈을 벌고, 얼마나 많은 돈을 잃을까?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속 시원히 말해주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 떼돈을 번 사람은 없다. 아주 오래 동안 미술 작품 수집을 해 온 이라면 소장한 작품들 중 일부를 팔아 수익을 가져갔을 지 모르지만, 아마 그가 챙긴 수익은 그 동안 그가 투자한 금액에 비한다면 초라할 것임에 분명하다. ‘미술 투자’라는 단어가 국내에 유행한 것이 불과 몇 년 되지 않았고, 장기 투자의 대표적인 방식으로 통하는 ‘미술 투자’에 대한 수익을 논하기에는 아직 한국 미술 시장은 그 역사가 너무 짧고 너무 불투명하다.

반대로 이런 질문을 해보자. 과연 미술 작품은 투자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언제부터 투자의 대상이 된 것일까? 엄밀하게 말해 미술 작품은 투자의 대상이 아니다. 미술 작품은 감상의 대상이지, 투자의 대상이 아니다. 대신 진귀하다는 측면에서 수집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수집가들 사이에서 거래될 순 있지만, 그들에게서 조차도 미술작품은 투자 이전에 감상과 향유의 대상일 것이다.

이렇게 미술 작품을 바라볼 때,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의 순수 미술에 대한 시각이 보다 명료해지고 뚜렷해진다. 투자의 대상으로 바라볼 때, 미술 작품은 어렵고 불투명하고 마치 속는 기분이 들겠지만, 감상과 향유의 대상으로서의 미술 작품을 볼 때면, 작품은 보는 이들마다 말을 건네고 손을 내밀 것이다.

현대 미술 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을 한 것은 프랑스 인상주의 작품들이 신대륙(미국) 전시가 시작되었던 때쯤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 충분한 경제력을 가졌지만, 인상주의 작품을 갖고 싶었던 미국인들의 수집 열풍이 인상주의 작품들의 가격을 급등하게 만들었다. 감동적이고 진귀한 예술 작품 하나 집에 걸고 싶어한 그들의 욕구가 현대 미술 시장의 크기를 키운 것이지, 돈을 벌려는 탐욕적인 목적으로 미술 시장이 탄생하고 급성장한 것은 아니다. 수량은 한정되어 있고 사려는 사람이 많을 때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상황이 이렇게 되면, 당연히 위작이 나오게 되고 누군가는 대량으로 구입해 다시 재판매를 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현대 미술 시장은 성장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솔직히 무턱대고 이제 미술 투자가 트렌드니, 대세니 하는 말을 하면서 잔뜩 어깨에 힘을 주고 작품을 보는 이들을 보면, 한숨부터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미술 투자에 대한 투자 방법이나 노하우, 또는 금융 지식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다.

르네상스 시대의 수집가들에게 예술 작품은 감상의 대상이자, 희소성의 가치를 지닌 것이었으며, 그 이전 시대라면 인간의 손으로 만들기 어려웠던 첨단 기술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그 수집가들 중의 일부는 탁월한 안목과 혜안으로 천재적인 예술가들의 삶을 지원하며 작품을 구입해 갔다. 그리고 그들은 그 작품을 재판매하여 수익을 얻지 않았다. 도리어 저택의 회랑에 작품을 걸어두고 오는 손님들에게 그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거기에서 ‘갤러리’라는 단어가 나온 것이다.

그들이 수집했던 작품들 중의 대부분은 지금의 눈으로 보자면, 이름없는 화가들의 작품들이 되었고, 심지어는 그림보다 액자가 더 높은 가격이 매겨지기도 한다. 가끔 변하지 않는 명성과 예술성으로 후대에까지 인정받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매우 드문 예라고 할까. 아마 모네, 피사로, 카유보트, 르느와르와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젊은 시절, 혹은 무명 시절을 떠올린다면, 그들이 계속 작품 활동을 했고 살아남아 평단과 대중의 인정을 받은 것이 참으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현대 한국 미술에서는 이우환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지만,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 도리어 그 당대는 무시당하고 무명에 가까웠던 예술가가 후대에 명성을 얻고 그 진귀함으로 인정받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할까. 카라바지오가 그랬고 얀 베르미르가 그랬으며, 반 고흐도 또한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이런 예는 무수히 들 수 있다)

미술 작품 투자만큼 철저하게 시대를 앞서가는 안목과 감식안, 또는 통찰과 혜안이 필요한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미술 작품 투자라는 생각을 잊어버리자. 그리고 그건 너무 먼 이야기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이 중에 천 억 원 정도 있다면 한 번 해보라고 하고 싶지만, 그렇지 않다면 미술 작품 감상부터 할 줄 아는 제대로 된 수집가부터 되는 것이 빠른 길이다.

그렇다면 미술 감상의 태도는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기 전에 먼저 나는 이 글을 읽는 이에게 시집을 이 때까지 몇 권을 읽었는지 묻고 싶다. 한 권? 두 권? 초등학교 시절부터 우리는 시 쓰기, 시 읽기를 배우지만, 정작 시집을 돈 주고 사서 읽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뭐랄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는 우리가 사는 은하계 너머의, 아주 이질적인 어떤 존재가 되어가는 느낌이랄까. 그림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부터 그림 보기, 그림 그리기를 배우지만, 정작 나이가 들어 1년에 미술관에 몇 번이나 갈까?

정직하게 고백하자. 그만큼 시 읽기나 미술 작품 보기는 너무 어려운 일들 중의 하나다. 미술 작품 감상이란 어려운 일이다. 맨 처음엔 미술 작품을 보기는 하지만, 그냥 보는 것일 뿐, 아무 것도 모른다. 시 읽기도 마찬가지다. 그건 어려운 일이다. 한 곡의 음악에 익숙해지기 위해 우리 귀는 무수하게 반복 청취를 한다. 그런데 미술도 마찬가지다. 미술 감상의 태도는 먼저 많이 보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보고 뭔지 몰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그건 어려운 종류의 일이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예로부터 제대로 된 감상을 즐길 수 있는 이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 *
위 글 중간에 작품을 넣으려고 하였으나 ,문맥이 끊어지는 듯해 아래에 도판 몇 개를 옮기고 설명을 간단하게 달았다. 작품이미지는 모두 위키피디아(wikipedia.org)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Judith Beheading Holofernes(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Oil on canvas 
145 x 195 cm, 1598~1599 (로마 국립 고전회화관 소장)

16세기 말 17세기 초에 이런 작품을 좋아했던 이가 몇 명쯤 될까? 그렇다면 현대에는? 솔직히 요즘 시대에도 이 작품을 집 거실에 걸어둘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된 감상 태도를 가지란 어려운 일이다. 카라바지오는 잘 알려져 있듯이 난봉꾼에 살인자였으며, 도피자였다. 그리고 그의 과격한, 시각적 진실에 무게를 두었던 바로크적 태도로 인해 그는 몇 세기 후에야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Johannes Jan Vermeer
The Girl with a Pearl Earring(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Oil on canvas,
44.5x39cm, 1666 (마우리츠하이스 왕립미술관 소장)

얀 베르메르는 19세기 후반에서야 비로소 유럽 전역에 알려지기 시작한 예술가이다. 현대에는 네덜란드 바로크 양식의 대표적인 예술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불과 100년 남짓이다. 이것도 너무 신기해서 베르메르의 작품이라고 알려진 작품들 중 일부는 위작으로 이미 판명되기도 했다. 19세기 후반 뵐플린을 위시한 걸출한 미술사가들로 인해 바로크 미술이 제대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으며, 이 때 베르메르도 새롭게 부각되었으리라 추측해본다.



Vincent Van Gogh
Prisoners Exercising
Oil on canvas
80×64cm, 1890 (The Pushkin Museum of Fine Art)

반 고흐의 작품은 여러 번 보았다.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만난 반 고흐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거친 붓 터치로 내 마음을 후벼파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뭐랄까. 뾰족한 호미 끝으로 내 가슴을 긁는 듯한... 종종 나는 반 고흐를 좋아한다는 이를 만나면, 아주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하곤 한다. '반 고흐가 정신병자라는 건 알고 계시죠? 우리는 정신 병자가 그린 작품을 좋아하고 있으니, 우리에게도 정신병적인 기질이 다분한 거랍니다." 미술 작품 감상이란 종종 자기 영혼(정신)의 내밀한 영역까지도 작가나 작품에게 기대는 것을 의미한다. 감상이란 작품을 받아들이고 감동받는 과정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좋은 예술 작품들은 예술가들의 마음이 담겨져 있고 좋은 감상이란 그 마음을 받아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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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유할 수 있는 것이 예술! 좋은 글 읽고 갑니다. ^^

    • 종종 트렌디한 현상이 본질을 호도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트렌드에 매우 민감한 것도 좋지 않은 듯 해요. 예술은 즐겨야 하는 거죠. 감동받지 못하면, 쓸모없는 거예요. 순수 예술이 어려운 이유는 감동받기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간이 투여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만, 나중에는 가치 있는 취미활동이 될 수 있죠. ^^

  • 쇼팽 검색을 하다 들어오게 되었는데 여러 글 읽고 갑니다.



안녕하세요.
‘파아란 영혼’을 운영하고 있는 지하련(김용섭)입니다.

제가 블로그를 운영한 지도 벌써 몇 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서양미술과 관련된 책도 한 권 쓴 적이 있으며 국내외 아트페어 관련 일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좋은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고 알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몇 가지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1. 현재 올라가 있는 전시 리뷰들 중 작품이미지가 없거나 형편없는 작품 이미지의 경우, 작품 이미지를 주실 수 있으신 경우, 제 메일(yongsup.kim@yahoo.com)로 작품 이미지를 부탁드립니다. 

2. 지나간 전시이거나 준비 중인 전시가 있으신 경우, 전시와 관련된 자료를 저에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갤러리 관계자 분들이나 작가 선생님께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모든 자료가 다 업데이트되지 않겠지만, 업데이트되는 경우에는
- 파아란 영혼 블로그 (intempus.tistory.com) 에 올라가며
- 올댓 주말미술여행 이라는 스마트폰 어플에 올라가게 됩니다.

올해부터는 시간이 되는 평일이나 토요일 오전에는 전시장을 자주 다녀
많은 작가과 작품을 만날 생각입니다. 예전보다 더 많이.

혹시 저작권에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제 연락처는 yongsup.kim@yahoo.com 입니다.
그 외 관련 연락처는 공지로 올라와 있는 제 소개 페이지를 보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파아란 영혼 운영자
지하련(김용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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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킹 Joel King

Intervals
2011. 5. 4 - 17
Grimson Gallery




번잡스러운 인사동 길을 지나가다가 수도약국 골목으로 조금 올라가면 그림손 갤러리가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골목길에는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파고다 공원에서부터 안국동 방향으로만 갈 뿐입니다.

하지만 잠시 알 수 없는 골목길로 한 번 걸어 들어가 보면, 작고 아담한 까페라든가, 도심 한 가운데의 고요한 갤러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인사동입니다. 아주 잠시, 짧은 거리의 모험으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도심의 근사한 침묵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침묵처럼 조엘 킹의 작품은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단색조의 회화를 ‘모노크롬(Monochrome)’이라고 합니다. 이 회화 양식은 1960년대 미국에서 등장했고, 등장과 함께 많은 비평가들의 지지와 함께 전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예술가들이 단색 회화에 심취해 각기 다른 작품들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아마 사람들은 사각의 캔버스에 하나의 색으로만 칠해놓은 작품들을 각기 다른 작가들이 그리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네요. 실은 그냥 하나의 색들이거든요. 심지어 이건 나도 그릴 수 있겠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릴 수 있을까요?

이 글을 보시는 분이시라면, 이제부터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가서 단색 회화를 보면, 정말 한 가지 색으로만 구성했는지, 유화물감으로만 그렸는지, 캔버스에다 그렸는지, 하나하나 따져보시면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똑같이 흰색 작품인데,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물감으로 구할 수 있는 흰 색이 아니고, 캔버스에 그린 것도 아니며, 흰색 물감을 위주로 다른 색을 섞은 것 같기도 하고, 두터운 느낌을 주기 위해 다른 물질을 섞은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 때, 옆에 있는 작가나 큐레이터에게 이 색을 어떻게 만들었냐고 물어보세요. 그러면 아주 흥미로운 대답을 듣게 될 지도 모릅니다.)

조엘 킹의 작품도 그렇습니다. 그의 작품 밑에 그는 ‘mixed media on wood’라고 적었습니다. 나무 판 위에 여러 매체를 사용한 것입니다. 마치 하이델베르그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마주하는 느낌입니다. 하이델베르그는 자연과학에서 이야기하는 법칙이라는 것은 인공적인 실험 조건이나 수학적 가정 속에서만 법칙이지, 실제 자연 속에서, 이 세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법칙이라고 말합니다. 즉 실제로는 실험 조건이 이 자연 속에서 구성되기는 불가능하기에 자연 법칙은 불확정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색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완전하게 흰 색이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완전하게 흰 색을 찾아보자는 시도가 있겠죠. 그 다음에는 색 자체에 대한 탐구와 모험이 이어집니다. 색조의 회화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조엘 킹의 작품들도 이런 미술사적 위치에 서 있는 것입니다.

약간 어려운 부분으로 들어갔네요. 하지만 작품을 보는 데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다면 머리가 아플 것입니다. 이것은 좋은 감상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미술 작품은 느끼고 감동받는 것이지,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입니다.

여하튼 조엘 킹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 그림은 색칠을 한 평면 여러 개를 연작으로 엮거나 하나의 화폭에 여러 차례 덧칠을 해서 색을 포개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 결과 책으로 채워진 캔버스는 하나의 이미지를 보여주지만, 그 안에는 미묘하고, 서로 연관돼 있고 또 조응하며 겹겹이 쌓여진 의미와 해석들이 자연스레 녹아 있게 된다.”

작가의 말이 어렵지만, 그의 의도는 이해될 것입니다.

전시장은 조용하고 감상하게 좋습니다. 혹시 오늘 인사동에 나갈 일이 있다면, 그림손 갤러리에 가서 전시를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리고 색이 주는 느낌이나 분위기를 한 번 경험해보세요.


* 이미지를 구하지 못해 도록의 일부를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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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Denzler

‘Freeze Frame Paintings’

2011.1.27 – 2.27 

Michael Schultz Gallery Seoul

www.andydenzler.com


늦겨울
햇살이 건조한 바람에 희미하게 갈라졌다. 오랜만에 마이클 슐츠 갤러리에 들렸다청담 사거리에 있는 네이처 포엠 빌딩에 때면 빠뜨리지 않고 방문하는 갤러리로, 독일 베를린, 중국 베이징에도 갤러리가 있다.

그리고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나는 마이클 슐츠 씨를 만난 적이 있었다. 서로 명함을 주고 받았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는 우리에게 갤러리스트로 성공할 있었던 이유로 탁월한 안목을 꼽았다. 좋은 작가의 좋은 작품을 찾아 작품을 원하는 고객에서 소개할 있는 안목. 나는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졌지만, 한국에 들어와 부딪힌 현실은 전혀 달랐다. 내 안목에 대한 스스로의 신뢰가 시간이 갈수록 사라졌고, 탁월한 안목만으로 버티기엔 한국은 폐쇄적이고 견고했다.

갤러리에, 낯익은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2008 겨울 독일 칼스루헤에서 만났던 작품이었다. 앤디 댄즐러(Andy Denzler).

그의 작품은 언뜻 보기엔 단순하고 평범해 보이지만, 은근히 보는 이의 시선을 자극하며, 적당한 속도로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마치 추운 겨울 바람이 부는 거리를 마주한 까페 창가에 앉아 헤어진 연인의 뒷모습을 보는 듯한 기분이라고 할까.

갤러리의 설명을 옮긴다면 이렇다.

덴즐러는 움직이는 피사체를 순간적으로 정지시켰을 정지된 피사체와 함께 움직임에 따른 잔상이 번져 보이는 모션회화에 기반을 작품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미지는 마치 1960년대 전파의 혼선으로 인해 텔레비전 화면 장면이 순간적으로 흔들리면서 일그러지고, 왜곡되는 현상을 평면으로 옮겨놓은 하다.


하지만 작품 설명이 그리 중요할까. 어려운 단어들로 설명하지 않아도, 덴즐러의 작품은 충분히 대중적이면서도, 작품의 완성도는 뛰어나다. 그만큼 좋다. 현대 평면 회화의 지점을 보여주며, 동안 진행되었던 피사체와 평면성에 대한 탐구를 모으고 있다.

겨울이 가기 전에 앤디 댄즐러를 만나러 가는 길은 즐거울 것이다.

tips. 전시 관람 가이드

네이처 포엠 빌딩에 가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예술에 조예 깊은 사람이 있다. 지하부터 3층까지 유명한 갤러리들이 모여 있는 빌딩은 사랑하는 연인과의 데이트 코스로 손색이 없다. 또한 앤디 댄즐러의 작품은 부드러우면서도 서로의 온기를 느끼게 있을 것이다.

 


 




* 위 사진 이미지는 2008년 아트 칼스루헤(Art.Karlsruhe)에 나왔던 앤디 댄즐러의 작품들이며, 아트페어에서 직접 찍은 사진 이미지임을 알려드립니다. 현재 마이클 슐츠 갤러리 서울에서 전시되는 작품들은 2010년 마이클 슐츠 갤러리 베를린에서 열렸던 개인전 작품들로 현재 앤디 댄즐러의 웹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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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 전 세계 미술 시장은 그야말로 대단한 호황이었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여서 서울옥션, K옥션을 비롯하여 수십개의 아트 옥션 회사가 생기고 새로운 갤러리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어떤가. 소리소문없이 아트 옥션 회사가 문을 닫고 갤러리들이 사라지고 있다.

아직 사람들은 그러한 호황이 다시 올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그리고 고객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하며, 미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과연 올까? 2006, 2007년과 같은 시기가.

나는 단호하게 그런 시절은 오지 않고, 와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미술 작품을 오직 투자 목적으로 접근했을 때, 실패하기 가장 좋은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어찌 어느 순수한 영혼의 치열한 결과물을 돈으로만 환산하고 접근하려고만 드는 태도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미술 작품을 돈으로 환산하기 위한 절대적인 기준이나 계량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도리어 나는 현재의 한국 미술 시장의 수준이 정상에 가까운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장 크기를 키우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IMF이후 한국 기업의 체질 강화가 이루어졌듯이 한국 미술 시장을 구성하고 있는 세 주체 작가, 갤러리, 컬렉터 의 변화가 필요하다.

변화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주제 넘게 아직 경험이 일천한 내가 나설 문제는 아닌 듯하다. 실은 며칠 전 서울오픈아트페어에 갔다 왔다. 눈에 작품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어수선한 요즘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실은 세계 미술 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정도의 수준 높은 작가와 작품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한국에서 그런 작가를 만나기도 어렵고 그런 작가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대형 갤러리 전속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중소형 갤러리는 경쟁력 있는 작가를 만나기 어렵고, 그런 작가를 찾아 다니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미술 시장 바닥을 나와 회사를 다니는 것이 홀가분하기는 하지만, 내 생각대로 한 번 해보지 못한 게 미련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그러다 보니, 조만간 새로운 미술쪽 일을 하나 해볼 생각이다. 잘 될 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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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아트링크의 정원)



일요일 낮에 안국동, 사간동 갤러리들을 돌아다녔다. 청바지에 가방을 매고, 가방 속엔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철부지 같은 공부의 열정을 증명하듯 몇 권의 책과 노트, 그리고 철 지난 니콘 D70  카메라가 있었다.

수요일 오전, 지난 일요일의 한가로움이 쓸쓸하게 그립다.

회사 건물 1층에 나가, 몇 주만에, 극소량의 나프틸아민, 니켈, 벤젠, 비닐 크롤라이드, 비소, 카드뮴을 먹었다. 그러면서 내 일상을 탓했다. 고상한 척 하지만, 고상하지 않고, 강한 척 하지만 절대로 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100%, 한 톨도 남김없이 다 볼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정말 비극적이고 슬픈 곳으로 변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아주 가끔 누군가가 내 마음 전부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면, 혹은 내가 누군가의 마음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역시 인생은 이율배반적인가. 우리는 언제나 이룰 수 없는 어떤 반대를 꿈꾸는 것은 아닐까. 하긴 꿈 꾸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 꿈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몇 년이 지난 후, 그 사실을 종종 깨닫는 것만으로 아주 가끔, 아주 짧은 순간, 덧없는 허위처럼, 우리의 삶은 그나마 살아볼만한 어떤 것이 되기도 한다.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한 잔의 생맥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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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색 빗물의 파동 - 김영민 개인전
2009. 1. 29 - 2009. 2. 20 
굿모닝신한갤러리(여의도) 
 


Untitled, 130.3X162.2cm, Mixed media on Canvas, 2008


얼마나 한참 앉아있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열 살 정도 되었을 때.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던 비포장 길 한 쪽 구석, 오전에 내린 비로 얕고 작은 웅덩이 하나가 생겼다. 나는 엉거주춤하게 앉아, 바지 끝이 닿는지도, 소매 끝이 더러워지는 지도 모른 채, 맑게 갠 하늘이 빗물 웅덩이의 수면 위로 비친 모습이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바람이 부면 그 작은 웅덩이에도 물결이 일었다. 바로 옆 미루나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에 요동을 쳤고 내 작은 손가락 하나에도 흔들거렸다. 약간 떨렸고 약간 안타까웠다. 어린 아이의 마음속에서, 그 작은 웅덩이에 생긴 자그마한 변화가 그, 혹은 그녀에게 갑자기 생긴 상처처럼 보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캔버스 가득 흔들거리는 물 표면의 흔적이 가득했다. 작은 연못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만드는 일련의 운동들, 파동들, 상처들이 보였다. 나는 김영민의 작품을 보면서 어렸을 적 기억의 사소한, 그리고 아련하기만 한 순간을 끄집어 올렸다.

Untitled, Digital print on OHP Film, 2008


작가는 쉬지 않고 움직이는 물 표면의 한 순간을 캔버스에 옮겨놓는다. 그는 현대의 거대한  도시 위로 떨어지는 빗줄기들과 그 빗줄기들이 만나게 될 지상의 어느 물 표면들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 우리의 삶이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지 못한 채 정해진 동선을 그리며 이루어지듯, 작가가 사용하는 색들도 일정한 변화의 영역 안에서, 아슬아슬한 농도와 터치로 자신들의 존재를 견디는 듯 보이고, 무한히 이어질 듯 느껴지는 파동들은 연약한 색채들 속에서 흐려지고 뒷걸음질 치며, 캔버스의 여백 속으로 사라진다.

Untitled, 162.2X130.3cm, Mixed media on Canvas, 2008


실은 이 세상에 정지해 있는 것이란 없다. 김영민의 작품은 끝없이 이어지는 어떤 운동의 정지된 한 순간을 잡아내고 있지만, 실은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다. 꼭 엘레아의 제논이 말한 ‘나는 화살은 정지해 있다’에 대해 베르그송이 지적하듯, 우리는 시간을, 운동을, 우리의 삶을 공간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작가는 알고 있었다.

17세기 바로크 양식의 회화들이 한 곳에 집중하면서도 화면의 전체 공간 자체를 열어두듯, 김영민의 작품들도 반복된 파동들의 겹침, 흐릿하지만 특정 범위 안에서의 변화되는 색채들, 그리고 완결성을 거부하는 선과 터치를 통해, 정지란 없고 오직 운동만 있음을 표현해낸다. 마치 우리의 생이, 우리의 영혼이 한 순간도 정지하지 않은 채, 어딘가를 향해 있듯 말이다. 하지만 정처 없이 운동하는 것은 아닐까. 계속 저렇게 물결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예술이, 우리 삶이, 내 영혼이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닐까.

게오르그 짐멜이 로댕의 작품을 보면서, 심리학을 추구했다고 말하듯이, 김영민의 작품들도 본질적으로 심리학주의를 향하고 있다. 게오르그 짐멜은 ‘로댕의 예술과 조각에서의 운동모티브’라는 글 속에서 근대의 심리학주의는 내면적 세계의 반응에 입각해, 세계를 체험하고 해석해내며, 영혼의 끊임없이 변하는 요소들을 통해 확고부동한 내용을 해체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모든 실체가 정화되며, 따라서 운동의 형식을 띠게 된다고 지적한다.

Untitled, 162.2X130.3cm, Acrylic on Canvas, 2007


이와 비슷하게 김영민의 작품들 속에서 파악되는 운동의 형식(파동)은 바라보는 사람들의 내면세계를 비추고 있다. 내가 그의 작품을 보면서, 어렸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듯이 김영민의 작품들은 캔버스에 표현된 색채의 파동들 속을 지나, 우리 마음의 창, 기억의 입구, 추억의 향기가 된다. 그래서 운동을 표현하고 있지만, 실은 시간에 대한 은유이며, 갈 수 없지만, 변하지도 않는 과거의 어떤 순간을 지칭하는 것이 된다.

이미 사라져버린 것, 가지 못하는 곳, 아련한 어떤 것들에 대해 작가는 작은 원형의 물결들로 표현해 낸다. 하지만 이를 과거 지향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그가 현재 속에 서 있기 때문이다. 시간과 운동은 정지될 수 없는 것이며, 끝없이 지속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지속적’이라는 형용어는 김영민의 작업을 특징짓는 한 단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Untitled, Digital print on OHP Film, 2008



* 위 글에 사용된 작품 이미지들은 작가의 허락을 받았음을 알려드립니다. 비상업적 용도를 위한 작품 이미지를 포함한 본문을 다른 곳에서 인용할 수 있으나, 작품 이미지의 변조나 부분적 도용, 또한 상업적 이용은 금지됩니다.
* 본 전시가 열리는 굿모닝신한갤러리는 여의도 신한증권 건물 1층에 위치해 있습니다.(5호선 여의도역에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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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브로드밴드의 IPTV에서 TV갤러리를 한다는 기사를 오늘 아침 읽었다. '아트폴리'와 제휴해서 진행될 모양인데, 이미 '아트폴리'에서 대해선 종종 들리는 미술 투자 관련 카페에서 그 정보를 이미 접한 터였다. 그런데 이 곳을 운영하는 곳이 '이노무브그룹'?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회사였다. 이 곳은 '롱테일법칙'과 관련된 책/아티클을 생산, 보급하고 관련 강의나 컨설팅을 하는 회사였다. 좀 관련없는 회사에서 미술 관련 비즈니스를 시작한 셈이다.

한 번이라도 미술전시을 유심히 살펴본 이라면, 온라인 갤러리가 얼마나 형편없는가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절대로 온라인(컴퓨터 모니터나 TV모니터)로는 작품이 가지는 생명력이나 디테일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 그걸 제대로 전달하려면, 작품 설명자와 여러 각도에서 찍은 작품의 디테일을 보여주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작가와 작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작품의 디테일 - 색상, 터치, 질감 등 - 을 자세히 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아트폴리를 한 번 들어가보았다. 컨셉은 단순하다. Web 2.0에 기반한 Market Platform을 만들고 판매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작품 가격은 몇 만원에서부터 시작된다. 나쁘지 않다. 좋은 작품은 경제적인 가격에 공급할 수 있는 것만큼 좋은 일도 없다.

그런데 문제는 좋은 작품(작품의 질)이 문제다. 작품은 무조건 직접 보고 확인해야 된다. 카타로그 보고 구매하는 것도 매우 위험한 행위 중의 하나인데, 컴퓨터 모니터 보고 어떻게 작품을 확인할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좋은 작품이라는 평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미묘한 문제라는 것이다. 각자의 취향이 있고 선호가 있기 때문이다. 갤러리도 각 갤러리(주인)마다 특성과 성향이 있어, 전시하고 판매하는 예술가들의 작품 스타일로도 구분 가능할 정도다(한국은 다소 덜한 편이고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에는 두드러진다).

갤러리의 명성은 대단한 작품성을 가지고 오랜 생명력을 가진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작가를 얼마나 빨리 알아채고, 이 작가와 얼마나 오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미술 시장에서 이 작가의 상품성(작품성, 명성, 가격)을 얼마나 올릴 수 있는가에 의해 유지된다. 이는 1-2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최소 3-4년 이상은 투자해야만 얻을 수 있는 명성이다(외국에는 백 년 이상 된 갤러리도 있다). 

하지만 온라인 마켓의 경우에는 이러한 시스템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구입하는 작품이 좋은 작품인지, 그렇지 않는 작품인지에 대한 자세하고 전문적인 조언을 구할 수 없다(한국의 상당수의 갤러리에서도 마찬가지일 지 모른다). 특히 이는 미술 작품 구입을 최초로 하는 이들에겐 매우 위험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미술 교양서 한 두 권 읽고 국내에서 열리는 대형 미술 전시를 일 년에 몇 번 본다고 해서 현대 미술에 대한 감식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미술 작품의 계량적 가치에 대해서 아는 것도 아니다. 그만큼 좋은 작가와 작품을 보는 눈을 가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우습게도 이 보이지 않는 진입장벽으로 인해 많은 컬렉터들이 초반에 거액의 수업료를 치르고, 상당수의 갤러리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는다.

'아트폴리'의 실험이 성공하길 바라지만, 글쎄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판매하는 채널로서 온라인은 너무 위험하고 바람직해 보이는 채널이 아니다. 이는 작품을 판매하는 입장에서도 그렇지만, 자신의 작품을 올리는 작가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가격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작품을 진정으로 아껴주는 사람에게는 그저 줘도 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만(파울 클레의 작품을 죽을 때까지 가지고 다녔던 발터 벤야민 정도라면), 그렇지 않다면 작품 판매에 열 올리지 말고 창작에만 전념하는 편이 좋다. 

내가 한국에 있는 갤러리들이 가지는 후진성(비즈니스 관행이나 시스템, 가격 정책이나 고객 서비스)에 대해선 늘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몇몇 갤러리 주인들이 가지고 있는 감식안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그들의 감식안은 놀라운 수준이다. 그들은 작품이 가지는 공간 장악력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며, 작가나 작품의 생명이 얼마나 갈 지에 대해서도 탁월한 지식과 통찰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된다. 한국의 미술 시장이 어떠니, 미술 관행이 어떠니 해도, 좋은 작가의 좋은 작품은 얼마 지나지 않다, 눈 좋은 갤러리에 의해서 선택되니까 말이다.

(대신 한국의 미술 수용의 폭과 범위가 너무 좁다는 것 뿐이다. 그래서 좋은 작가의 좋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갤러리들의 수익 모델은 작품 판매에 있으니, 시장에서 판매가능한 작가에게 우선적으로 연락하게 되고 아직 고객층이 탄탄하지 못하기 때문에, 뜨는 작가나 뜨는 트렌드가 너무 부각되어, 이것이 일종의 악의 순환고리를 만들고 있다. 올해 KIAF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니. (송구스럽게도) 내가 했던 아트페어의 수준은 뭐 말할 수준도 못 되지만)

혹시 미술 작품 구입에 관심있다면, 미술 작품 구입이나 투자는 부동산 투자하고 그 형식적인 부분에 있어서 똑같다. 즉 '발품'이다. 얼마나 자주 갤러리를 돌아다니는가, 얼마나 미술 감상에 시간 투자를 하는가의 문제이지, 책 몇 권 읽고 안 읽고의 문제는 적어도 아니라는 것이다. 책 읽은 사람은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이들이 미술에 대해 뛰어난 감식안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작은 돈이라도 모아서, 좋고 큰 작품 사는 것이 좋다. 조언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해줄 수 있다.

적고 보니, '아트폴리'에 대해선 많이 적지 못했다. 워낙 미술을 위한 온라인 마켓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라 그런 듯 싶다. 차라리 '이베이의 온라인 마켓'이 낫지 않을까? 싸구려 그림들이지만, 거만 떠는 한국의 많은 온라인 경매 사이트들이나 거창한 캐치프레이즈같은 건 없어 내 눈에는 훨씬 나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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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과 충동, 2008. 8. 13 - 8. 26, 관훈갤러리



인사동에 나가면 나는 두 가지에 자주 놀란다. 그 하나는 인사동 거리를 지나는 많은 사람들 때문이다. 주말은 말할 것도 없이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인사동을 지나간다. 그런데 나는 그 많은 사람들과 대조적인 텅 빈 갤러리 때문에 다시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인사동 갤러리에 사람들로 가득차 있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오픈식이 있는 수요일 오후를 제외하고). 많은 갤러리들이 청담동, 신사동으로 떠나고 새로 오픈하는 갤러리들은 주로 사간동이나 삼청동에 자리를 잡는 요즘, 인사동은 참 애매한 공간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관훈갤러리는 믿음직스럽다. 그리고 최근 관훈갤러리에서 개관 30주년 기념전 '지각과 충동'을 했다. 주로 대관 위주로 전시되는 인사동에서 보기 드문 전시였다. 주목할 만한 한국의 젊은 화가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특정한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2008년 젊은 한국 미술을 경험할 수 있는 즐겁고 유쾌한 자리라고 할 수 있었다. 내 눈에 들었던 몇몇 작가들의 작품들에 대해서 적어보기로 한다. 

김병호, Silent Pollen - sowing, Silent Pollen - gathering SIZE: 225(width)x60(height)x43(depth)cm, MEDIUM: aluminium, microspeaker, DTMF generator 
출처: http://aliceon.tistory.com/797 (김병호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유익한 아티클이 있음)

김병호는 미디어, 특히 소리를 전달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듣는다'는 행위 위로 그는 조형적 미학을 덧붙인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설치 미술이거나 현대적 방식의 조형물 처럼 보이지만, 실은 관객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미디어 아트에 속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장점은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조형적 아름다움에 있다. 그리고 그 장점 속에서 '소리'를 찾게 만든다. 어쩌면 현대적 매체들 속에 숨겨진 본질적인 어떤 것에 대한 탐구일 지도 모른다.

김병호_"그들의 꽃 Their Flowers"
황동, 콘덴서마이크, 마이크로스피커_가변설치_2006
출처: www.neolook.net (2006년 갤러리 쿤스트독 전시 사진)


전정은의 사진은 이질적 공간의 조합이 특징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폐허로 변한 인간의 공간 너머로 자연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 기묘한 대비로 인해 그의 사진은 낯설어지고 보는 이를 끌어당긴다. 꼭 로마 후기 회화의 환영주의적 양식 처럼, 어쩌면 우리는 거대한 자연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반대로 도시, 혹은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공간에 지쳐가고 있는 지도.

전정은_Landscape of egoism_디지털 프린트_96×120cm_2007

전정은_Landscape of egoism_디지털 프린트_96×120cm_2007

전정은_Landscape of egoism_디지털 프린트_96×120cm_2007
출처: www.neolook.net  (2008년 5월 관훈갤러리 전시 자료 중에서 인용함)


좋아하는 작품이란 있기 마련이고 이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느 수준에 다다르면, 전문적인 지식의 양과는 무관해진다. 대신 (예술)경험의 폭과는 비례한다고 생각된다. 이번에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치는 이지원의 작품은 '무미건조한 도시에서의 서정성'이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해준다. 서정성이라, 실은 빨간 옷을 입은 꼬마아이가 다리 바닥에 엎드려 있는 모습과 이 단어를 연결짓는 내 감성이 다소 낯설기도 하다. 하지만 엎드려 있는 행위를 한 번이라고 해본다면, 그것이 어떤 느낌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회화 경향 중의 하나가 낯설 풍경을 과감한 색채나 터치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지원의 작품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뭐, 이건 최근의 트렌드이고, 나는 이 작가를 알지 못하고 대화를 나누어 보지 못했지만, 이 작품은 묘한 감동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이지원, 도시에서의 삶no.1, 162.2 x 130.3 cm, Oil on canvas, 2008
(출처: 전시도록에서 간단하게 사진촬영함. 스캔은 저작권에 심하게 위배됨으로 사진촬영으로 대신하였음.)


'프리허그'라는 낯설고 낯뜨겁고 심지어는 한국 사회마저도 개인주의화가 얼마나 심각하게 진행되었는가를 절실하게 느끼게 해주는 행위가 한동안 전파를 타고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하긴 나를 포함해 한국에서는 포옹을 할 일이 거의 없다. 요즘은 모르겠으나, 내 기억 속에는 가족끼리도 포옹을 하는 것이 낯설었던 적이 많았다. 그래서 '포옹'을 그린 김윤정의 작품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쓸쓸해보인다. 어둡고 건조한 배경 속에 서 있는 두 인물의 표정은 창백하고 포옹하고 있으나, 그 포옹의 느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듯, 그 느낌을 찾기 위해 자신의 쓸쓸함 속으로 여행을 떠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들 모두는 외롭고 쓸쓸한데, 그것을 다들 숨기기 위해, 아니면 회피하기 위해,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자신을 내몰며, 자기 자신을 잊어버려고 노력하는 건 아닐까. 이 점에서 김윤정의 작품이 가지는 여운은 꽤 길고 부드럽고 슬프다.


김윤정, untitled, Oil on canvas, 193 x 130 cm, 2008

김윤정, untitled, Oil on canvas, 193 x 130 cm, 2008
(출처: 전시도록에서 간단하게 사진촬영함. 스캔은 저작권에 심하게 위배됨으로 사진촬영으로 대신하였음.)



* 위 인용된 작품 이미지들은 저작권을 득하지 않았음으로, 저작권자의 요구가 있을 경우 삭제토록 할 것입니다. 이지원 작가와 김윤정 작가의 작품 이미지를 구하고 싶었으나, 온라인에서 그들의 작품 이미지를 구하지 못한 관계로, 도록에 실린 작품 이미지를 카메라로 찍어 올립니다.
* 본 리뷰와 관련된 문의는 yongsup.kim@yahoo.com 으로 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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