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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이맘 때 대기가 제일 좋다, 나는. 적당한 차가움이 귀 끝을 스칠 때 따뜻한 술 한 잔이 떠오르고 무심한 거리 뒷골목에서 만나는 인생들에게서 정을 느낀다. 그대들과 함께 술 취해가던 그 해 겨울이 그리워지는 이 맘때, 초겨울, 나는 요즘 대기의 결이 좋다. 




아.. 그리고 술. 마시지 않은 지도 꽤 지났구나. 아름다운 술자리가 언제 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아래 광고. 참, 술 생각, 옛날 생각, ... 휴식이 간절해진다. 요즘 너무 바쁘고 피곤하고 힘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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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간단하게 햄버거로 처리하고 도로를 걸었다. 작은 분수와 가로등에 달라붙은 채 갓 핀 꽃을 보여주고 있는 화분들을 보면서 참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점심 시간 길가로 쏟아져 나왔다가 다시 사무실로 향하는 사람들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지만, 그 웃음도 참 비현실적이었다.


모두, 우리들의 비극적 상황을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모른 척할 것이고, 모른 척 하던 사람들이 다 죽고 도시는 폐허가 될 것이다.

이런 도시는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실크로드를 따라가다 보면 많이 만날 수 있다. 이젠 성채만 남아 부서지는...


과거가 미래의 발목을 잡고 있지만, 과거는 과거의 기준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 변화를 거부한다. 세상은 변하지 않고 정지해있다. 그들은 마치 파르메니데스의 후예들 같다. 아직도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믿고 있다. 자리는 고정된 것이고 사람은 변하는 것이니, 고정된 자리에 사람을 끼워맞추면 된다.


하지만 한국이 이토록 엉망이 된 것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실은 정 반대다. 자리에 맞는 사람을 만들 수 있는 교육(훈련)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고, 그런 사람들을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그러나 나는 비관적으로 바라본다. 이런 국가가 되기 위해선 몇 백년이 걸릴 것이고 그 사이 이름만 남은 국가가 될 것이라고 ... ..





커피향은 은은하지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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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6. 01.



이럴 때 어색하지, 그다지 좋지 못한 형편인데도 불구하고 주위 풍경이 참 여유로워 보일 땐, 슬프지, 가진 게 없는데 모든 걸 가진 듯한 풍경 속에 있을 땐 참 슬프지, 너무 슬프지. 


하나의 직선 양 쪽 끝에 서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만, 흘러가는 세월 속에 다 부질없어, 목소리는 잠겨 나오지 않아, 이젠 말라 흘릴 눈물마저 없어, 그럴 때 별안간 나타난 여유롭게 행복한 사각의 공간은 너무 어색해, 어색해, 찡그린 채 웃고 말지. 


텅 빈 도로를 지나치는 바람이 반가워 손을 내밀지만, 그는 잡히지 않아, 바람이지. 모니터 속 그녀는 나를 향해 웃고 나도 그녀를 향해 웃지만, 우리의 웃음은 만나는 법이 없지. 그래서 그녀는 언제나 그녀지. 


어느날 아이가 우주여행을 가겠다며 여행가방을 쌀 때, 나는 이미 어제 밤 꿈에 우주를 갔다 왔단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 나는 언제나 바람을 타고 계속 웃는 그녀와 함께 우주 여행 중이지, 꿈 속에서. 


참, 어색하고 슬프지. 내가 한없이 낯설어지는 풍경 속에 익명의 사물이 될 때, 그렇게 있지만 없는 이가 될 때, 너무 슬프지, 그렇게 슬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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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오열을 터뜨리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미가 아니라 오로지 비열하기 이를 데 없는 퇴폐 뿐이다. ... ... 따라서 모든 강박 관념과 상반된다 할지라도 이같은 가증스러운 추함이 없이 지낸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 조르주 바타이유



과연 그럴까? 하긴 아름다움은 오열을 터뜨리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열하기 이를 데 없는 퇴폐로 인한 상처는 오열을 불러올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니 바타이유의 말이 맞는 걸까. 그렇게 동의하는 나는 그러한 퇴폐를 경험한 적이 있는 것일까. ... 


아련한 봄날, 외부 미팅을 끝내고 잠시 걸었다. 부서지듯 반짝이는 봄 햇살 사이로 지나가는 도심 속 화물열차. 바쁜 사람들 사이로 새로운 계절이 오는 속도처럼 느리게 지나쳤다. 그 사이로 사람들과 자동차들이 잠시 서고, 시간이 멈추고, 도시는 그 정체성을 잠시 잃어버렸다. 






그러면 죽음에 대한 나의 공포는 삶에 대한 질투에서 온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나는 내가 죽은 뒤에도 여전히 살아있을 사람들, 꽃과 여자에 대한 욕망이 살과 피로 된 의미를 갖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을 사람들에 대하여 질투를 느끼는 것이다. 이기주의자가 되지 않기에는 삶을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질투를 느낀다. 

- 까뮈, '제밀라의 바람' 중에서



 얼마 전에 읽은 김경주의 '밀어' 덕분에 몇 명의 저자와 몇 권의 책을 알게 되었다. 까뮈의 저 산문도 알게 되었는데, ... 이번 봄, 까뮈를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종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상으로 내 가족의 생계가 유지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러면 나는 정처없이 피폐해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들었다. 그냥 지금보다는 조금 더 여유로워졌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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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외근이 있었고, 장소는 압구정동이었다. 평일 오후 압구정동 거리는 참 오래만이다. 상권이 많이 죽어 인적이 드물었다. 내가 자주 왔던 이십년 전에는 사람들로 붐비던 곳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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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물리적 공간, 혹은 거리와 면적은 언제나 넓고 길다. 마치 지나온 시간 만큼, 쌓여진 추억들만큼, 기억 속에서 공간들은 소리 없이 확장한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무렵의 마산의 중심가는 창동과 불종거리였다. 그 곳에서의 사춘기 나에겐 무수한 일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늘 현재를 살기에, 단지 많은 일이 있었다는 것만 짐작할 뿐, 추억의 상세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힘들고 아슬아슬하기만 했던 올 여름의 휴가 마지막 날, 아내와 나는 마산 창동에 갔다. 한 때 극장과 서점, 까페, 옷가게들로 융성했던 거리는 이제 쇠락해가는 구 도심일 뿐이었다. 화요일 점심 때가 가까워져 오자, 사람이 한 두 사람 느는 듯했지만, 서울과 비교해 인적은 뜸했다.





이 곳을 가게 되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창동 예술촌’ 때문이었다. 아마 보기 드물게 활력을 잃어가는 도심을 살리기 위해 예술가들과 지자체가 함께 하는 예술 마을 프로젝트가 여러 번 저널에 실리고 TV에도 방영된 탓에, 내 기억 속의 거리가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시선을 잡아 끄는 벽 장식들과 건물 외벽의 색채들, 벽화들은 아기자기하고 소박했다. 실험적이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작고 진솔해 보였다고 할까. 그러면서 지역적 특색을 살리고 있어, 예술로 시작했지만 예술은 뒤로 사라진 채, 코스모폴리탄적 무국적성이 아닌 상업적 무국적성을 띄어가는 서울 인사동이나 삼청동, 혹은 홍대 거리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예술가들의 의식적 실험이 지역의 도심을 살릴 수 있다는 흥미로운 발상은 다른 지역의 예술 공동체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무척 클 것이라 생각 되었다.




마산 창동예술촌을 둘러보던 중에 먹은, 추억의 음식인 마산 코아양과의 밀크쉐이크와 육이오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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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경리단길. 몇 해전 새벽에 곧잘 왔던 길. 적당히 술에 취한 채 자주 가는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쓸쓸하고 무모했던 그 날 밤이 떠오르지만, 지금 생활과는 참 먼 ... 


어린이날, 대낮 한적한 경리단길, 아들과 함께 나선 길, 나이든 아빠는 금세 지쳐 그늘 속으로 몸을 피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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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길과 근대의 길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양재역 사거리에서 강남역 사거리 사이의 길들은 곧지만, 늘 막혀 있다. 느리고 뚝뚝 끊어지는 경적 소리와 숨 넘어 가는 엔진 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고대의 길은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익히 아는 사람들로 가득 차지만, 근대의 길엔 늘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곧지만 호흡하기 힘든 분위기로 내 삶을 옥죄는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6월 3일 금요일 밤 10시. 무릎엔 아무런 상처도 없지만, 실은 영혼의 무릎에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도망가지도 못하도록 나를 몰아 붙였지만, 실은 늘 도망갈 궁리만 하고 있었다. 이 때까지 나온 시집의 첫 장 중에서 가장 멋지고 우아한, 그러면서도 한없이 슬픈 것은 장정일의 시집이다. 늘 도망 중이라는. 발 한 쪽을 앞으로 옮길 때마다 무수한 사람들이 밟았던 보도블록 한 번 보았고 다른 발 한 쪽을 앞으로 옮길 때마다 아무런 표정 없이 아래를 향해 있는 허공 끄트머리에 놓인 어둠을 보았다. 그렇게 흔들 의자마냥 내 고개도 한 번은 땅 바닥, 한 번은 하늘을 향해 흔들거렸다. 차라리 산뜻한 봄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처럼 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끝내 난 우아해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다가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꼬깃꼬깃 접힌 푸른 빛깔의 종이를 발견했다. 만 원 짜리 한 장이었다. 울컥 눈물이 나올 뻔 했다. 나한테 필요한 건 만 원이 아닌데. 만 원은 나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내 고개를 더 많이 흔들거렸고 내 가슴은 너무 많이 답답해져 어디로 터져나갈지 몰랐다. 그러다가 내 가슴이 터져, 내 가슴 속에 가득차 있는 슬픈 빛깔들이 터져, 멀리 멀리 밤하늘 위로 올라가, 텅, 펑, 텅, 펑, 터지는 불꽃처럼, 내 영혼도, 내 육체도 흔적 없이 사라져, 텅, 펑, 텅, 펑, 반짝이다가 사라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그러기엔 내가 가진 것이 너무 없었다. 한참을 걸어 어느 지하서점으로 들어갔다. 몇 년 만에 시집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한 때 꿈이 시인이었지만, 요새 시인들 시 쓰는 걸 보고, 그런 시 쓰는 사람들 뽑아주는 신춘 심사위원들 보고, 그런 시 쓰는 사람들에게 문학상 주는 다른 시인들, 비평가들 보면서 시집 안 읽은 지 몇 해가 지났다. 그러다가 꼬깃꼬깃 접힌 푸른 빛깔의 종이 한 장으로 뭘 할까 고민하다가 시집을 사기로 했다. 늘 가난하다는 시인들을 위해 시집 한 권 사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하지만 살아있는 시인들의 시집엔 끝내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런 시 쓰는 사람들 시집을 사고 싶지 않았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이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소리 내어 읽었다. 강남 어느 지하 서점에서. 말쑥하게 차려 있는 여자들 사이에 서서, 백석의 시를 읽었다. 생의 피곤들이 밀물처럼 밀려와 내 가슴 한 켠을 때리기 시작했다. 생기 가득한 피곤들로 인해 나는 서있기 조차 힘들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남영동에 가서 영화를 전공한 친구와 목공예를 전공한 친구와 맥주를 마셨고 공덕동으로 가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 지쳐 쓰러졌다. 쓰러진 자리에 이미 죽은 백석도 함께 누워있었다.


나 취했노라
- 노리다께 가스오에게


나 취했노라
나 오래된 스코틀랜드의 술에 취했노라
나 슬픔에 취했노라
나 행복해진다는 생각에 또한 불행해진다는 생각에 취했노라
나 이 밤의 허무한 인생에 취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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